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개혁주의 생명신학과 신학교육으로 출범한 자생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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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개혁주의 생명신학과 신학교육으로 출범한 자생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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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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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총회(구 합동정통)의 신학적 정체성 - 한국교회 성장과 연합을 위한 비전과 사명(중)

김진섭교수 <백석대 대학원신학부총장>


 예장 백석, 교단 배태기-독노회 성장기-명칭 개명기-확정기 등 4단계 발전

“역사적 개혁신학과 정통적 칼빈주의 전통 고수하는 장로교회” 선언문 천명

 기독교대학 글로벌리더 백석학원과 동일한 비전과 사명 공유로 시너지 효과


4. 예장백석 교단 역사의 4단계 개관

어느 한 교단의 출범과 성장발전과 오늘 여기에의 현 주소를 살펴봄에는, 수직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섭리가 어떻게 그 교단을 인도해 오셨는가라는 질문과 수평적으로 인간의 선택과 역사적 책임의 관점에서 어떻게 그 교단을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십자가신학적으로 엮어져 있다. 지난 33년이란 비교적 짧은 역사와 함께 장로교 200개 교단 중에 세 번째 교세와 최고성장률이란 경이로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예장백석의 ‘신학적 정체성’ 규명에 관한 논의 역시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장백석 교단의 역사는 대략 아래와 같이 4단계로 개관할 수 있다. 첫째, ‘교단 배태기’(胚胎期; 1976. 11.1-1980. 5.16)로서, 현 백석학원(백석대학교, 백석문화대학, 백석예술대학, 백석신학교)의 설립자 장종현 박사에 의한 대한복음신학교(1976. 11.1)와 그가 초대 총회장을 역임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복음)(1978. 9)가 각각 설립된 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비주류)와의 유대관계(1979. 4.-1980. 4)를 맺어 오던 중에, 다시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진리)로 교단의 명칭을 개명하고, 신학교 역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진리) 직영 총회신학교로 개명한(1980. 5.16) 약 3년 6개월의 기간이다.

둘째, ‘교단 독노회 성장기’(1980. 5.16 -1981. 12.29)로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진리)의 재구성과 발전, 최초의 목사 안수(1980. 1.20)에서 비롯한 독노회(명칭, 연합노회; 1980. 12.29)를 거쳐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연합)와의 통합(1981. 12.29)까지의 약 1년 7개월의 기간이다.

셋째, ‘교단 통합과 교단명칭 개명기’(1981. 12.29 - 1982. 12.27)로서, 예장연합측과 합동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진리)를 이룬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교단 명칭을 변경(1982. 12.27)까지의 약 1년의 기간이다.

넷째, ‘교단 성장발전과 교단명칭 확정기’(1982. 12.27-2009. 9.24)로서, 타 교단 교역자와 교회들의 지속적인 유입과 평균 가장 젊은 사역자들의 교단이란 평가와 함께 왕성한 개척교회 설립 및 성장에 맞물려 백석학원의 눈부신 발전에 기인하여 오늘에 이르고, 금번 9월 총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로 총회명칭을 개명하므로 앞으로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상을 통합하는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게 하는 약 27년의 기간이다.


5. 예장백석 교단 역사에 명시된 개혁신학의 정체성과 신앙고백

교단의 짧은 역사 가운데 신학적 정체성과 신앙고백을 선언한 일은 크게 3번 있었으니, 곧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복음) 총회의 ‘교단선언문’(1978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진리·연합) ‘합동 총회 선언문’(1981. 12.29) 및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교단 노선 선언문’(1989. 9.20)이 바로 그것이다.

(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복음) 총회의 ‘교단선언문’(1978년 9월)

장종현 박사는 대한신학교 재학 중 졸업을 앞두고(1974.3-1977.2),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 고등학생시절에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사명을 다시 깨닫게 되고, 주위의 몇 스승의 권면과 충고를 따라 한두 달 정도의 준비를 마치고. “1976년 11월 1일 장종현 박사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시대적 사명에 따라 성경은 유일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과 우리의 생활 기준이 됨을 받고 성경적 기독교 구현을 위하여 성경을 근본으로 한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체계를 기본적 교육목표로 사도적 신앙고백의 터전 위에 세워진 교회가 고백하여온 신조를 학문적으로 석명(釋明)하고”(‘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총회역사 (1978-2002)’, 41) 초대 이사장과 교장에 취임하여 사역자를 양성함으로 명실 공히 교단의 기초를 세워 출발하게 되었다.

