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90) 여성들을 위한 복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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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90) 여성들을 위한 복음의 시작
  • 승인 2006.06.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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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누가복음의 탄생사화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마리아의 두드러진 역할이다. 앞에서 잠시 주(主)의 모친으로서 마리아의 모습에 대하여 언급하기는 하였으나, 마리아는 특히 누가복음의 탄생사화에서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이어 주목받아야 할 인물로 등장한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탄생사화에 비교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마태복음의 탄생사화에서 핵심인물은 역시 요셉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유대교를 대변하는 회당(會堂)과의 갈등 혹은 대립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야란 사실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이를 위하여 주님이 다윗 가문의 혈통의 후예인 요셉의 아들인 것이 강조되어 나타난 것이다(마 1:16).


이러한 주님의 육신적 혈통은 누가복음에서도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어서, 눅 3:23에 의하면 주님은 ‘요셉의 아들’로 소개되어 나타난다(참고, 눅 1:27).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주님은 육신적으로는 요셉의 아들로서 다윗의 자손이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사실을 로마서 서문에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이런 맥락에서 마태복음은 요셉의 역할이 매우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주의 사자가 오직 요셉에게만 세 번씩이나 현몽하여 나타나 거룩한 아기와 그 모친을 보살필 자세한 방도를 지시한다(마 1:20, 2:13, 19). 반면에 마리아는 수동적 위치에서 요셉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상황이 역전되어 나타난다. 주의 사자 가브리엘은 이제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에게만 나타나서, 구주의 잉태 및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달한다(눅 1:26-38).


이처럼 마리아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표현되면서, 오히려 요셉은 마리아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이름의 등장 비율만 보아도, 마태복음에서는 5:3으로 요셉이 마리아보다 자주 등장하나, 누가복음에서는 9:2로 마리아가 요셉보다 더 자주 등장함을 보게 된다.


마리아의 두드러진 역할과 함께, 그 남편 사가랴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찬송시를 읊은 엘리사벳과(눅 1:42-45), 죽기 전 그리스도를 보리란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선지자 시므온과 대비되어 나타나는 여선지자 안나(눅 1:26-38)의 등장은 탄생사화에서 여성들이 남성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임을 시사하여 준다.


사실 고대세계의 남자 중심의 가부장적 - 남존여비적 문화에서 얼마든지 남자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 터이나, 이처럼 여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하게 활약하는 것으로 기록된 것은, 주님 탄생으로 말미암아 전개되는 새로운 시대에서 여성들이 감당할 역할 및 활약을 미리 예언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활약은 계속되는 누가의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어 등장한다. 이로 인해 누가복음은 “여성들을 위한 복음”(the Gospel for Women)이라는 별명까지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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