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동화]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그리움이 담긴 기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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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동화]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그리움이 담긴 기차소리
  • 운영자
  • 승인 2009.12.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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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땅 동북삼성인 길림성과 요녕성, 흑룡강성에는 우리 동포 200여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북간도’라고 불렀던 연변 자치주에는 우리 동포 90여만 명의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란강의 물줄기가 도심 한복판을 가로 지른 채 도도히 흘러가는 용정시는 약 25만 명의 전체 인구가운데 60%이상이 우리 동포들입니다.

“여보, 이대로 있다가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수 없겠어요.”

“글쎄, 나도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소. 밤이면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 대한이가 피곤한지 코를 골며 잠이 든 사이 대한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머리를 맞댄 채 장래문제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3개월째 당신이 월급을 받아오지 못했으니 어떻게 생활을 꾸려 나가란 말입니까?”

대한이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며 남편에게 푸념을 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한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이곳 연변지역은 금방 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렇게 심각해지는 것 아니겠소.”

“그건 저도 알아요. 이제는 이곳도 자유 시장 경제의 체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살길을 찾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요. 옛날처럼 국가나 회사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거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어린 아들 대한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저 어린것을 놔두고 갈 수도 없고….’

긴 한숨과 함께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아내의 말에 깜짝 놀란 대한이 아버지가 되물었습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소?”

“아무래도 제가 돈 벌러 한국에 가야겠어요.”

대한이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 돈 벌러 가기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뒤였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제 남동생이 주선을 해서 한국에 있는 옷 만드는 공장에 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저 어린것 때문에 마음이 걸려요.”

대한이 아버지는 국가기관에 다니는 공무원이었지만 벌써 몇 달째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 태산 같았던 터라 아내의 결정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결심이 그렇다면 내가 대한이와 이곳에 남을 테니 마음 편하게 다녀오도록 해요.”

“글쎄,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니까 걱정이지요. 어렸을 적부터 대한이는 내가 곁에 있어야만 마음 놓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잖아요.”

대한이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을 닦아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 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떠나기 전날까지는 대한이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이렇게 남편에게 부탁한 대한이 어머니는 하나하나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이가 입을 옷과 학용품도 모두 사다 놓았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그저 좋아하는 대한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쓰리고 아프기만 했습니다.

“엄마, 왜 옷가방을 싸는 거야? 어디가?”

떠나기 전날 대한이가 잠자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옷가방을 싸던 어머니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니야, 시간 날 때 옷 정리를 해두려는 거야.”

대한이는 잠을 청했으나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대한이는 자는 척 두 눈을 감고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여보, 대한이를 부탁해요!”

“그래, 걱정 말고 당신이나 몸조심해요. 한국은 이곳과 달라서, 잠도 못자고 종일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디다.”

대한이는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돈 벌러 가기 위해 이렇게 짐을 꾸리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엄마, 나를 두고 가시면 안돼요. 나는 엄마 없이는 혼자 살수 없어요.’

대한이는 이불 속에서 혼잣말로 이렇게 몇 번이고 중얼거렸습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대한이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 어머니의 눈치만을 살폈습니다.

 “대한아, 엄마가 며칠 동안 어디 다녀올테니 아빠랑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대한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제까지 숨겨 온 서러움이 금방이라도 폭발 할 것만 같았습니다.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는 대한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기차시간에 늦지 않도록 어서 역으로 나갑시다.”

대한이 아빠는 아내의 옷가방을 꺼내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정들었던 고향 땅과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어린 외아들을 놔두고 집을 떠나는 대한이 어머니의 마음은 정말 서글프기만 했습니다.

기차를 타기 위해 남편과 이별의 손을 흔들며 개찰구를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 가면 안 돼! 옷도 학용품도 필요 없단 말이야!”

대한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이 아버지는 얼른 대한이의 앞을 가로막고 억지로 부둥켜 안았지만 대한이는 계속 소리쳤습니다.

“어젯밤에 엄마 아빠가 하는 소리를 다 들었단 말이야! 가면 안 돼, 엄마~!”

대한이의 외침을 삼켜버린 기차의 ‘칙칙폭폭’ 기적소리가 역 대합실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대한이 엄마의 모습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대한아, 정신 차려! 이게 웬일이냐?”

