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105) 헌신의 철저함을 강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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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105) 헌신의 철저함을 강조하다
  • 승인 2006.10.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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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누가복음이 마가, 마태복음과 그 순서가 다른 기사(記事) 중 하나는 최초의 네 명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른 사건이다. 마가, 마태복음의 경우 제자 부른 사건 다음에 시몬의 장모 치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막 1:16-20, 1:29-31; 마 4:18-22, 14-17), 이와는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먼저 시몬의 장모 치유 사건이 기록된 후에 제자 부른 사건이 등장한다(눅 4:38-39, 5:1-11).

물론 이러한 순서상의 차이는 공관복음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일상적 현상이다. 이는 복음서가 연대기적 방식으로 기록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그러면 이제 초점은  이러한 기록된 차이에 대한 이해 및 해석이다; 왜 누가는 사건의 순서를 바꾸고 사건의 도치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다수의 학자들의 견해는 제자 부름 사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순서상의 차이 외에 양자 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면, 먼저 마가복음에서는 주님이 어부들을 부를 때 그들은 그물, 배, 아비 등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좇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눅 5:11). 제자들에게서 모든 것이란 그물, 배 같은 재산만이 아니라 가족 및 가정을 포함하여 그 소유 전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용어 차이와 순서상의 차이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논리적으로 볼 때, 마가(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부름 받고 난 후에도 시몬의 경우 여전히 장모를 돌보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에, 제자 부름 사건에서 “모든 것”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어부 제자들이 부름 받기 이전에 시몬의 장모가 이미 치유되었으므로, 제자 부름 사건에서 ‘모든 것’이란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모든 것’이란 단어는 누가가 즐겨 사용하는 애용어 중 하나로써, 주님의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헌신의 철저함’을 가리킨다(눅 14:33; cf. 18:22, 28). 즉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가족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포기할 각오를 가져야 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결국 누가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제자 부름 사건 이전에 장모 치유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제자도와 관련하여 본래 전하고자 하였던 의도를 잘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헌신을 강조하는 이야기는 눅 9:57-62에도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 9:59),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눅 9:61) 이러한 추종자들의 요청에 대한 주님의 답변은 여전히 헌신의 철저함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

부친의 장사 및 가족과의 작별도 허락하지 않은 채 제자로서의 헌신을 강조한 것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일는지 모르지만, ‘우선순위’의 문제로 풀이할 때 여전히 유효한 명령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추구하는 열심이 있어야 마땅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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