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죄가 없어요 … 죄인은 여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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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죄가 없어요 … 죄인은 여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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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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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소설] 노경실 작가의 '밖으로 나온 사람들'

■ 고개숙인 나, 새 희망의 2009년을 향해


아침이지만 이제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래도 오늘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강남에 있는 케이유 파이낸스라는 회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석 달만 미친 듯이 여기를 들락거리면 대개는 연봉 일억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들었다. 한 동료는 케이유가 악명 높은 다단계니, 피라미드니 하며 뒷걸음질쳤지만 지금 나는 피라미드건, 히말라야건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야 한다.

강남역 근처에서 비싼 빌딩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삼십 칠 층의 대륙빌딩에 케이유 파이낸스가 있다. 케이유는 회사 규모가 제법 커서 삼십 삼, 사, 오층을 통째로 사용한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 셋 다 집에는 아직 말못했는데 아침마다 나와서 갈 곳은 있어야 하잖아. 그런 의미에서라도 일단 가보자구.”

강 부장의 말에 박진국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 부장은 나와 동갑이다.

“그런데 자네 혼인신고는 했어?”

내 물음에 박진국은 갑자기 굳어진 얼굴을 흔들었다.

“요즘 여자들은 동거를 하거나, 결혼해도 적어도 일 년은 살아보고서 애도 낳고, 혼인신고도 한 대요. 그래서 아직 …”

“뭐, 일 년? 이거 미치겠군. 막 가는 세상이야. 이봐, 진국씨. 여하튼 혼인신고 하기 전까지는 회사 문 닫은 거 비밀로 하고, 어디서 딸라 빚이라도 얻어서 달마다 꼬박꼬박 마누라한테 월급을 갖다 줘야 해. 아무리 죽자살자 연애해서 하는 결혼이라고 해도 남편이 실업자가 되면 가차없이 떠나는 게 요즘 여자들이니까. 사 십이 다 된 우리 마누라도 모를 일이야. 나도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는데, 자넨 겨우 신혼 한 달이니…”

“어허, 정 부장. 그만 해.”

우리 셋은 대륙빌딩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정 부장네 딸은 미국에서 언제까지 공부해야 해?”

심하지는 않지만 자폐아 판정을 받은 막내아들 때문에 아예 두 아이를 모두 대안학교에 입학시키고, 집까지 경기도로 옮긴 강 부장이 물었다. 대안학교라 해서 학비가 저렴하지도 않아 강 부장 역시 늘 돈으로 시달리는 사람이다.

“이제 겨우 일 년 했는데 뭘. 언제나 끝날지….”

“부장님. 우리 와이프도 애 낳으면 조기 유학시킨다고 하는데 걱정이네요.”

박진국은 담배 한 개비도 아껴 피우는 듯 담배를 빠는 입술이 여간 느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술 모양이나 거기서 흘러나오는 말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억지로 웃었다.

“이봐, 진국씨. 지금 조기유학이 문제야? 잘못하면 조기 이혼 당하게 생겼는데. 자, 올라가자구.”

나는 앞장섰다.


백 평이 넘는 듯한 사무실, 아니 강당 안의 모든 자리는 꽉 차 있고, 그 외의 공간은 서 있는 사람들로 빽빽 해서 마치 품질 좋은 인공잔디밭처럼 보였다.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 채 그 자리에 겨우 서서 강연을 기다려야 했다.

“정 부장님, 굉장한데요? 그런데 여기 온 사람들이 모두 실업자인가요?”

“시꺼! 그랬다가는 차라리 대한민국에 취직혁명이 일어나지. 내가 알기로는 반은 실업자고, 반은 직장은 있지만 명예퇴직 없는 안전빵 인생을 위해 새 길을 찾으려고 온 사람들이야. 그러고보면 국회의원들이 여길 한번씩 견학해야 하는데. 그래야 지들 직장인 국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거야. 허긴 그런 작자들은 직장 없어도 평생 골프 치고 살면서 편하게 살겠지.”


강연자가 나왔다.

-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돼라!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지는 법이니까!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인정해서 가난한 사람이 따라 배우게 해야 한다. 여러분, 이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의 변신을 주도한 중국 덩샤오핑의 선부론입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모두가 가난해지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 경제가의 삶과 사상은 관 뚜껑을 닫은 후에 평가된다는 말처럼 그의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그 누가 덩샤오핑을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장쯔민을 오너라고 평가한다면, 덩샤오핑은 씨이오라고 합니다. 중국은 천 구백 칠십 팔 년부터 시작된 개혁과 개방 이후 서서히 이념보다는 지식과 기술을 강조했죠. 그렇다면 그 지식이니 기술이니 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쉽게 말해 돈 버는 지식이자 기술입니다!

훗날, 후진타오가 군부론을 말하면서 세 개에 가까이 가자고 했지요. 그 세 개 가까이는 실제와 가까이, 군중과 가까이, 생활과 가까이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한발 늦은, 아니 돈에 미친 십 이 억 중국인들에게는 헛소리로만 들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지금 중국 부의 칠 십 프로를 십 이 억 인구 중 단 영점 삼 프로의 부자들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 영점 삼 프로의 부자들은 그야말로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아니,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가 심해지는 존재들입니다. 그걸 유식한 말로 에리직톤이라고 하지요. 에리직톤을 모르면 여러분 자녀들이 즐겨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를 보면 나옵니다. 공부 좀 하십쇼. 그러니 마누라는 물론 애들까지 무시하지 않습니까!

