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이 아닌 포용적이고 보완적인 관계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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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이 아닌 포용적이고 보완적인 관계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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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2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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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달 기획 // 현대과학 시대, 신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 중세시대 신학과 과학의 대립은 심화됐다. 사진은 ‘종교재판 법정에 선 갈릴레오’. 파라디시 작품.

과학은 ‘합리성’, 신학은 ‘믿음’이 우위 …가치관 차이 인정이 관건

하나님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되도록 학제간 연구ㆍ교류 진행해야


과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 사회적인 사상, 더 나아가 생명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물론, 기술주의와 같은 것에 사로잡혀 환경파괴와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 파괴 등과 같은 악영향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과학신앙’이라는 맹신적인 시대풍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과학만능주의 아래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신학이 바른 조명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진화론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는 다윈이 세상에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그가 저술한 ‘종의 기원’이 출간 150주년을 맞이해 ‘다윈전’과 같은 행사 등 진화론을 재조명하려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신학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그동안 복제양 돌리, 인간 베아줄기세포 연구 등과 같은 생명복제 논란, 유물론에 기초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논란 등 과학적 사고방식이 가져다 준 일련의 현상들로 인해 ‘과학’과 ‘신학’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과 신학은 언제나 대립관계에 머물러 있어야만 할까. 과학은 ‘신학’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결코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때문에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적절한 해답을 모색해주고, 성숙한 성찰과 전망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오늘날 신학의 과제인 것이다. <편집자 주>


#‘진화론’과 ‘창조론’의 끝없는 싸움

지난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간행된 이후 창조론과 진화론의 싸움은 계속되어 오고 있다. 진화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유기체들은 장시간에 걸쳐 진화되었다는 주장이다.


모든 유기체는 저마다의 생존경쟁을 거치면서 각자의 존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유용한 변이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 다윈의 핵심적 주장이다. 특히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멘델의 유전학, 분자생물학, 고생물학에 힘입어 그 주장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미 창조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창조 이후에 진행되는 진화, 도태와 같은 현상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과학을 대표한다는 진화론은 창조론을 주장하는 ‘신학’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다.

특히 진화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내세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도 영적 존재가 아닌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과는 전혀 상반된 입장이기 때문에 신학이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과 방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물론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 전에도 신학은 나름대로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입장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중세시대의 경우는 성서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과학과 같은 모든 학문들이 성서에서 벗어나면 모두 이단으로 정죄하던 시대였다. 이로 인해 당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주장한 학설 때문에 정죄 당하기도 했다.


시대가 지난 후 갈릴레이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신학은 이런 결과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과학과 신학의 대립을 더욱 깊어지게 만든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이후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신학과 자연과학의 영역이 철저하게 구분되어졌고 지난 20세기 초까지 그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 무신론의 대표 진술서 ‘만들어진 신’

진화론과 창조론 대립 이외에도 기독교는 외부적으로 많은 진통을 겪었다. 그 중의 하나가 ‘만들어진 신’에 대한 논쟁이다. 지난해 기독교에 대해 과학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저술한 ‘만들어진 신’이 시중에 나오자마자 기독교는 많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신론의 대표적인 과학적 진술서인 이 책은 수많은 과학적 논증을 펼치며 신이 없음을 입증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책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는 인간의 삶에 어떤 위안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신을 믿음으로써 벌어진 참혹한 전쟁과 기아 그리고 빈곤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에 대한 부정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가치인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종교를 찾는 이들은 과학적 근거와 이성을 따르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대한 많은 지적들도 있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화학 및 분자생물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그리고 역사신학과 조직신학의 신학분야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신학과 자연 과학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에 집중해 온 맥그라스 교수는 지난해 5월 ‘만들어진 신에 대한 신학적 응전’ 이라는 세미나에서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도킨스의 깊은 전문성과 폭넓은 연구에서 연역되는 탁월함은 존중할 만한 것이지만 그의 신에 관한 진술은 주의 깊은 증거에 입각한 논리보다는 충격적인 단순화와 잘못된 제시 등이 어우러진 열광적인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도킨스가 무신론의 과학적인 필연성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도킨스의 무신론 자체는 또 하나의 ‘믿음’이 되었다. 그의 새로운 ‘믿음’은 진실임을 증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것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과학’과 ‘신학’의 대립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학과 신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상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대립관계는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은 신학의 기본인 신앙을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에서 본다면 이런 신앙은 신념과도 같다.


# ‘다름’을 인정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이런 신념을 과학적으로 해석한다는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왜냐하면 합리성을 강력한 도구로 활용하는 과학은 믿음이나 사상 같은 극히 주관적인 요소를 배격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호소함으로써 모든 것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과학과 신학은 그 범위가 기본적으로 다르다. 과학은 사물의 이치와 사리를 다룬다면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과학과 신학을 논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다. 그는 ‘세계론’이란 책을 출판했다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처벌을 받자 물심이원론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대과학과 신학이 갈리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별개이기 때문에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만 연구하고 물질적 학문에는 전혀 손대지 말라고 영역을 구분해버렸다. 이때부터 과학은 영성이나 정신이 아닌 오직 물질 중심의 학문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의 수학자이면서도 물리학자, 철학자이면서도 종교사상가인 파스칼은 ‘팡세’라는 저서를 통해 지식과 논리적 사고방식을 사용해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과학과 신학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이 합리성을 우위에 둔다면 신학은 합리성보다는 믿음을 우위에 두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명복제와 같은 유전자학이 발전하면서 이에 대한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성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입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생각됐던 창조력이 인간의 업적으로 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기술과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을 연장할 수 있도록 생명유지 장치를 만들었고 이러한 생명유지 장치에 대한 존엄사 논쟁도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신학은 기독교윤리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줘야 한다.


# ‘과학’은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는 도구

지금까지 과학과 신학은 양립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하지만 최근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상호보완적인 면도 발견되고 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신학이 설명할 수 있고, 또한 신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과학으로 설명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과학과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포용적이고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도록 과학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저자인 리처드 칼슨은 “기독교 신앙이 현대의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 지구과학, 우주론의 발전에 어떻게 관련되는가란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공통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성경을 진지하게 취하려 하기 때문에 과학과 신앙의 무대에서 발생하는 질문에 어떻게 성경을 적용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과학시대 이전에 쓰여진 성경을 어떻게 다루며 당대의 문제들과 이슈들, 특히 과학적 질문들과 관련해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지가 중요하다”며 성경본문의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남대 김흡영교수도 ‘현대과학과 그리스도교’란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현대과학에 발전에 주목해야 한다”며 “그리스도인도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시대의 그리스도인, 그것이 우리의 실존적 상황이기 때문에 과학은 당연히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교수는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 그리고 신학생들이 현대과학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교회 안에서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현대과학의 문제들을 계속 연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현대과학에 어두운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계몽시키며 신앙에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과학이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신학교에서는 과학, 신학, 철학 등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해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그릇된 방향들을 극복해야 한다.


앞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시대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하는 만큼 과학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신학적인 과학연구가 진행되도록 성경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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