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사사기(16) 에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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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사사기(16) 에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구원
  • 승인 2006.06.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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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교수<연세대 연합신대 구약학>




사사기 3:31절은 사사 삼갈(Shamgar)에 대하여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세 번째 사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사기에 일반적으로 기록되는 내용이 생략되었고 단지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는 점만 강조한다. 히브리어 동사 ‘야샤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삼갈 이야기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사사기 3:31절과 4:1절 사이의 모순 때문에 생긴다. 즉 에훗의 뒤를 이어 삼갈이 사사가 되었고, 그 후에 드보라가 사사가 되었으면 4:1절은 ‘삼갈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라고 기록되어야 하는데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비록 삼갈이 에훗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지만 그러나 사사기 4:1절 때까지 에훗은 살아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것은 3:31절에 삼갈 앞에 사사였던 에훗이 죽었다는 표현이 없고, 히브리어 원문에는 단지 ‘아하라브’ 즉 ‘그(내용상 삼갈)의 뒤에’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사의 경우 전임 사사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사사기 4:1절에서 처음으로 ‘에훗이 죽으니’(‘에후드 메트’)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따라서 중세의 주석가들은 에훗이 죽던 해에 삼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다른 학자들은 삼갈의 이야기가 드보라 이야기 앞에 놓인 것은 사사기 5:6절 때문으로 이해한다.


사사기 3:31절에는 삼갈이 사사(쇼페트)라는 언급이 없고, 삼갈 단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만 기록하고 있으며,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중세의 주석가인 레비 게르숌(Levi Gershom)은 삼갈은 사사기 4장의 기록을 근거로 가나안의 왕 야빈(Jabin)이 이스라엘을 억압하기 시작하여 20년째 되던 해에 활동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삼갈이 블레셋을 물리친 것이 소모는 막대기이다. 소모는 막대기로 번역된 ‘말마드 하-바카르’는 “소의 꼬챙이”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삼갈이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는 표현의 동사는 “치다” 혹은 “뭉게다”는 뜻의 ‘나카’ 동사를 사용한다. 삼갈이 이처럼 하찮은 무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물리쳤음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삼갈의 이름이 이스라엘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갈이란 이름은 후리 사람이나 우가릿 사람들 혹은 아시리아 사람들이 사용하던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낫 역시 가나안의 여신인 아낫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삼갈과 아낫의 이름은 이스라엘 이름이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삼갈이 외국 이름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많은 외국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 때문에 사사기 3:31절의 삼갈 이야기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삼갈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삼갈이 사사기 5:6절의 드보라의 승리의 노래 가운데 등장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학자들은 삼갈을 갈릴리 벧아나트(Beth-Anath) 출신의 가나안의 영웅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전쟁의 여신이었던 아낫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가진 가나안의 전사로 생각한다. 그러나 삼갈과 삼손은 모두 블레셋에 대항하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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