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사사기(29) 사사와 왕에 대한 기록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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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사사기(29) 사사와 왕에 대한 기록 비교
  • 승인 2006.10.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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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교수<연세대 연합신대 구약학>




사사기 10장 이하에는 소사사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소사사란 그의 삶에 대한 기록에서 전쟁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특성이 있다.


사사기 10:1-5절에서는 사사 돌라와 야일의 업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돌라는 잇사갈 지파의 사람으로서 부아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돌라는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였고, 23년간 사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사사기 10:3-4절에서는 길르앗 사람 야일이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돌라와 야일은 아비멜렉이 죽은 후 그리고 입다 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였다. 일부 학자들은 돌라와 야일의 이야기 속에 전형적인 사사의 통치를 나타내는 양식이 없기 때문에 소사사(小士師)들은 단지 법률적인 영역만 관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에 대사사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재판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의 성향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사는 입다이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소사사의 이름은 대부분 부족의 이름이며, 숫자 12를 맞추기 위하여 삽입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거부한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소사사는 구원자(savior)이지 재판관(adjudicator)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사에 관한 기록에서 ‘바야캄’(그래서 그들이 일어났다)이라는 말을 쓴 것은 이들이 대사사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힘을 얻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명기 사가는 다른 사사들 즉 돌라부터 삼손까지(삿 10:1~16장)의 통치 연한과 사사의 활동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는 열왕기에 나타난 분열왕국시대 왕들의 통치를 묘사하는 것과 같이 실제 통치한 연대를 기록하고 있다. 사사기 10:1-2에 묘사된 돌라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삿 10:1-2).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삿 10:3-5)


사사에 관한 기록과 열왕기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왕의 행적에 관한 기록과 비교하면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사에 관한 기록도 이스라엘 왕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사사의 인적사항으로 출신지역을 밝히고, 사사의 통치 기반이 되는 지역, 그리고 통치 연한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사사가 죽은 후 장사되어진 장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그 후에 누가 사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은 다음 사사의 첫 부분에 기록하고 있다.


특히, 기드온의 경우는 사사기 8:29-35절에서 기드온의 행적 이외에 그의 개인적인 사항과 죽음에 관하여 묘사하는 부분은 다윗이나 솔로몬의 죽음을 기록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솔로몬의 경우 열왕기상 11:41-43절에서 솔로몬이 통치한 날 수가 40년임을 밝히고, 그가 다윗성에 장사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드온도 나이가 많아 죽으매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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