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아름다운 일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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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아름다운 일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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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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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물에 넣고 끓이면 물은 그대로 있고 계란이 딱딱하게 변하지만 차를 끓이면 맛뿐 아니라 색깔까지 완전한 차(茶)로 변한다. 물과 차가 완전히 일치되지 않으면 온전한 차의 맛과 향을 풍길 수 없다. 따라서 차 맛은 차의 품격과 물의 순도, 차를 달이는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탓에 옛적부터 차를 좋아하는 다인들은 좋은 토양에서 자란 어린 차 잎을 선호했고, 살아있는 생수를 사용하였으며, 차를 잘 달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일류의 차 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건강한 교회를 꿈꾼다. 대형교회가 되기보다는 기드온의 300용사처럼 작지만 건강한 교회를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그 중에서 일치라는 요소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몸의 각 부분에 해당되는 지체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보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뜻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뇌에서 내리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듯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이 각 지체들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그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거룩한 흐름이 우리 몸 가운데 왜곡되지 않고 누수 됨이 없이 온전히 전달되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있는 영적 절연체들을 없애야 한다. 이 영적 절연체들은 우리의 생각, 우리의 느낌, 우리의 경험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성도들 상호간의 일치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의인으로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의인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우리는 세상의 구습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실족을 하고 성도 상호간 상처를 줄 경우가 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어느 신학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공사 중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 자신을 비롯해 모든 성도들이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알고 나면 비판과 정죄하기에 앞서 이해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일치를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서대학교 대우교수·유아다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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