처음 약 1년 동안은 통신교재를 만들어 통신문서들로 활용하여 전도와 교육을 실시하여 매우 좋은 호응을 얻었다. 1977년 12월 11일자에 공식적으로 교계신문에 “통신신학생모집” 첫 광고를 통하여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욱 놀랍게 증가하였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통신과정에서 야간 본과과정이 생겼다. 1978년 9월에 사무실만 두고 통신에 의존하였던 교육방법을 발전시켜,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정규 야간 교육과정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정규 야간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장종현 박사는 장차 대한복음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목회할 교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978년 9월에 아직 졸업생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도 없었고, 노회가 구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총회를 가시화 하였다. 총회의 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복음)로 지었고, 초대 총회장 장종현 목사, 총무 허광재 목사, 서기 이상민 목사로 총회임원을 구성하였으며, 아래와 같은 ‘교단선언문’도 작성하여 약 2년 후 교계 신문에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한국복음신보’, 1980년 8월 10일자(959호), 1면). 이 교단선언문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섭리 가운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장백석 교단은 역사적 개혁신학과 정통적 칼빈주의 전통을 고수하는 장로교회임을 천명하고 있다.

칼빈이 말하는 ‘율법의 제3용법’인 신률주의적 복음주의와 성경의 정확무오성을 믿으며, 사도적 신앙고백의 터 위에 개혁신학의 신조와 신앙고백을 표방하며, 특이한 것은 개혁신학이 주창하는 ‘일반은총‘(Common Grace)과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에 기초한 ‘세계복음화’를 ‘본 교단의 사명’ 항목에 명시하므로, 바로 이 비전과 사명을 구현하는 21세기 기독교대학의 글로벌 리더로 백석학원이 우뚝 서 있음을 역사적으로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1. 교 리

(1) 우리의 교리적 입장은 신률주의적 복음주의이며, 역사적 개혁이다.

(2) 우리는 성경을 근본적으로 하는 칼빈주의다. 성경을 근본으로 함은 성경을 절대 무오의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임과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기준이 됨을 믿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사도적 신앙고백의 터 위에 세워진 기독교회의 전통을 고수하는 전통주의에 입각한다.

(4) 우리의 신학은 개인적 신앙의 학적표명이 아니라 사도적 신앙의 토대위에 세워진 기독교 교회가 고백해 온 신조를 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2. 정 치

(1) 우리는 성경적 교회의 유일한 대의 정치체제로서 장로정치 체제를 취한다.

(2)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한다.


3. 생 활

(1) 우리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으로 하여 역사적, 전통적, 기독교회의 유신론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태도를 취한다.


4. 본교단의 사명

(1) 사도적 신앙고백의 터 위에 진정한 성경적 교회를 수립할 것을 사명으로 한다.

(2)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을 전파할 것을 사명으로 한다.

(3) 성경적 기독교 유신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일반은총 분야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개발 · 정진시켜 나아갈 것을 사명으로 한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진리·연합) ‘합동 총회 선언문’(1981. 12.29)

