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대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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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대한 유감
  • 승인 2007.03.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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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대한 유감


 

기독교인들이 인사조로 하는 말에서 “주의 이름으로 또는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교제의 말로 부적절하다. 성경에 비춰볼 때 <주의 이름>과 <주 안에서> 되어진 일은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주의 이름은 전능자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 자체를 나타내는 말로서 “귀신을 쫓아내고”(마7:22, 막16:17, 눅9:42, 49, 행16:18), “선지자들이 주의 뜻을 전하고”(약5:10), “병자를 치유하는”(행3:6) 초자연적인 이적을 나타내었고 <주 안에>는 바울의 중요한 신학사상이기도 한데 그리스도 안에는 “죽은 자의 살리심이 있고”(엡1:20), “그의 안에는 모든 것이 충만하고”(골1:19),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요일5:11) 등의 신(神)적 충만성이 인간의 충분조건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주의 이름으로>와 <주 안에서>라는 말이 인사나 교제어로 적합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이 말을 쓸 수 있는 경우는 영적 행위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 주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존귀한 이름이고, 주 안에는 신령한 무한의 세계로서 온 우주 만물과 시공이 그것으로 섭리되어 초월적 역사가 무시(無時)적으로 편재(遍在)하므로 한 개인이 상황에 따라 어느 행위 앞에 ‘주의 이름’이나 ‘주 안에’를 전제조건으로 수식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공인된 영적 행위가 아닌 사적 행위일 때는 더욱 그렇다. 둘째, 교회공동체의 교제의 본질은 신앙의 바탕이지만 삶으로서의 친교는 중생한 인격과 윤리적 관계인데 굳이 인사말을 “주의 이름과 그의 안에서” 해야 하는가? 신자는 이미 주님의 이름과 주님 안에 의존되어 있어서 굳이 이를 단서(但書)적으로 “사랑합니다” 라는 말과 접속하여 표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셋째,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그 대상의 심성 안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심리적인 동기가 있을 수 있고 혹 그 대상이 이성일 때 겸연(慊然)쩍을 수 있는 도덕적인 정서를 “주님의 이름”으로 승화시켜 종교성으로 자기표현을 합리화하고자 수사(修辭)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과 “주님 안”은 인간행위의 부수적인 수사에 머물 수는 없는 것이다. 넷째, “주님의 이름과 주 안에”는 언제나 우리의 최고의 가치요 의존(依存)의 토대인데 이를 존재와 삶의 본질적인 방편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범상(凡常)한 관계적 수단과 통로로 인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주님의 이름은 언제나 영광스러워야 하고 주님의 안은 그의 본질적인 요소가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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