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교수<서울신대 구약학>
여호수아가 여호와 군대장관을 만나고 난 뒤 본격적인 가나안 점령이 시작됐다. 가나안 점령의 첫 관문은 여리고성이었다. 여호수아는 더 이상 여리고성의 견고함을 두려워하거나 사기가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주도하시는 전쟁은 승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여호수아서 본문은 두 가지 점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여리고 성문이 굳게 닫혀있고 출입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들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정탐꾼들의 정세파악에서 볼 수 있듯이, 출애굽 사건이나 요단 건너편 아모리 왕들이 당한 일들로 인해 여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녹아 정신이 없었다(수 2:11).
둘째,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수 6:2). 여호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허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 훈련된 군대와 훌륭한 무기를 갖추고 있어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전쟁에 나서는 것은 패전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전쟁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여기에서의 준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성, 곧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신앙적 자세를 의미한다.
여호수아를 통해 하달된 여리고성 점령 작전 계획은 너무도 단순했다. 온 이스라엘이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과 함께 굳게 닫힌 여리고성을 일주일 동안 도는 것이 전부였다. 첫 육일 동안은 매일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아야 했다.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면 견고한 여리고성이 일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이다(수 6:3-5). 전쟁을 위한 작전 계획치고는 너무 단순해 오히려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하나님의 작전 계획을 전달받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한 가지 특별한 명령을 내렸다. 마지막 날 온 백성이 외치기 전까지는 절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 점을 세 번 강조하고 있다(수 6:10).
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작전 계획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적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여리고성을 포위한 채 하루에 한바퀴씩 돌라는 하나님의 작전은 아무리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그대로 순종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았다. 지시대로 따르고는 있지만 성이 무너질 것 같은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성미가 급한 누군가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전체에게로 번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지시하신 마지막 날이 되기 전에 이스라엘의 신앙은 중심을 잃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은 중도에서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여호수아는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철저한 함구령을 내린 것이다.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거룩한 병사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에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며 견뎌야 하는 인내도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