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94) 세례 요한의 커다란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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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94) 세례 요한의 커다란 영향력
  • 승인 2006.07.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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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세례 요한에 대한 기록은 공관복음서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사실 그의 공식적인 활동 내역은 눅 3:1-20이 전부이다. 물론 누가복음 7장에서 잠시 한 번 더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눅 7:18-23), 그것은 오히려 주님의 사역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다(눅 7:22).

또한 주님은 이어지는 가르침에서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라고 말하면서(눅 7:24-28) 그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공관복음에 나오는 세례 요한에 대한 기록은 사실 매우 미미할 뿐이다.


따라서 공관복음의 내용만을 갖고 세례 요한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한 예로, 사도행전 18장을 보게 되면, 공중 앞에서 유대인들과 상대하여 벌인 논쟁에서 유대인들을 이긴 유일한 인물로 아볼로를 거명하고 있는데, 누가는 그에 대하여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행 18:24-28).

그러나 그가 비록 요한의 세례만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음을 참작할 때, 세례 요한의 가르침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겠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 존재했던 네 개의 분파 중 한 분파의 중심이 될만큼(고전 1:12) 초대교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로 평가되는데, 그가 에베소에서 거주하는 동안 예수님에 대한 내용은 잘 모르고 오직 요한의 세례만을 알았다는 사실은 세례 요한의 영향력이 어떠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에베소와 고린도 교회에 세례 요한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활약이 단지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제한되었던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비록 그는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교한 음모에 희생되어 참수되어 죽었지만(막 6:17-29; 눅 3:19-20), 그의 영향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도 팔레스타인 밖인 에베소에 그의 제자들이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그 영향력은 여전히 유력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요한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그를 엘리야, 혹은 말세에 올 그 선지자, 심지어 그리스도로 착각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매우 지대하였음을 발견하게 된다(요 1:19-28; 눅 3:15). 이런 맥락에서 일부 신학자들은 세례 요한과 주님의 메시지의 연속성을 근거로 하여(마 3:2; 4:17) 주님이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 그의 제자였을 것이란 가정도 하게 되지만, 성경적 근거는 미약하다.


이러한 성경적 증거들을 종합할 때 세례 요한이 기독교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그의 역할은 오실 메시야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분수에 지나침이 없이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함으로써(눅 3:16) 다가올 메시야 시대를 훌륭하게 준비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성공적인 사역의 배경에는 그 길을 철저하게 준비한 세례 요한과 같은 헌신적인 공로자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이었지만, 그는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다. 인생의 성공이란 반드시 정점(頂點)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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