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3대 5회 기도운동’ 실천으로 ‘기도 대국’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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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3대 5회 기도운동’ 실천으로 ‘기도 대국’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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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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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님과 가정 // 말씀·기도·인성의 3대(代) 평생학습 (끝)
김진섭교수<백석대 대학원신학부총장>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기도의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초대교회는 매일 3회 3대가 합심기도하는 유대 전통 계승한 가정교회


12. 유대인 예수님:오직 올바른 ‘기도-기적-기도’의 삶 (계속)

예수님의 지상생애를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기도-기적-기도’의 삶이셨음을 우리는 히브리서 5:7이 보여주는 ‘올바른 기도의 6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중이다. 첫째, ‘육체를 가진 인간은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난 주 살펴보았다.

둘째, 나의 기도를 접수하시고 결재하시는 분이 누구신가에 대한 이해와 신뢰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지난 주 논고에서 에베소서 2:18에 근거한 ‘올바른 기도’의 셋째 요소인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프로스)”에서도 지적하였지만, 좀 더 보충한다면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군가에 대한 체험적 이해의 깊이가 기도의 수준을 결정한다.

‘죽음’은 인간이 안고 있는 최대 최종의 문제임을 지난 주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통해 국민 모두가 고통스럽게 직면하였거니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제가 믿사오며’라는 진실한 신앙고백 안에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태어나기 전에 미리 이름을 불러 주시는’(롬 4:17), 그래서 죽은 지 3일 만에 주 예수님께서 다시 사실 권세와(요 10:18) 낳기 전 ‘예수’란 이름을(마 1:21) 주셨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며’(엡 2:1),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여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하신’(엡 1:3; 계 13:8) 분에 대한 전적 신뢰를 내포한다.

그렇다! 그분은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우리 아버지’(마 7:11; 눅 11:13; 롬 8:32; 엡 3:20; 약 1:5, 17)이시기에, 사고 현장에도 정확무오하신 아버지의 뜻과 전화위복의 위로가 있으며(창 50:20; 롬 8:28; 고전 10:13),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단 3:18), ‘비록 없을지라도’(합 3:17), ‘나를 죽이실지라도’(욥 13:15; 참조. 창 22:10; 눅 23:46; 행 7:59; 벧전 4:19) 아버지를 신뢰하여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마 19:26; 막 10:27; 눅 18:27)고 복창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기도의 태도는 ‘심한 통곡과 눈물’이다. 참된 기도(찬양, 감사, 회개, 간구)에는 그 진실성, 간절성, 사활성으로 인해 심한 통곡과 눈물을 수반하기에, 주 예수님은 ‘땀구멍으로 피가 배어나며’(눅 22:42), ‘큰 소리로’(눅 23:46), ‘밤을 새워’(막 1:35; 눅 6:12) 결사적으로 기도하셨다. 이러한 기도 태도는 기도대국인 이스라엘의 아브라함(창 18:22-32), 야곱(창 33:24-26), 한나(삼상 1:10-16), 다윗(시 6:6; 55:17), 엘리야(약 5:17; 왕상 18:44), 히스기야(사 38:3-5), 에스라와 회중(스 10:1), 느헤미야(느 1:4) 등을 통해 전수되었으며, 신약의 성도들에 의해 재확인되었다(눅 18:7, 13; 행 4:24; 12:5; 계 6:10).

심한 통곡과 눈물의 감성적 민감성과 통절성은 성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더 심한 법이기에(고후 11:29-30; 빌 3:18; 행 20:31),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을 맛보실 때(고후 5:21; 히 2:9) 더 심한 통곡과 눈물을 흘리셨다(눅 19:41; 요 11:33-35; 비교: 마 5:4). 십자가 도상의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눅 23:28)고 권면하심은 ‘눈물의 자식(가정)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가족 3대(代) 기도공동체의 축복과 직결되어 있다.

넷째, 기도의 내용은 ‘간구들과 소원들’이다. 주 예수님은 망원경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왕국 확장을 위한 소원과(요 17장), 현미경적으로 베드로 개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간구하실 정도로(눅 22:32) 수많은 간구들과 소원들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눅 11:1 참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받으신 많은 고난 중에 기도하심으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순종을 배워서’(히 5:8) 완전케 되셨다.

