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문화 유산을 찾아서…충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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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화 유산을 찾아서…충주제일교회
  • 승인 2002.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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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답사는 충주 지역의 복음화에 기여한 분들을 살펴보고 어떠한 경로로 교회들이 세워져 나갔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충주지역의 복음화에 큰 공을 세운 분은 박해숙 권사로 경기 이천의 덕들교회 교인으로 충주에 내려와서 넉 달 만에 4백70명의 교인을 얻을 만큼 열심을 가진 분이셨다. 이 때 충주지역의 선교의 큰 틀은 서원보(W.C.Swearer) 선교사가 세웠으며, 사전조사와 면단위로 전도인을 배치하였고, 1904년에는 감리교의 충청도 책임자인 샤프(R.A.Sharp)와 그의 부인인 사에리시가 이 지역에 파송되었다. 1905년에는 샤프와 서원보 선교사가 같이 사경회를 개최하여 충주지역의 복음화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감리교회에 못지 않게 미국의 북장로교회 선교사들이 1902년부터 한강의 뱃길을 따라 여행을 하다가 충주군 엄정면 목계 장터에서 임치수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1903년에 임치수가 자신의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니 유봉교회의 출발이다.
북장로교회에서는 1905년에 이미 청주에서 선교를 시작한 민노아 선교사를 돕던 김정현을 충주 금정(현재 성서동)에 파송하여 충주읍교회를 설립하여 충주시내의 복음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나중에 목사가 된 김정현은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출신으로 어려서 양친을 잃고 불우한 환경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1901년 김경조의 전도로 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민노아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민노아 선교사 집에서 같이 지내며 경신학교를 다니기도 한 분이다. 그는 강한 신앙심으로 민노아 선교사의 후원하에 복음을 가지고 백마령을 넘어 충주지역에 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충주읍교회는 초가 8간에서 김정현과 3명으로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1907년에 이문현 전도사가 부임하면서 장로교회에서 감리교 충주읍교회로 교회명을 개칭하였다.
그리고 1915년까지 하구암, 가금, 중앙, 대소원, 삼청, 한지리, 명오리, 수산리, 탄지리 등의 주변에 여러 지교회을 설립하였다. 충주의 모교회인 충주제일교회는 교현2동에 있으며, 현재 충주실내체육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제일교회를 맡고 계신 소화춘 목사는 창립 100주년을 바라보며 ‘100년의 은혜를 이웃과 함께’라는 대원칙을 세우고서 섬김과 나눔 그리고 돌봄, 치유의 의미를 살리는 복지목회를 하고 계셨다.

충주제일노인대학은 금년 후반기에 1천2백 명의 입학생을 받아서 영어학과, 보건학과, 음악학과, 컴퓨터학과, 서예학과, 성경학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의 지하에는 노인들을 위한 각종 복지시설을 만들어 건강한 인생을 보내도록 배려를 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만난 노인대학 학생 한 분은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서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결국 허락을 받고 교회를 옮겼다며 충주제일교회의 노인에 대한 배려를 칭찬하셨다.
충주제일교회:충북 충주시 교현2동 766 전화 043-843-3226

박은배<벽제고 교감·기독교유적답사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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