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오심은 구약이 예언하고 확인된 역사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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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오심은 구약이 예언하고 확인된 역사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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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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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검증 - 무함마드(마호멧)는 예수님과 동등한 인물인가?
▲ SBS 대기획은 이슬람에 대해 조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무함마드와 같은 수준의 선지자로 격하했다. 사진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무슬림들.

고영민박사<백석문화대학 학장>


속설에 집중, 역사적 진실성 도외시하고 정확한 지식 없어

무슬림, 삼위일체 교리 부정 … ‘유일성에 위배’된다 생각


해발 1천 미터를 넘는 파미르 고원에서 뻗은 힌두쿠스의 산자락을 휘감고 유유히 흘러가는 인더스 강, 그 하류에는 ‘아프간족의 땅’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프가니스탄(Afganistan)이 자리 잡고 있다.

1년 전 그곳에서는 한국의 선교봉사단원들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었다. 온 국민은 밤잠을 잊은 채 그들의 생사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이어 두 젊은이의 피살소식을 듣고 찢어지듯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금번 SBS 기획자는 그런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독교와 이슬람 종교 사이의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려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의도와는 달리 이번에 방영된 ‘신의 길, 인간의 길’은 아프가니스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한국교회에 또 한번 큰 상처와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SBS는 제1부, ‘예수, 신의 아들인가?’에 이어 제2부에서는 ‘무함마드, 예수를 만나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첫째로, 무함마드, 예수를 만났는가

이 부분에서 기획자는 무함마드(마호멧)가 ‘신의 계시를 받기 전 사우디, 시리아를 다니던 발자취를 추적하여 예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다루려고 했다는 취재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는 한국의 종교학자와 인류학자, 현지 무슬림의 말들을 인용하여 마치 이슬람교를 소개하고 대변하는 듯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 내용들을 대체로 적어보면,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 ▲세 종교의 기원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장자이고 이삭은 차자이며, 장자가 번제물로 드려졌다 ▲예수는 예언자들 중 한 사람이고 무함마드는 마지막 예언자이다 ▲마지막 예언자가 최고이며, 하나님은 이슬람이 최고 종교라고 말하였다 ▲이슬람교는 계시의 종교이고, 무함마드는 히라동굴에서 계시를 받아 꾸란(코란)을 기록하였다 ▲예수는 역사성이 의심되지만 무함마드는 실제적인 인물이다 ▲적이나 이교도에 맞서 싸우는 성전(지하드)은 꾸란의 명령이다.

SBS 기획자는 무함마드가 대상으로 다니던 시절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바히라라는 기독교인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현지 정교회 신부와 무슬림 신도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속설일 뿐 정확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바히라가 마지막 예언자 운운했다는 것은 무함마드의 출현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그들만의 허구적 술책일 수가 있다.

금번 SBS는 역사적 진리성을 전혀 도외시한 채 이슬람 신자들의 일방적인 의견이나 주장만을 소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기독교의 전통적 신앙과 교리를 크게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면 이제 한국교회는 SBS 기획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SBS는 과연 예수와 무함마드에 대해 역사적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기원과 접촉점, 그리고 갈등의 원인 등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아랍과 이스라엘, 그 갈등의 원인은?

미국의 9.11 자살 테러를 비롯하여 전 세계 곳곳에서 국제 테러를 감행하는 배후 세력의 주역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은 줄곧 “미국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편을 들지 말고 중동을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결국 작년에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 벌어졌던 한국 선교단 인질사건은 단지 이스라엘과 아랍의 해묵을 전쟁터가 단지 그 장소를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새무엘 헌팅톤이 예고했던 문명의 충돌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신앙과 종족간의 갈등이 또다시 재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아랍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세계 역사의 최대 난제인가?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아브라함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 C. 2천년 전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에게는 그 뒤를 이을 후사가 없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부인 사라의 몸에서 후사가 나올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나이가 들면서 초조해진 아브라함은 나이 86세에 사라의 몸종인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고 얼마 후 매정하게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을 주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가게 하였다(창 21:8~21).

