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차 한잔의 여유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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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차 한잔의 여유를 갖자
  • 승인 2009.10.2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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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시대 청년 엘리트인 화랑들이 때때로 야외에서도 차를 마셨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명승지인 강릉의 경포 등지를 유람하면서 이들이 차를 끓여 마셨던 이유는 대자연을 보면서 심신을 수련하고 도를 닦으며 아울러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화랑들은 야외용 다구(茶具, 차 마시는데 사용되는 도구)를 기본적으로 지니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유람도중 풍광이 아름다운 곳을 만나게 되면 들판이나 정자에서 자연스럽게 찻자리가 펼쳐지면서 차와 함께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 야외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여유가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화랑들에게는 남다른 기개와 낭만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비해 요즈음 우리네의 생활은 너무나 각박하다. 워낙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짬을 낼 여유가 없다. 이런 시대조류에서 옛날과 같이 한가로이 야외에서 차를 즐긴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무구하며 한가로운 발상이라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경치 좋은 곳에서는 쉬어갈 줄 아는 화랑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비록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만큼은 엑스레이더보다는 브레이크를 밟아 순간순간 여유를 잊지 않도록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있고 차 마시며 담소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별도의 차(茶) 방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차의 향기는 화려하거나 진하지 않지만 특유의 은은함이 배어있다. 찻잔도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사발을 닮았지만 볼수록 그 순수함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여유가 있는 시간, 일상에서 떠나 그냥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집중이 요구되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는 차 한 잔 이상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빌 게이츠와 같이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생각 주간(周間)을 가질 여유는 없지만 방 한 켠에 마련된 다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차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다실에서의 기도는 또 다른 상쾌함을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된다.


<한서대학교 대우교수·유아다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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