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일상생활과 함께 하는 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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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일상생활과 함께 하는 다례
  • 승인 2009.10.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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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중한 죄인을 처단하는 결정을 하는 모임에서 왕과 신하들이 절도 있게 차를 마시는 다례의(茶禮儀)를 행하였다. 그뿐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 법을 다루는 사헌부 관리들은 함께 모여 예의와 규범을 갖추고 차를 마시는 다시(茶時)를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란 ‘차를 마시는 시간’이라는 뜻인데 공무를 의논하기 전에 다례를 먼저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법을 다루기 전 격식을 갖춰 차를 마신 이유는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져 이성적 사유를 하게 되어 올바르고 치우치지 않는 엄정한 판단을 내리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담대함과 공무를 행함에 있어 삼가고 신중한 태도를 가지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왕과 신하들이 죄인을 사형시킬 것인지, 유배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다례의식을 행한 것은 차가 단순한 기호음식이 아니라 어떤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는 먹거리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요한 공무를 할 때 다례를 행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로서 우리 민족이 차를 마시는 것을 얼마나 심오하고 진지한 일로 여겼나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차 생활을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라 실생활과 긴밀하게 연관 지어 생활화하였다.

요즈음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차가 커피보다 건강에 유익한 음료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차를 접해봄으로써 차의 깊은 맛을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이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질 좋고 서민들이 이용하기에 부담이 없는 가격대의 제품이 많이 출시되어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 다음 차 마시는 것을 단순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일상의 생활 속에서 차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는 문화를 개발하고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저는 차와 말씀과는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말씀 묵상은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선조들이 법을 다루기 전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듯이 목회자들이 차를 마시며 맑은 마음으로 말씀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 묵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성도들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분위기에 따라 마시는 음료가 달라지겠지만 차분함이 필요로 하는 경우 마음을 들뜨게 하는 커피보다는 차가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아직까지 차를 불교문화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차는 엄연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먹 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식품이므로 우리가 꺼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다른 음료가 따라올 수 없는 차만의 독특한 효능과 장점을 살려 우리의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서대학교 대우교수·유아다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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