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전에도 아이티는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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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전에도 아이티는 거기 있었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2.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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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전 아이티 다녀온 정화영 작가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나라"

 

▲ 지진이 일어나기 전 아이티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아이티에 지진이 났다고요?”

새해 벽두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월 12일 새벽, 진도 7.0의 강진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한 것이다. 정화영 작가(38)는 반년 전에 한 달간 머물며 가족처럼 지냈던 아이티 친구들에 대한 생사 확인이 급선무였다.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생사를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기도했다.

#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곳으로

▲ 아이티 아이들의 엄마가 된 백삼숙 선교사. 그녀는 아이티에서 있는 유일한 한국 선교사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아이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 남동부 카리브해에 인접해 있는 아이티는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작은 섬나라였다. 방송제작을 위해 수많은 빈민국을 돌아다녔던 14년 차 정 작가에게도 아이티는 생소한 나라였다. 그런 그녀가 아이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으레 작가들이 가지는 ‘호기심’의 발로였다.

“한 선배 PD가 촬영한 다큐에 등장하는 아이티는 처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곳에서 현지 고아를 돌보며 선교하시는 60대 할머니를 보았을 때 말할 수 없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녀가 본 할머니는 백삼숙 선교사(67)였다. 지금은 가족과 같이 가까워진 백 선교사는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힘들게 선교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 작가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내 신앙적 의문이 싹텄다. ‘이웃국가인 도미니카만 해도 선교사가 여러 명인데, 왜 아이티에는 선교사가 한명 밖에 없을까?’

마침 그녀는 십수년 지내온 방송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을 위해 하던 일을 접고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아이티를 위한 기도를 하게 하셨다. 그리고 왜 가야하는지, 무엇을 보고 싶은지도 모른 체 백삼숙 선교사를 기다렸다. 기도를 하면서 아이티의 고통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5월, 드디어 백 선교사를 만났다. 두 달 후 그녀는 아이티에서도 최고 빈민가로 꼽히는 시테솔레이에서 720시간을 머물며 온 몸과 마음으로 그 나라를 품을 수 있었다.

# 아이티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나라  

▲ "아이티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나라입니다"

아이티는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흙으로 된 쿠키가 정상적일 리 없었다. 10미터 이상 깊은 곳에서 캐낸 흙에 물과 소금, 마가린을 첨가해 햇볕에 말려 만든 진흙쿠키. 이 지역 아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흙을 먹는데 소화가 잘될 리 없고, 기생충 등 해로운 물질이 섞여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맛이 궁금해 하나를 먹었다는 정 작가는 “짜고 느끼한 흙을 먹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는 기생충약을 권했다.

“아이티가 어떤 나라냐는 질문에 저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나라라고 말합니다. 너무 쉽게, 작은 질병이나 기생충 등 별거 아닌 이유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티에 다녀온 그녀는 “풍요 속에서도 감사가 끊겨 버린 내 삶이 미안했고, 작은 것으로 싸우고 미워했으며 혹은 상처받았다고 울었던 기억도 미안했다”고 말한다. 헐벗고 굶주린 곳에서 삶을 연명해가는 아이티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지난 삶이 떠올라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10명의 고아들을 돌보는 백삼숙 선교사의 삶 역시 그녀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숙녀가 된 엔나, 예쁘고 사랑스런 슈덴, 축구선수가 꿈인 조지, 꿈꾸는 눈을 가진 제프린, 찬송 소리가 아름다운 다빗, 내 손을 잡아끌던 뤼제, 쑥스러움이 많은 안젤로, 내 무릎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쟈스민, 그리고 잘 생긴 훈남 피테손. 하나님께서 선택한 10명의 아이들을 떠올리면 난 심장이 콩닥거립니다.”

지금은 가족과 같이 돼버린 아이들. 그들이 나온 사진을 펴 보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녀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 아이티에서 드려지는 예배. 백삼숙 선교사(왼쪽)와 정화영 작가.

# 도움이 필요 한 땅 아이티를 아시나요?

“아이티 지진 소식을 접한 후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누가 아이티를 도와줄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는 고통의 땅이라는 것을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티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한국에 돌아가 책을 펴낼 계획이었다. ‘적어도 몇몇 사람들은 아이티를 기억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미지의 나라, 불모지와 같은 아이티를 알리고 싶었던 그녀는 한 달 간의 기록과 사진,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 줘’(강같은평화)가 그것이다. 그녀가 집필을 마치고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중 아이티에 지진이 났다.

그리고 한 달. 거의 모든 언론사와 구호단체들이 일제히 아이티 돕기 모금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 통합한 한국교회봉사단과 한국교회희망연대는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이란 이름을 내걸고 첫 공식사업으로 아이티 모금 운동을 벌였다. 지난 19일에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100억 원 이상 모금된 아이티 구호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벌였다.

아이티를 알아줬으면 하는 그녀의 기도가 우리가 헤아리기 어려운 방법으로 이뤄졌다. 순식간에 전 세계가 아이티를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저서의 에필로그를 통해 이렇게 적었다.

“지진 이후에 사람들은 방송과 각각의 매체를 통해 아이티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를 알게 됐고, 그곳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도 알게 됐다. 희망을 추격당하던 사람들이 벼랑 끝까지 몰려났다가 깊은 아래 어딘가로 추락해버린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며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땅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돕는 자를 보내며, 아이티에 복음의 불길을 일으키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 회색 도시를 누비는 화려한 '땁땁이'.


# 아이티 전도사가 된 들레

▲ 아이티 전도사가 된 정화영 작가 '들레' . 기사에 게재된 사진들은 정 작가 직접 찍은 것이다.

아이티 지진 이후 그녀는 더욱 분주해졌다. 아이티 현지 선교사와 한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전에도 한국에서 아이티로 파견되는 수자원공사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출국지원을 위해 인천공항을 다녀왔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서도 아이티의 참상과 원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완공 후 세금 낼 돈이 없어 짓다 만 회색 도시, 그 사이를 화려하게 꾸미고 누비는 땁땁이는 그녀에게 빈곤 속의 풍요처럼 안쓰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백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 차가 한 대 필요해서 한국 모 기업에 후원 요청을 했지만 아직 응답이 없네요. 앞으로도 하나님이 아이티에 대해 할 일을 주시면 무엇이든 할 거예요.”

출판사를 통한 사진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 지진이 있기 전 아이티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6천여 장의 사진은 이제 귀한 자료가 됐다. 이제는 아이티 전도사가 된 것이다.

정 작가는 민들레를 좋아한다. 그래서 스스로 "들레라고 불려달라"고 말한다. 민들레가 가진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작은 체구, 약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나라 아이티로의 여행을 감행했던 그녀의 모습과 닮았다. 그런 그녀가 아이티를 향해 ‘나의 민들레가 되어 달라’고 외친다. 그녀는 “열대국가인 아이티에서도 민들레는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말하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국은 선교사들이 나눠준 사랑으로 신앙을 싹틔웠다. 그리고 그 신앙의 씨앗이 1907년 평양대부흥을 계기로 퍼졌다. 동시에 일제 침략, 식민통치,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암울한 터널을 지나 지금의 신앙과 경제 부흥을 이뤘다. 정화영 작가는 이 같은 기적의 역사가 아이티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믿음의 선조가 남긴 신앙이라는 유산과 신앙의 선배가 뿌린 피와 눈물 그리고 그들이 부려 놓은 기도의 열매를 그냥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면, 이제 우리도 시작할 때입니다. 시테솔레이의 기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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