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검증]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인간이 선택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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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인간이 선택할 수 있나
  • 이현주
  • 승인 2009.02.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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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尊嚴死)는 정당한 죽음의 방법인가? <상>

고영민박사<백석문화대 총장>

죽음이 자기 자신 때문에 초래되면 자살이 되고 다른 사람 때문에 초래되면 타살이 된다. 존엄사는 그것이 능동적이든지, 수동적이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고 그의 섭리를 거스리는 패역한 죄악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한 평생을 살다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죽음의 문! 그 문 앞에서 인간들은 초조하게 서성거리기도 하며 통곡하며 주저앉거나 분노의 몸부림을 쳐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는 비결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문제가 소위 존엄사 문제이다.

존엄사를 의미하는 영어의 (Mercy Killing Euthanasia)는 원래 헬라어 ‘좋은(Eu)’과 ‘죽음(thanasia)’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오늘날 존엄사는 ‘좋은 죽음’이기보다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주제’가 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는 이미 97년 10월부터 말기 환자가 의사에게서 극약을 처방 받아 스스로 복용해 자살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尊嚴死)법을 시행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왔으며 미 연방하원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을 내세워 극약을 자살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함으로써 실제로 존엄사법을 무기력화 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미 네덜란드 의회도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사실상 오랜 기독교 전통을 이어온 네덜란드가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존엄사는 법적으로 보장되지는 못했지만 서구를 비롯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은밀히 시행되어져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가지 충격적인 것은, 얼마 전 한국에서도 법원의 판결로 존엄사(안락사)가 법적으로 인정되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병원측과 유족들 간의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만일 의사가 극약을 처방해 환자를 죽게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살인행위가 될 것이고, 환자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해 스스로 그것을 요청하거나 약을 먹는다면 그것은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 고통의 몸부림을 치면서 죽기를 구하는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어떻게 조처해야만 하는가?


# 존엄사는 언제 시행되는가?

존엄사는 ‘아무런 치료 희망이 없이 심한 통증으로 고통받는 말기 환자’에게 시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극약을 자살용으로 처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고통경감법’이라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한 다음날 오리건주 주민들은 포틀랜드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오리건주의 일부 의사들은 “존엄 자살은 의학이 도저히 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마지막 의학적 수단”이라며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인권 유린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들은 “의사가 인간이 쉽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돕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생명을 너무 가볍게 보는 처사”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존엄사법’이라고도 불리우는 안락사법은 ‘죽음의 권리’라는 시민단체가 앞장서 주민 입법 청원을 하면서 마련되었으며 주민투표에서 51대 49로 통과된 바 있다. ‘죽음의 권리’는 부인이 암으로 극심하게 고통을 겪다가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본 엘 시나드라는 시민운동가가 말기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93년 7월에 결성된 단체이다.

존엄사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인간에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죽음은 인간 생명의 마지막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일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고통스러우며 무자비한 죽음은 동물의 죽음과 같은 비인간적인 죽음이다.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존엄사라는 수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헌법상의 사생활 권리에는 존엄한 죽음도 포함된다.’ 여성이 자기 태아를 낙태시켜서 죽게 할 수도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처럼 사생활 권리에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을 존엄사 시키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우리에게 누가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면 누가 죽어야할 권리도 있지 않겠는가?

(3) ‘존엄사는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다.’ 우리는 불타오르는 우리 안에서 발버둥치는 말을 보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총으로 쏴 죽인다. 우리에게 자비심이 있다면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항구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또 고통을 겪는 사람이 행복하게 죽도록 해야 한다.

(4) ‘존엄사는 고통을 겪는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다.’ 불가피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환자의 말 못할 고통을 덜어주는 일일 뿐더러 환자 가족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일이다. 따라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버리는 것은 환자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5) ‘존엄사는 환자 가족의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 환자 가족은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매우 무거운 경제적 부담까지 짊어질 것이다. 중병은 순식간에 일생동안 저축해 놓은 돈을 쓸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안락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그를 책임진 가족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다.

(6) ‘존엄사는 사회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준다.’ 의료비가 상승하고 노년층이 증가함에 따라 아픈 사람을 돌봐야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존엄사를 원하는 단체는 영국에서는 엑시트(Exit), 미국에서는 죽음의 권리 혹은 독약회(Hemlock)로 불리우고 있다.

이상과 같이 존엄사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것이 환자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가족이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도 유익한 최대의 선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흉측스럽게 불구가 된 아기가 태어나 갑자기 호흡을 멈출 때 의사가 도덕적으로 그 아기를 소생시켜야만 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약과 기계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불치의 병자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해도 식물인간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며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일은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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