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92) 주님과 세례요한-동역자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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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92) 주님과 세례요한-동역자적 관계
  • 승인 2006.07.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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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마리아 찬가(Magnificat)에 이어서 누가복음 서두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찬송시가 사가랴의 찬가(Benedictus; 눅 1:68-79)이다.이 찬가는 사가랴가 벙어리로 있다가 혀가 풀려 말하게 되었을 때 한 찬송(눅 1:64)의 내용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기적적인 출생을 보고 주위의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눅 1:66)에 대한 답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찬가는 형태상 눅 2:22-40과 구조적 병행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가랴의 인사를 받고, 예수님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시므온과 안나로부터 인사를 받는 것으로 대조될 수 있겠다.


사가랴 찬가와 마리아 찬가는 구약에 대한 비슷한 간접 인용, 종말론적 지향성, 구원과 관련하여 메시야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들인 마리아와 세례 요한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찬송의 구조가 일단 다르고, 또한 마리아 찬가는 구원사(救援史)에 있어서 화자(話者)인 마리아의 위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에, 사가랴 찬가에서 화자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


아울러 마리아 찬가는 모든 것을 이미 성취된 것으로 찬양하고 있는 데 반하여, 사가랴 찬가는 종말이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종말이 완성될 미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천사 가브리엘의 예언 즉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게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눅 1:15-17)는 말슴은 세례 요한에게 예비하는 자로서 종말을 준비하는 역할을 부여하고, 마리아 찬가(눅 1:46-55)가 메시야의 오심을 모든 종말론적 소망의 성취로 찬양하고 있다.


반면에 사가랴 찬가는 이 두 예언 모두를 포함하면서 구원 성취에 있어서 주님과 요한의 동역자적 관계의 성격을 확고하게 밝히는 것이 특징이다.


사가랴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의 수태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속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수태가 메시야적 구원을 성취하는 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 동안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하여 미미하게 실현되었던 소망이 이제는 하나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사가랴는 예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아들 요한의 역할은 무엇인가? 동정녀의 수태라는 기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메시야의 탄생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진 일과 앞으로 장차 이루어질 구원의 체험 사이에서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될 것이다(눅 1:76).


결국 세례 요한은 예비적인 방식으로, 예수님은 궁극적인 방식으로 종말에 부어질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예비적으로 부어주는 일은 궁극적으로 부어주는 일에 길을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가랴 찬가는 마리아의 수태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눅 1:68) 메시야의 궁극적인 오심(“돋는 해”)이라는 최후의 절정(눅 1:78)으로 나아가고 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누가복음 3장에서이다(눅 3:1-20).


세례 요한은 주님이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구원의 지식을 선포하고, 죄 사함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준비시키는데, 이 모든 사역을 사가랴의 찬가는 아름답게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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