이스마엘은 바란광야에 거하면서 활쏘는 자가 되었으며 느바욧을 비롯하여 십이 방백을 낳았는데, 그들은 각기 ‘아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창 25:12~16, 대상 1:29~31)에 거하였다. 이스마엘 후손들은 요셉을 애굽에 팔아 넘기고 있으며(창 37:25, 39:1) 미디안 족속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삿 8:24). 그 후 이스마엘 후손들은 앗수르 문헌 등에 단편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요세푸스는 그들이 아라비아 반도 각처에 흩어져 살았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대사 12:2).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멧)는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 퍼져 살았던 무다르계 부족 출신으로서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이스마엘의 후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코란(꾸란)경에서는 이스마엘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동쪽 아라비아의 메카로 갔으며, 그의 후손은 이슬람인이 된 반면 아브라함의 본처의 아들인 이삭은 이스라엘에 그대로 남아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교가 하갈과 이스마엘의 관계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코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란에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현재의 카바 신전(메카의 최대 사원)을 세운 것으로 되어있다. 마호멧 전승에 의하면 그곳에서 물이 나오자 아담과 하와가 땅에 내려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최초의 신전을 세우고 주춧돌을 놓았다고 한다.

노아 시대에 들어와 대홍수로 인해 카바 신전이 크게 손실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아브라함이 유일신 신앙의 모범자로 선택받아 신전 재건축의 계시를 받아 그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신전을 증축했다고 한다(코란 2:127).

신전이 완성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지구촌 모든 신자들에게 이곳으로의 순례를 선포하고 이브라함이 카바 신전 주변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곱 번 차례를 돌았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무슬림들의 메카 성지순례(Haji)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코란 22:27).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사건에 대해 코란경은 대체적으로 구약성경과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장소가 메카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그들을 떠나간 것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두 모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물도 없는 돌산으로 둘러싸인 황폐한 계곡에 있었고 폭염과 갈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린 이스마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갈은 두 계곡 사이를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코란은 이 두 계곡을 사파와 마르와라고 부르고 있는데(2:158) 결국 하갈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발밑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잠잠(‘물아 멈추어라’)이라고 불리우는 이 샘물(비울 잠잠)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으며 순례객들은 이 샘물을 떠가지고 가서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고 있다. 지금은 하람 사원 안에 있는 이 두 언덕 사이의 대리석 회랑 사이를 일곱 번 뛰고 걸으면서 무슬림들은 하갈의 절박했던 순간을 기념하고 있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코란 해석가들이 창세기의 내용(22:2)과는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는 사실이다. 코란에는 아브라함이 꿈에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지만 그것이 장남인지 아니면 이스마엘인지, 이삭인지에 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무슬림들은 이때 꿈을 꾼 때는 이삭이 태어나지 않은 때였으므로 13세 된 이스마엘이 당연히 ‘사랑하는 독자’로서 제단에 드려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번제 장소인 모리아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이 아니라 하갈이 물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던 당시 메카 계곡 마르와(Marwa) 동산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상의 몇가지 주장만 살펴보더라도 유대교, 더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교의 끝없는 적개심과 악의적인 투쟁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게서 비롯된 장자와 서자의 갈등에서 비롯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공통점과 차이점은 유대교(후에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인 면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이슬람교가 유대교라는 종교적 토양에서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을 기초로 하여 그들의 경전이 코란(꾸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알라’(단수형.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로힘’은 복수형)를 유일한 창조자 신(神), 세계의 유지자와 재건자로 믿으며 인간이 순복해야 할 알라의 뜻은 그의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멧)에게 계시된 코란경을 통해 알려진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28명의 예언자들(아담, 노아, 모세, 예수 등) 가운데 마지막 인물이며 그의 메시지는 그 이전의 예언자들에게 내려진 계시들을 완성시키거나 폐기시킨다고 한다. 말하자면 무함마드는 모든 예언자들의 최종적이고 위대한 권위자이며 그가 세운 종교도 지금까지의 모든 종교들의 마지막 권위라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가지 선물들을 주셨다고 믿고 있다.

