크리스천과 율법-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다
상태바
크리스천과 율법-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다
  • 승인 2001.03.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율법은 출애굽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것 하나님의 언약은 율법은 폐할 수 없는 것…은혜와 자비에 기반한 영원한 구원의 약속.

오늘날 교회나 신학교 안에서 가장 혼란을 겪고 있는 주제중의 하나가 바로 크리스천과 율법과의 관계 문제이다. 예수 믿는 신자들은 구약의 율법, 즉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구약의 율법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여전히 유효한가? 그래서 신약의 성도들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처럼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신약의 성도들은 율법 시대가 아닌 은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따라서 그들은 율법을 전혀 지킬 필요가 없는가? 이 글의 주된 목적은 평신도, 신학생, 목회자들에게 율법과 신자와의 관계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재확인하는데 도움을 주려는데 있다.

I. 잘못된 견해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은 예수님이 오시기전 구약의 율법 시대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 곧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 시대에 사는 우리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은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율법을 가르칠 필요도 없고, 율법을 지킬 필요도 없다”는 반율법주의 혹은 율법 폐기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17-19절)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정면적으로 배치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율법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나 신약시대의 사람들이나 전혀 구분 없이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야 완전한 축복과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위 율법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율법주의는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갈 2:16; 롬 3:23-26; 엡 2:8-9)와 정면적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상대화하거나 무효화시킨다. 동시에 이 주장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본래의 목적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을 윤리법과 제사법 등 2종류로 나누고 십계명 등 윤리법은 신약의 성도들이 지켜야 하지만 제사법 등은 예수님을 통해서 폐지되었기 때문에 신약의 성도들은 전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율법을 윤리법과 제사법으로 나누어 그 효능을 달리하는 이와 같은 주장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제한 시킬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신약의 저자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율법을 항상 단수로 사용하여 율법을 서로 나누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도 정면적으로 배치된다.

또 최근의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구분 없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될 뿐 이방인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이들은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언약백성인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주어졌으며, 따라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게 되며, 반면에 이방인들은 율법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두 가지 구원의 길, 곧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통한 길을, 이방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한 길을 주셨다고 하는 소위 두 구원의 길 주장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라는 사도행전의 가르침이나 “할례자(유대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 3:30)는 로마서의 가르침과 정면적으로 배치된다.

그렇다면 율법에 대한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어떠한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 없이 오늘 우리는 율법에 대한 어떤 이해나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II.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

우리가 ‘율법’을 지칭할 때는 일반적으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20장 이하와 신명기 5장 이하에 따르면, 하나님은 에집트 바로의 압제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구원하여 광야로 인도하신 다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위시하여 모든 계명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분과 출애굽 구원 사건은 율법에 선행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성민(聖民)이 되어진 것은 그들이 먼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기 때문이 아니다(신 7:6-8).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신분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율법 행위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기초한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아브라함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로 선택하였다.

아브라함의 행동과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큰민족,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신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

출애굽기에 2장 23-3장 14절은 이점을 거듭 밝혀주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바로왕의 통치 아래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찾아가서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언약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 그리고 그 언약을 이루신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 사건이 있었으며,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율법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신분이나 그들의 구원을 위한 선행조건이나 수단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과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광야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살수 있도록,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구별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즉 율법은 처음부터 구원의 수단이 아닌 삶의 수단으로 주어졌다.

따라서 구원은 율법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갈 3:22-23).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그 어떤 사람도 100% 완전하게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키는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부터 오는 선택과 언약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의존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미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구원받았기 때문에, 거룩하신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거룩한 신분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 안에 머물기 위해서이다.

율법은 신분을 가지기 위해서나 언약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사랑에 의해 주어진 그 신분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 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면 그들은 복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속된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이며,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민수기를 위시한 여러 구약 역사서와 선지서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하였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광야에서 출생한 신세대 사람들 뿐이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살았던 그들의 선조들을 따라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고 이웃을 자신들의 몸처럼 사랑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하나님대신 오히려 우상을 섬겼으며,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기는 커녕 오히려 미워하고 다투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범죄로 인하여, 곧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축복은 몰수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율법에 약속된 축복대신 율법의 저주인 죽음의 심판이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범법 때문에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하신 그 언약이 무너지게 된다는 점이다.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신적인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때문에 무너지게 된다는 점이다. 만일 이렇게 될 경우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인간의 행위의 행위에 따라 좌우되는 불완전한 것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에 의존해서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사랑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율법 때문에 결코 무너질 수도, 폐할 수도 없다(갈 3:15-18).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은 유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 자신의 은혜로우심과 자비와 신실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