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특집] “부활 믿는자, 복음을 전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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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특집] “부활 믿는자, 복음을 전파하라”
  • 이현주
  • 승인 2009.04.08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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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부활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나

부활 전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키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성도들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기독교는 그야말로 ‘부활’의 종교이며 이 세상 모든 종교 중에 유일하게 사망 후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부활 이전에 ‘사순절’의 경건과 절제를 강조하면서도 부활의 기적을 세상 곳곳에 증거하라는 가르침은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부활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에서 ‘부활절’을 맞이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더 크고 무겁다 할 수 있다. 부활 후 승천까지 40일 동안 이 땅에 남아 제자들 곁에 머물며 주님이 전하고자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 기독교인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기독교인의 믿음에 의혹의 시선이 머무는 2009년 부활의 아침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부활 후 40일 간 보이시며 말씀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편집자 주>


제자들에게 부활로 하늘나라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뜻 기억해야

변화된 제자들 세상 욕심 버리고 고난과 박해 이기며 복음전파


성경 속에서 ‘부활’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확인된다. 예수님이 고난 받기 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명예를 탐하며 세상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심을 드러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된다면 자신들이 권력의 핵심부에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세상적 욕망을 뒤로한 채 보잘것없는 나귀새끼에게 몸을 싣고 예루살렘을 향해 고난의 행보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온갖 모욕과 핍박을 견디시며 하나님의 계획에 순응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던 밤,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며 도망했던 제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수님과 대면한다.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막 16:12).”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3-16)…”

신학자들은 ‘다른 모양’이라는 표현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과 우리의 믿음이 완성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유추해 냈다. 즉, 믿는 자에게만 보이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성경을 곳곳에서 증거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에게도 그 증거를 보이시며 부활을 드러내셨다.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4-25)."

이처럼 도마를 만난 예수님의 모습에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교리라는 점을 우리는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활 후 예수님의 행적에서 드러난 메시지는 3가지로 요약된다. “부활을 믿으라”는 것과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세상의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가 주는 평강이 아닌 오직 ‘하늘의 평강’을 부활하신 모습을 통해 강조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 명령하셨다. 부활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라는 말씀과 함께 성령의 세례도 역설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승천까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 부활의 사실을 알리며 남은 그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온전히 알도록 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40일간의 행적이 당시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반드시 감당해야할 사명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제자들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안동교회 원로 유경재목사는 자신의 설교에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은 권력과 명예를 버리고 더 값진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전하고 다녔다”며 달라진 제자들의 삶을 소개했다. 부활을 접한 제자들은 더 이상 박해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즉, 우리에게도 부활의 신앙은 ‘변화의 삶’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유목사는 “부활은 변화의 신앙이지만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죽은 후에 다시 살아 영원한 생명을 얻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땅에서 복을 받으며 잘 살겠다는 욕심을 죽음 이후까지 연장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후 세상의 권력과 명예 등 모든 것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따라 나섰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따르며 죽은 후에도 그와 같은 영화를 부활로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인 아닌가 되묻고 있는 것이다.

유목사는 “부활을 믿는다면 이제까지 받았던 이 땅에서의 삶의 방식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바른 삶으로 전환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변화된 그리스도인에게는 곧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의 사명이 주어진다.

영락교회 고 한경직목사는 생전 그의 설교를 통해 복음전파의 사명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가장 우선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주님의 이 명령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지상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으로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구원의 대도를 완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대도는 믿어야 들어올 수 있는데 믿음은 그 복음을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 복음을 들으려고 할 것 같으면 그 복음을 전하는 이가 있어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2009년 부활의 아침, 모진 고난을 견디며 주께서 전하고자 하신 것은 ‘부활’, 그 뿐이다. 이 땅이 우리에게 주는 쾌락보다 훨씬 귀하고 소중한 그 무엇이 하늘나라에 있다는 진리를 부활로 나타나 제자들에게 보여주며 “지금 바로 결단하고 행하라”고 명하셨다. 고난을 멀리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 ‘부활’은 왜곡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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