‘첫째’는 땅의 선물인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땅으로 보내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땅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고 한다. ‘둘째’는 책의 선물인데, 크게 다섯권의 책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믿고 있다. 즉, 아담에게 보낸 복음서(Huda), 아브라함에게 보낸 수흐프(Suhuf), 모세에게 보낸 토라(Taurah), 다윗에게 보낸 시편(Zaboor), 예수에게 보낸 인질(Injeel), 무함마드에게 보낸 코란(Quran)이다.

무슬림들은 토라라는 구약성경과 인질이라는 신약성경에는 변질되고 삭제된 부분 그리고 첨가된 부분이 있어 원본의 상태로 환원시키기 위해 아랍어로 코란을 적어 보내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는 스승의 선물인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기름진 땅과 좋은 책들 외에도 훌륭한 스승들(28명, 무명의 스승들은 12만4천 명)을 보내셨다. 그들 중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유일신 사상을 가장 잘 지킨 모범자이므로 하나님의 친구(Khal-eel Allah)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는 의미에서 무타칼림(Mutakhalim)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예수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지 3일도 안되어 어른처럼 말을 했다는 기록에서부터 예수가 행한 모든 기적은 물론 부활하여 승천한 사건을 비롯하여 말세가 되면 다시 재림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한다는 것 등을 코란은 예수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업적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여러 권의 책들을 단행본으로 완성하였다는 업적과 더불어 모세나 예수가 보존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원서를 원본 그대로 보존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고 코란은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화해 공존할 수 없나

이스라엘과 아랍은 아브라함을 같은 조상으로 둔 형제 나라이지만, 적자와 서자 사이의 피맺힌 갈등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더욱 거세게 되어 더 이상 건너갈 수 없는 원한과 적개심의 깊은 계곡을 만들어 내었고 급기야는 피가 피를 부르는 참혹한 복수의 아마겟돈 주역들이 되고 말았다.

코란경이나 이슬람교의 교리들에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대로 무슬림들은 유대교의 구약성경과 기독교의 신약성경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 언급된 신앙의 위인들을 훌륭한 스승과 예언자로 존경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비롯하여 그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재림, 심판의 사실까지도 믿고 있다.

그렇지만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3위가 계시다’는 교리는 어떤 단서나 설명을 붙인다고 해도 그들의 알라 하나님의 유일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고 단지 아브라함이나 모세, 무함마드와 동일한 예언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기독교는 무함마드를 단지 사막의 위대한 종교 전사나 풍운아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이러한 민족적, 종교적 갈등은 십자군 전쟁을 정점으로 극도에 달하였으며 근세에 이르러서는 아랍제국이 기독교를 믿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 의해 전쟁에 패배하거나 식민지가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것은 한 때 한 손에는 코란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역사상 가장 큰 이슬람 대 제국을 건설했던 무슬림들에게는 엄청난 수치감과 치명적인 모멸감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아랍인, 더 나아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해소하고 얍복강 이후의 에서와 야곱처럼 진정으로 화해와 공존의 손을 맞잡을 수는 없는 것일까? 무함마드의 언행을 담은 책 하디스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나는 알라 하나님께서 내려보내신 성경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을 정의롭게 대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주이시며 그대들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코란 42:15).

만일 이러한 이슬람교의 근본정신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마 5:39~45)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길 때 칼과 창을 녹여 보습과 쟁기를 만들고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는’(사 65:25) 여호와의 날이 정녕 찾아오게 될 것이다.


무함마드, 예수와 동등한 인물인가?

금번 SBS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 1주년을 맞이하여 유대교(혹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평화를 유지시킬 목적으로 방영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었고 한국교회로부터 큰 반발을 야기시키고 말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두 종교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함마드와 예수를 동등한 인물로 평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함마드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남다른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이슬람교를 창설하였고 애첩의 팔에 안겨 죽어(A. D. 632) 메카에 묻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미리 구약성경에 그 오실 것이 예언되었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셨으며 심판을 위해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성경의 명백한 증언이요 양심의 솔직한 선언이요 역사의 진정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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