 1979년 제64회 예장합동 총회에서 분리된 비주류측과 유대를 갖고, 당시 인근 방배동 영광교회에 소재하였던 비주류측 “총회신학교”(박아론 교장)에서 장종현, 허광재, 이상열, 서상기 등이 함께 편목과정을 밟고 목회학석사(M. Div.) 학위를 받게 된다. 대한복음신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복음총회를 구성하고 교단을 형성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1979년 7월 29일까지 학교 광고문에서는 대한복음신학교의 이름을 유지하였지만, 11월의 학교광고 문안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평북·함북노회 직영) 대한복음신학교라고 쓰고 있어(‘교회연합신보’, 1979년 11월 4일(일)(607호), 4면.) 합동 비주류측에 온전히 합류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예장합동(비주류)는 1979년 말 박아론 교장의 해임과 함께 방배측과 종암측으로 분열하게 되면서, 비주류측에 합류하였던 복음총회측은 1980년 4월경 다른 분열교단과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진리)와 그 직영 총회신학교로 개명하게 되었으니,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몇 달 동안 합동비주류와 합류하였다 나오는 동안 ‘합동’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여전히 복음총회의 연장선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경륜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정희 정부 때(1979)부터 계획된 무인가 신학교의 정비는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서 사회정화 차원에서 강력히 추진되어, 300개 교회 이상의 교단에 하나의 신학교만 허용하고 무인가 신학교는 정부와 기독교 단체들이 완전히 정비키로 하여, 1980년과 1981년 사이에 110개의 무인가 신학교가 폐교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63년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은혜)는 1969년 3월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연합)와 1981년 1월 20일 교단 가입 통합을 하여 약 200여 교회로 구성된 “교단 연합 성명서”를 내었고, 또다시 예장(합동진리)측은 1981년 12월 29일 예장(연합)과 그 신학교를 통합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진리·연합)라고 개명하여 15개 노회 총대 470명이 참석한 근실한 교단으로 발전하면서, 아래와 같은 ‘합동 총회 선언문’을 공표하게 되었다.

선교 백 주년을 눈앞에 바라보는 이때 우리 장로교회는 세계 선교사상 보기 드문 부흥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에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서 감사와 영광을 굳게 드리는 바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여러 가지 어려운 신학 사조를 비롯한 많은 문제를 안고 오던 중 일부 교권주의자들의 인위적인 분쟁 요인으로 인하여 교단은 부패 속화의 악순환으로 거듭하고 사분오열의 참상을 빚어 장로교 본연의 원색에서 퇴색되고 말았다.

이제 이 아픔을 안은 우리는 겸허하게 옷깃을 여미고 우리의 지난날을 엄밀히 자아반성하고 새로운 우리의 밝은 전망을 추구하여 바른 신학, 바른 교회관, 성도들의 바른 생활관을 확립하여 참신한 개혁주의적인 장로교회의 바른 전통을 계승하기를 원하는 뜨거운 마음에서 여기 결연히 일어섰다.

이제 우리는 폐쇄된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합하여 높은 담벽을 헐고 장로교회사는 물론 한국교회사에 새 장을 열고 오늘의 뜻깊은 합동 총회의 결실을 1981년 마무리하는 구주 성탄과 송구영신의 선물로 하나님과 우리 모든 한국교회와 장로교단 앞에 드리는 바이다. 이는 결코 사람의 뜻으로 이룩됨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거룩한 뜻으로 확신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측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진리측은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적 결합으로 연합하여 여기 합동 총회를 열고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언한다.


1. 우리는 총회의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진리연합측으로 하며 제68회 합동총회를 속회한다.

2. 우리는 전통적인 한국 장로교회가 지켜오는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고 총회의 헌법과 규례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교회 정치, 권징조례, 예배 모법에 준한다.

3. 우리 총회의 신학체계는 개혁주의 신학을 전통으로 삼고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 성경의 절대 권위를 표준으로 하며 이단적 신학과 신앙을 제거하고 개혁주의의 온전한 모습을 추구한다.

4. 우리는 바른 한국 교회의 전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도야를 받은 수준 높은 교역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고 이에 부응하는 바른 신학교육에 전념한다.

5. 우리는 양 교단이 가졌던 정신과 노선을 비교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며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6. 우리는 교계의 혼탁과 부패된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과감히 받아들여 회개와 반성으로 자체 정화와 진리 추구에 선봉이 된다.

7. 우리는 오늘의 교계에 환멸을 느끼며 유랑하는 군소교단과 전국 교회에게 넓은 문호를 개방하고 환영한다.