김 부장은 탁자를 내리쳤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여러분, 덩샤오핑은 이런 극심한 양극화는 혁명을 일으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제 농민 혁명이나, 노동자 혁명 같은 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부자들이 앞서가고 나머지는 따라간다 라는 말처럼 십 이 억 중국인의 혁명이란 돈을 향해 애걸의 하소연을 하며 울부짖으며 따라가는, 그야말로 하메른의 배고픈 어린아이들의 무리나 마찬가지입니다. 피리 부는 부자를 따라가는 것, 그것이 혁명이라면 혁명일 것입니다. 돈맛과 돈의 위력을 아는 현대의 농민과 노동자, 서민들은 혁명대신 자포자기하거나 부자들에게 순종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중국은 이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요. 돈! 돈! 돈! 그 돈이 있으니까 목욕 자주하면 복 달아난다고 하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세계 미술시장을 좌지우지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부자박람회까지 열었습니다. 하아,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돈이 없으니까 교양인 행세라도 하려고 미술전시회 관람 차 아침부터 몸단장하는 마누라가 야속하면서도 할 수 없이 김 기사 노릇 하는 게 여러분 아닙니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연신 우리들을 ‘여러분’이라 부르면서 싸잡아 비야냥 거리는 듯 하여 속이 울렁거렸다. ‘쨔샤, 왜 너는 너고, 왜 우리는 비참한 여러분이냐고?’하지만 나는 김 부장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얼른 그에게 집중했다.


“하루에 일 억을 벌어도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말하는 어느 중국 부자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부자의 경지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부자는 루이뷔똥이나 구찌 물건을 구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루이뷔똥과 구찌와 샤넬을, 심지어는 영국과 프랑스와 이태리를 통째로 사들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더러운 민족이라고 깔보던 중국인들이 이러한데,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죄송하지만 솔직하게 말할까요? 단 몇 백만 원의 카드 빚이나 사채 일 이백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며 고통에 떨다가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닙니까?

지금 내 눈에 다 보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적어도 십 프로는 오늘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한강 다리건, 지하철이건, 냄새나는 여관방이건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했을 인생이 보입니다. 아… 참으로 암담한 현실입니다.

교회요? 교회 문 나오는 길로 지하철에 몸 던진 사람은 있었어도, 여기 왔다가 비참하게 저승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도! 마누라랑 어린 자식들에게 미안하다, 먼저 간다 라는 유서 한 장 외에는 남겨 줄 재산 하나도 없이 내일 죽으려고 했던 가장들이 이곳을 통해 새 삶을 얻고 새 출발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니 바로 여기가 진정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매 주 금요일 밤마다 성공사례발표 시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금요일 밤마다 철야기도를 하며 하나님한테 부자 되게 해달라고 울고불고 얼굴이 퉁퉁 붓도록 통성기도를 한다지만, 희뿌연 새벽에 교회를 나서는 그들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입니다. 무엇 하나 약속된 게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금요일 밤은 다릅니다. 우리의 금요일은 갱생의 밤입니다. 성공의 밤입니다. 돈을 내 하인으로 삼는 밤입니다. 단언하건데 돈은 죄가 없습니다. 죄인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김 부장은 이제껏 탁자를 내리쳤던 것보다 더욱 거칠고 당당하게 주먹을 꽂았다. 나도 모르게 김 부장에게 잘못을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어찌어찌 들어가게 된 중소기업회사를 다니며, 결혼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착착 승진도 했지만, 틈만 나면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남들처럼은 살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꾐에 넘어가 중형차도 사고, 아파트 평수도 늘리고, 여름에는 바다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물론 양가 부모님들 해외여행도 보내드리면서 어깨에 힘도 넣었죠. 그런데다가 지금 마누라랑 딸은 미국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외로운 기러기 아빠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회사가 일 주일 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일 주일 전, 간부 회식 때 함께 술 마시고 단란주점에서 질펀하게 놀았던 사장이 회사를 정리하고 가족 모두 데리고 바람처럼 미국으로 갔다는 게 아닙니까! 나는 마누라랑 애새끼를 만나고,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당장 비행기표가 없습니다. 지난주에 마누라한테 월급 몽땅 붙여주고 한 달 생활비로 얼마 남은 것을 사장 찾으러 다닌다고 동료들이랑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변호사를 세우고, 진정서를 제출하고 뭐 그런 거 하고 다니며 홧술 마시다보니 다 써버린 겁니다. 카드요? 다음 주면 돌려막기 주간입니다. 다들 미국으로 갔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강 부장과 박진석을 놔둔 채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줄 알면서… 밖으로… 나왔다….


● 노경실 작가

ㆍ소설가

ㆍ82년 중앙일보 소년중앙문학상에 ‘누나의 까만십자가’ 당선

ㆍ대표작 ‘상계동 아이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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