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상처받은 영혼 감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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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상처받은 영혼 감싸줍니다"
  • 승인 2002.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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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끌려오다싶이 음악치료연구소를 찾은 수석(가명·10)이. 큰북, 작은북, 실로폰, 기타, 피아노 등 공간을 가득메운 악기들이 눈에 거슬렸는지 엄마의 강요에 기분이 상했는지 수석이는 악기들을 ‘툭툭’ 건드리며 불만스런 감정을 표현했다. 수석이는 틱장애(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코를 씰룩대거나 킁킁하는 소리를 내는 것-)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던 상태였다. 주변사람을 통해 음악치료의 효능을 전해들은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구소를 찾은 것이다.
한 껏 골이 난 수석이를 화사한 얼굴로 맞아준 사람이 있었다. 하은경 음악치료 임상연구소 하은경소장(42·청운교회). 인자한 표정만큼 하소장은 수석이의 외로움 감싸안으며 얽힌 감정의 실타레를 풀어 나갔다. 수석이와 원만한 관계를 쌓은 하소장은 1년간의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틱장애는 거의 교정시킬 수 됐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갇힌 사람들에게 음악을 도구로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음악치료(Music Therapy). 일반인에게는 조금은 생소하지만 청각을 십분 활용해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음악치료의 핵심이다.
하소장은 내담자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면서 상태나 병의 정도를 파악하고 적당한 프로그램을 설정한다. 그 프로그램을 근간으로 진단과 평가를 하고 적절한 약물·질환치료를 병행한다.
지금은 숙명여대, 이화여대, 한세대 등 국내에도 음악치료를 배울 수 있는 창구까지 마련됐지만 독일에서 음악치료 공부를 하고 귀국해 94년 처음 연구소를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음악치료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단순히 음악을 듣고 상담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음악치료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와 효능을 전하는 것은 순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외롭고 힘든 여정에 큰 힘이 되준 건 바로신앙의 힘이었다.

그녀에게 신앙은 삶의 축복 자체였다. 악기를 통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는 음악치료에 있어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무궁무진한 샘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하소장은 치료를 위해 방문한 아이들에게 그녀가 매주 참여하는 장애인예배에 참석을 권한다.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들의 상태를 감안해서 긍정적 대답을 하는 부모가 많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줄곧 피아노를 쳐 온 하소장은 대학을 들어갔을 때만해도 피아니스트가 꿈이 었다. 그러나 대학 새내기시절 하나님을 영접하고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모태신앙으로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였지만 교회는 건성건성 다녔다. 우연한 기회에 선교단체의 훈련을 통해 참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음악적 달란트를 무언가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졌다. 마땅한 일이 없어 고민고민 하던 그녀에게 특수교육학과를 다니던 친구를 통해 들은 음악치료는 메마른 땅에 내린 한 줄기 단비와도 같았다. 당시 음악치료학이라는 학문적체계가 낙후했던 국내상황 탓에 하소장은 적지않은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영국, 미국, 독일문화원을 넘나들며 자료를 수집하면서 유학을 떠나야한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의 유학에 더욱 힘을 실어 준 것은 현장의 봉사활동이었다. 보호시설에서 율동과 노래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놀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음악을 전공한 탓에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가르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음악의 효과를 전문적으로 배워 사회에서 소외받는 그들의 친구가 되주고 싶다는 마음도 유학결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하은경은 소장의 유학은 호락호락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결혼을 코 앞에 둔 처녀에게 유학은 절대 안된다며 아버지는 펄펄 뛰셨다. 또 봉사활동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속돼야지 한시적인 행동으로 끝나서는 별 의미가 없다면서 힘든 장애인봉사를 택한 딸의 선택을 막아섰다. 그래서인지 봉사를 중요하게 여기시던 아버지였지만 유학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야학을 권유하셨다. 아버지의 반대에 막혀 4년 이상을 장애인 봉사단체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열성적인 반대가 전화위복이 될줄이야. 천연악기만을 사용하는 함부르크예술치료연구소는 장애인기관에서 6개월이상 자원봉사 한 경험을 토대로 한 레포트를 요구했던 것이다. 하소장은 수년간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실감나는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선교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하며 독일유학을 결심한 하소장을 위해 하나님은 많은 것들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음악치료는 보통 3개월 정도가 되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최소한 1년 이상은 꾸준하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고 내면의 문제를 찾아내 상처를 싸매 주는 일은 적잖은 애정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은경소장은 연구소를 운영하는 철칙이 있다. 환자들에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주일에 5일 20시간이상은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 진찰시간이 과다해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게되면 환자에게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여유있는 시간안배로 충분한 진료시간을 갖고 그에 비례에 환자를 위해 공부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음악치료는 우리나라에서는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외국의 경우 자폐증의 수준을 넘어 재활치료, 암환자치료, 의식불명 환자 치료하는 수준까지 확대된 상태여서 그 확산정도를 기대해 봄직하다.

“음악치료사는 환자와 보호자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선행돼야만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귀가 열리는 거죠. 환자의 힘든 마음을 듣고 이해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은 자연적으로 생기거든요”라며 진찰실로 향하는 그녀에게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풋풋하게 뭍어나고 있었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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