사도 바울이 겪었던 수많은 환난과 함께(고후 1:8-10; 4:7-12; 6:4-5; 11:23-30) 매일 기도한 실제적 분량과 자신을 위한 기도 지원 요청을 비교해보라(롬 1:9-10; 고전 1:4; 빌 1:4; 4:2-3; 골 1:3, 9; 딤후 1:3). 우리는 여기서 ‘문제가 없는 것이 참 문제이며 (왜냐하면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문제가 많은 것이 (더욱 기도하게 되기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라는 신앙의 역리를 체험한다. 이것이 성도에게 ‘여러 가지 시련’(약 1:2)과 금을 녹일 만한(섭씨 1063도) ‘불같은 시련’(벧전 1:7)과 ‘마음의 사형선고’(고후 1:9)를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이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서 인도 선교에서 34개 언어 이상의 성경을 번역(6개 완역 + 3개 거의 완역 + 20개 신약 + 5개 복음서)한 윌리엄 케리(1761-1834)가 남긴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1792년 5월31일 사54:2 본문의 설교에서)는 도전 앞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더 많은 소원들과 간구들’(롬 8:26-27; 빌 2:13; 골 1:29)을 담아, 상대방을 위한 최상의 도움은 ‘간구’(고후 1:11; 눅 22:31-32)라는 확신 속에서 가슴에 품고, 목에 걸치고, 등에 업으며, 더 풍성한 기도의 소원들과 제목으로 기도하는 열정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롬 12:11; 히 6:11; 고후 11:28-30).

다섯째, 주 예수님의 모든 기도의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함’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유대인의 신앙적 표지이기에(잠 1:7; 29:10) 모든 유대교 개종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행 10:2; 13:16, 26; 16:14)이란 고깔모자를 씌었다. 주 예수님의 기도문이 가르치는 대로, 모든 기도의 동기와 목적은 내 자신을 위한 모든 간구(일용할 양식, 죄 용서, 유혹에 빠지지 않음, 악에서 구원)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라야 한다(마 26:39, 42; 히 5:8; 왕상 3:9-10; 요일 5:14).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나(약 4:3; 행 8:19), 회개 없는 기도나(사 1:15), 지옥에서 드리는 기도는(눅 16:24, 27-28) 절대로 응답이 없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죄의 실체와 그 가공적 교활성을 술 취하고 마약에 중독되고 노름에 미친 자들에게서 발견할 것이 아니라, 가장 경건한 기도의 모습에서 외식과 자기 선전과 타인 정죄의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의 추한 모습에서 부절히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외모(자세, 장소, 시간, 음성, 분량, 문학적 표현, 제물 등)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시며(마 6:5-7; 눅 18:11-12; 시 51:16),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셔서(렘 17:9-10), 상하고 통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려는 순종의 마음을 받으신다(시 51:17).

여섯째, 예수님의 기도는 언제나 100% 기적적인 응답을 받았다(눅 23:24의 즉각적 응답인 40-43절; 요 11:41 참조).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는 믿음’(눅 18:1-8)을 보기 힘든 실제적 무신론자(사 40:27; 습 1:12)의 세태 속에서, ‘귀를 심고 눈을 빚은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보신다’(시 94:9)는 확신의 간구는 응답과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 5:15-16).

하나님만 믿고(막 11:22),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고후 1:20),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을 때(막 11:23-24; 요일 5:15) 응답의 크신 역사가 있음은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1805-1898)나 허드슨 테일러(1832-1905)의 중국 선교 동역의 실화나 우리 개인의 간증에서 확증할 수 있다.

주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한마디로 ‘기도-기적-기도’의 삶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도는 기적을 낳았고, 기적을 맛 본 자들이 왕으로 추대하려는 환호성을 외면하시고, 모두 흩으신 후 다시 홀로 기도하심으로(마 14:22-23; 막 1:35; 눅 5:16; 요 6:15) 그 다음의 기적을 낳는 순환의 삶을 사신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반드시 사수해야 할 주요 덕목이다.


13. 그리스도인 가정의 3대(代) 매일 5회 합심기도의 평생 학습

초대교회는 매일 3회 3대(代)가 합심기도 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계승한 가정교회였다면(행 1:14; 2:46; 4:24; 8:15; 11:25; 12:5), 우리는 다시 한 번 먼저 가정의 3대가 합심으로 드리는 기도의 능력을 체득함으로 영적 가족인 온 교회가 그 합심기도의 능력을 더욱 시위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특별히 현재 조국이 안고 있는 총체적 난국의 다양한 과제들과 우리 국민들이 안고 있는 갈등과 불안을 우리의 ‘간구들과 소원들’의 제목으로 삼아, 성령님께서 한 마음과 한 목소리가 되게 하시는 강력한 합심기도를 통하여 기도 강국 대한민국을 붙드시고 사용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하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으며’(전 4:9-12), ‘일당 천, 이당 만’(신 32:30)이라면,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은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가정의 최소단위)이 땅에서 ‘합심’(숨포네오, ‘같은 목소리가 되다’; 성령님의 충만이 절대로 필요한 이유)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8-20)는 예수님의 약속의 위력을 즐기며 나누기 위하여, 필자는 유대인의 매일 3회 기도에서 더 나아가 매일 5회(새벽, 정오, 오후 중간, 황혼, 밤) 정규적인 ‘잘못된’ 기도를 하는 지구상의 가장 기도 강대국 모슬렘의 도전에 맞서, 모든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 3대가 매일 5회(‘새벽기도 + 3끼 식사기도 + 저녁 가정기도’) ‘올바른’ 합심기도 운동을 실천하여 ‘기도대국’의 한국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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