기차소리에 대한이는 그만 정신을 잃은 채 기절을 하고 만 것입니다.

한참이 지난 뒤에 깨어난 대한이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맥없이 할 말을 잊은 채 아빠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대한아, 엄마가 너를 위해서 돈 벌러 갔단다. 아빠와 함께 지내면서 공부 잘하고 있으면 엄마는 돈을 벌어 이 기차를 타고 다시 집에 돌아온단다.”

대한이 엄마가 기차를 타고 한국으로 돈을 벌러간 후부터 어찌된 일인지 대한이는 기적소리만 들으면 힘없이 쓰러지는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습니다. 대한이가 어느 덧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대한이 엄마가 한국으로 가신 뒤부터 대한이는 꿈 속에서도 기차만 보면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를 지릅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악몽에 시달리며 지내던 대한이는 그만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은 한국에 있는 대한이 엄마에게도 곧바로 알려졌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대한이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슴만 태우다가 중국 동포들이 많이 다닌다는 교회를 찾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목사님께 자신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자고 하며 걱정해주셨습니다.

어느 주일날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께서는 밝은 모습으로 대한이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대한이 어머님, 기쁜 소식입니다. 대한이가 앓고 있는 병이 다름 아닌 ‘사랑결핍증’이라는 병이랍니다. 의학적으로는 ‘마라스머스’라고 하는데, 이 병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무서운 병인데 다행스럽게도 뒤늦게라도 부족한 사랑을 받게 되면 금방 치료가 된답니다. 마침 새해를 맞아 우리 교회에서 중국에 자녀들을 두고 온 성도들을 위해 신년 설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중국의 가족 한 명씩을 초청하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 때 대한이를 함께 초청해서 엄마와 함께 며칠만이라도 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하면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우리 대한이를 교회에서 초청하여 만날 수 있게 해 주신다구요? ”

“해마다 우리교회가 동포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해오고 있는 특별 사업입니다.”

대한이 어머니는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목사님의 손을 잡은 채 할 말을 잊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특별헌금을 해서 경비를 마련해서 하는 일이니 교우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해서 꿈에도 그리던 대한이를 3년만에 한국에서 만나보게 된 것입니다.

대한이가 한국에 오던 날 인천 국제공항에서는 ‘환영 조선족 동포 어린이 초청’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조선족교회 교인들과 대한이 엄마가 함께 배웅을 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대한이와 함께 초청받은 동포 어린이들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엄마, 나 대한이야!”

“그래, 우리 대한이 그 동안 많이 컷구나!”

대한이와 어머니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3년 만에 어머니와 대한이는 행복한 밤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호랑이 해 설날을 어머니와 그리고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조선족교회 목사님과 성도들과 함께 서울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사이에 대한이의 어둡던 표정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대한아, 이번 설이 지나면 너와 함께 엄마도 집에 돌아가겠으니 이제는 걱정하지 말아라.”

“ 정말? ”

“그럼 정말이고 말고 엄마랑 같이 기차타고 집에 돌아가면 아빠도 좋아하시고 네 병도 깨끗이 낫게 될 꺼야.”

그날 밤 대한이는 엄마와 기차를 타고 신나게 고향으로 달려가는 꿈을 밤새도록 꾸었지만 식은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적소리를 듣고 달려 나오는 아빠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면서 대한이의 병은 어느 새 씻은 듯 나았습니다.


● 김철수 장로 <아동문학가>

아동문학가 김철수 박사는 전남 함평출생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 동시입상과 월간문학 동화당선으로 문단에 데뷔 한국아동문학 작가상, 한국기독교문학상, 한국글사랑문학상 등 50여 차례의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와 한국문인협회 감사를 역임, 한국아동문학회 지도위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사, 국제아동문학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전남도민일보 사장과 주필, 논설주간 및 한국찬송가위원회 전문위원이다. 현재 미국 솔로몬대학교 예술대학원장과 월간아동문학 발행인 계간크리스찬문학 발행인으로 기독교문화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저서로 동화집 ‘우산장수 할아버지’ 등 268권의 창작집이 있다. 
<연락처:011-613-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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