8. 우리는 특별히 분열을 거듭하는 많은 한국 장로교단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 연합되는 이 역사적인 사명을 자각하며 이에 선구적 핵이 된다.

9. 우리는 이제 오직 선행(先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받을어 제자의 도를 다함에 좌우를 살피지 않는 거룩한 투사로 오직 전진하는 뿐이다.

10. 우리의 합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였기에 결코 인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우리의 앞길을 저해시킬 수 없으며 끝까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3)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교단 노선 선언문’(1989. 9.20)

예장(진리·연합) 출범 1년 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정통)로 개명되고(1982. 12.27)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경주하고 있을 때, 신학적 이견(‘축복론’, ‘제사장 중심제도’ 등)을 가진 연합측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합동진리측의 한 그룹이 분리해 나가는(1982. 2.27) 큰 타격이 왔지만, 장종현 박사가 현 서울캠퍼스 위치(서울 서초구 방배3동 981-7번지)의 새 부지에 독자적인 건물을 지어 이주하면서(1983. 2.24) 전화위복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78년 복음총회 설립 때 발표된 교단선언문이 지금까지 사용되어 왔으나, 교단 정착을 위한 구체적 교육 강화와 교단 대외 홍보 강화의 목적으로 28개 노회 646명의 총대가 참석한 198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정통) 제74회 총회에서 교단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상론할 수 없지만, “교리, 정치, 생활, 본 교단의 사명, 본 교단의 대외노선”의 5항으로 구성된 12쪽 분량의 교단선언문은 복음총회 교단선언문을 기초로 하여 개혁신학의 입장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밝히는 것으로서, 최순직 목사(당시 총회신학교 학장)가 초안하여 총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이며(‘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총회역사 (1978-2002)’, 147-158), 오늘까지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선언문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교리를 그 실례로 든다면, 성경, 성경교리, 역사적 교회 신조들, 개혁파 신조들을 언급한 후에, 교리적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심한 역사적 개혁주의이며, 정치적으로는 장로주의이며, 교회사적으로는 전통적 정통주의 보수주의이며, 성경사적으로는 자유주의나 세대주의와 차별된 개혁주의이며, 은혜의 수단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제사주의를 반대하는 말씀 중심의 복음주의이며, 윤리적으로는 율법주의나 무율법주의나 타율주의나 인본주의적 자율주의를 배격하는 신율주의임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간략한 예장백석 교단의 역사와 신학적 정체성을 살펴보면서, 소극적으로는 초창기 예장백석인 복음총회가 몇 달 동안 합류한 예장합동(비주류)에서 나와 독자적 노선을 걷게 하시고, 신학적 이견을 가진 예장(연합)과 통합하여 예장(합동정통)으로 개명함을 반대한 예장(합동진리)의 한 그룹이 이탈해 나가는 타격을 신속히 만회하게 하시고, 적극적으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 110개의 무인가 신학교가 문을 닫으며 장로교단의 수없는 분열의 와중에서, 제4대 총회장(1981년)으로 선출된 최순직 목사가 시도한 예장(대신)과의 교단 통합은 실패하였으나 예장(은혜)과 예장(연합)이 먼저 교단 통합을 이룬 후에 다시 예장백석의 전신인 예장(합동진리)과 통합하여 예장(합동정통)을 이루어 지난 27년간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갖게 하시고, 이제는 기독교대학의 글로벌 리더가 되려는 백석학원과 동일한 비전과 사명을 공유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예장백석의 새 이름을 주신 하나님의 신비한 주권적 은혜와 섭리를 감사하며 찬양하게 된다.

예장백석이 선교사에 의해서나, 외국의 원조에 의해서나, 교단 분열에 의해 결코 설립 발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생명신학과 신앙을 실천하는 신학교육으로 먼저 출범한 한국 순수의 자생교단으로서, 교단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개혁신학의 올바른 교단선언문을 견지하면서 종교다원화와 신학적 자유주의 물결 속에서도 교단통합을 이루어왔기에, 앞으로도 200개로 분열된 장로교단을 올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통합하는 선두주자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엄숙히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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