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햇볕정책,결과 볼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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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햇볕정책,결과 볼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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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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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래 전 정부가 북한에 햇볕을 쪼여주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정책을 만들어놓고 당시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를 할 때 ‘햇볕 정책은 사랑인가 죄인가’라는 칼럼을 써서 미국에서 발행하는 한국신문에 게재한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때 우리의 햇볕정책이 엄청난 죄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밝힌 바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서 우리 땅 연평도를 무차별 폭격한(2010년11월23일) 다음 날부터 과거의 지도자들이 “과거 정부 10년 동안 우리 국민은 전쟁 걱정 없이 살았다. 안보는 확실하게 그리고 평화는 대화로 만들어낸 기간이 아니었나”라고 말하며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을 보고 우려를 금치 못해 다시 이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첫째, 햇볕정책은 처음 발상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정권에 무엇을 퍼주어야 북한이 변화되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다. 하나님을 등졌고 교회의 문을 닫아 버렸으며 기독교인들을 큰 맷돌에 갈아 죽였고, 또 계속해서 김일성에게 경배를 강요하는 우상 정권에게 물질을 퍼주어 변화시켜보려는 발상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과거 유다나라 왕들도 우상의 나라 북쪽 이스라엘에 햇볕을 쪼여주려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혼이 났고 또 벌을 받았다. 남쪽 나라 여호사밧 왕이 북쪽나라 이스라엘 왕 아합을 방문하였을 때 북쪽의 아합 왕은 여호사밧 왕에게 길르앗 라못에 가서 함께 치겠느냐고 요청했을 때 여호사밧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라고 대답하고(대하18:3), 함께 전장에 나갔다가 북쪽의 아합 왕은 전사(戰死)했고 여호사밧은 전쟁에 패배를 당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대하 18:28-34).

당시의 선견자 예후는 전장에서 돌아오는 여호사밧 왕을 맞이하여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고 책망했다(대하 19:2).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이런 책망을 듣고도 훗날 또 다시 북쪽 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과 교제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여호사밧이 악을 행하는 아하시야와 교제한 것이 죄가 되어 여호사밧이 만든 배가 부서졌다고 말씀하고 있다(대하 20:35-37).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훗날 남쪽 나라 유다 왕 아하시아는 북쪽 나라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을 찾아갔다가 해(害)를 받았다(대하 22:1-9). 성경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죄가 된다고 극명하게 말씀하고 있다(시 1:1-3; 139:21).

우리 정부가 과거에 햇볕정책을 실행하므로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천문학적 숫자의 돈은 북한의 서민들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일반 국민들을 위해 썼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겠는가. 모두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그 돈으로 만든 무기 앞에서 떨고 있지 않은가. 혹자는 그 돈이 핵을 만드는 일에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고 말하나 북한의 정권 잡은 사람들이 그것을 말해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준 돈 때문에 앞으로도 엄청난 어려움을 당해야 할 것이다.

둘째, 사람은 무엇을 받아서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다. 과거 우리나라가 어려웠을 때 미국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가. 그런데도 지금 진보 측 사람들과 좌파 사람들은 여전히 감사를 모르고 반미(反美)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무엇을 받아서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복음을 들을 때 가능한 것이다(롬 10:17). 그런고로 햇볕정책을 가지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사(餓死) 직전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돈을 주고 평화를 사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의 동기를 살펴야 한다. 많은 여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떨어져서 조기 유학길에 동행한다. 동기가 잘못되었다(고전 7:5). 또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교회를 비방한다(마 7:1-5).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없다. 또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반 정부한다. 동기가 잘못되었다(롬 13:17; 딛 3:1-2). 우리는 성경을 보고 또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순수하지 않은 동기를 고쳐 나아가야 할 것이다.
                                                                                김수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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