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교수<서울신대 구약학>
첫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나서 번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점이다. 번제는 하나님 앞에 완전한 헌신과 복종을 다짐하는 성격의 제사다. 그러므로 번제는 제물을 송두리째 제단에서 불살라 향기로운 냄새의 화제로 드렸다. 그러나 레위기 1:4에서 볼 수 있듯이, 번제는 속죄가 기본적인 목적이다.
속죄제가 구체적인 부정을 씻는 의미의 제사라고 한다면, 번제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속죄를 위한 제사다. 하나님 앞에 헌신과 복종을 다짐한다는 것은 그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이 필요한데, 그것은 속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번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과 복종을 다짐한 예배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다음 다시 화목제를 드렸다. 화목제는 의무가 아니고 원하는 자만이 드리는 제사라는 점에서 번제와 구별된다.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완전히 불살라 바치는 번제와 구별된다. 예배드리는 당사자와 더불어 주변에 있는 이웃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점에서 화목제를 ‘교제의 제사’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화목제를 언약과 관련된 제사로 소개하기도 한다(출 24:5, 신 27:7, 왕상 8:63). 번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면서 자신들의 헌신과 순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화목제를 통해 온 백성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가족과 같은 한 신앙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을 잘 지키겠다는 서원을 드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겜에서의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다짐하면서 언약을 재확인하는 언약 갱신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율법을 돌에 새겨놓는 것이나 모세가 기록한 모든 율법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한 것은 그런 예배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밝혀준다. 여기에서 세겜에서의 예배가 지닌 또 다른 성격을 알 수 있다.
언약에는 두가지 차원이 포함돼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차원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실천적 차원의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일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그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인도해 주시는 일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에는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입국이 기본적으로 전제돼 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는 전쟁 초기에 세겜에서 언약 갱신제를 드림으로써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킬 것을 서원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기본 전제를 전적으로 수용한 성격의 예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