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대립 치유가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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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대립 치유가 급선무다
  • 승인 2002.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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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갈등과 대립, 그리고 증오는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다. 갈등극복은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해묵은 과제이지만 최근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하여 있었던 ‘반대’와 ‘환영’ 시위는 국민사이의 반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어서 사회갈등치유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임이 다시한번 증명되었다.
국회에서 조차 여야간 극언공방으로 대립이 노골화 되어 앞으로 우리사회가 어떻게 통합을 이룰 것인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자기의 생각·의견과 다르면 상대방을 험악하게 깔아뭉개는 독선과 파행이 넘치는 탓에 이념갈등의 벽은 더욱 높아질 것만 같은 양상이다.
1999년 이후 ‘증오’를 소재로 한 노래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우리 사회의 속사정과 무관치 않은것 같다. 이들 노래의 가사들은 상대방을 증오하는 섬뜩한 어휘들로 가득차 있다. 사이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일부 네티즌의 언어는 이미 미움의 단계를 넘어선 것들이 많다. 특정인에 대해 증오를 확산시키는 언어들도 난무하고 있다. 증오의 음악을 흘려보내고 이를 상품화하는 세상이 어찌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 흐름이 어디까지 세를 넓혀갈지 알 수 없어 두렵기만 하다.

사람은 누구나 미워하던 좋아하던, 모든 사람들과 공존한다. 만나고 일하면서 마찰이 생기게 마련이고, 의견조정 과정을 거쳐 새로운 방안을 찾는다. 그러나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복수의 충동에 묻혀 산다. 하루속히 이 것을 치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건강한 민주사회의 의견분출은 사회의 다양성과 폭을 키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뒤틀린 극단주의의 대결 속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짜임새 있는 논쟁이나 토론이 자리잡기 힘들다는데 우리 사회의 고민이 있다. 건전한 비판이나 논쟁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감정을 남발하는 대립이 사회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문제다. 더구나 그같은 대립의 그림자가 노사교섭, 교육개혁, 의약분업 등 우리사회의 곳곳에 드리워지는 바람에 정책혼선을 키우고 사회전체를 계층·세대별로 찢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루속히 이념·갈등을 풀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적 태도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과 접근방법을 인정하는 민주시민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갈등극복을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갈등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생활속에서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겉으로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편견과 대립의 편에 서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편견과 아집의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들어오지 못한 모든 것을 차별하고 배척해 오지 않았는지, 구별하고 단죄하고 없애 버리기를 종교적인 열정으로 해오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교회는 어떻게 하면 이 사회의 불신과 대립을 극복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것인가에 눈을 떠야 할 때다. 흑백논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사회의 건강한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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