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관계의 회복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성의 파괴와 동시에 일어난 현상은 관계의 붕괴였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불신 관계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적대관계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역시 공격적인 관계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성이 회복되면 그 관계들이 회복되고 정상화된다. 둘째, 성장한다. 건강한 생명체가 갖는 특징은 지속적 성장이다. 건강한 영성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셋째, 화해의 장을 마련한다. 영성회복의 현장엔 반드시 화해의 장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넷째, 자아 통제와 관리가 이뤄진다. 건전한 영성이란 자기 통제와 관리, 그리고 극기와 통찰이 이뤄지게 된다. 기독교는 영성종교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본질이해는 현상학적 접근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모이는 숫자, 건물의 크기, 벌이는 사업 등으로 기독교의 본질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참여, 현실비판, 사회봉사의 경우도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그리고 영성회복없는 표피적 행위는 평범한 사회활동과 다를 바 없다. 요3:3에서 그리스도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거듭남이란 구원의 확인과 영성의 회복을 뜻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행위는 종교행위일 수는 있어도 영성행위는 아니다. 그래서 교회개혁이나 갱신을 외치는 자신을 향해,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창출을 위해 행동하는 기독교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당신은 거듭났느냐라는 것이다. 우리는 거듭난 정치를 바라고 거듭난 교회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구나 제도의 개혁으로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을 바꾸고 국회의원을 새로 뽑고 헌법을 고치는 것으로 희망사회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는 사람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시대마다 그 사회를 책임진 영성공동체로 제몫을 다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에서 현대교회에 이르기까지 책임지지 못했거나 실패한 부분들이 더 많았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에스겔서의 환상이 주는바 교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마른뼈들이 군대가 되었으나 그들은 힘도 동작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생기가 들어갔을 때 살아 움직이는 군단병력이 될 수 있었다. 1,200만 해골뼈들이 제자리를 잡고 힘줄이 오르고 껍질이 덮이고 그리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군대가 되어야 한다. 영성이 살아야 백전백승의 군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제소리를 내고 제몫을 해내려면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박종순목사(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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