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르포-하]“하나님은 통일을 완성해 나가고 계셨다”
상태바
[평양 르포-하]“하나님은 통일을 완성해 나가고 계셨다”
  • 이현주
  • 승인 2008.11.26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북 경색 정국 속 ‘교회 신뢰’ 확인하는 중요한 만남

3박4일간 평양에 머물렀지만 우리가 접했던 사람들은 열 손가락에 꼽힌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들과 동행한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들이 공식적인 수행원의 전부였다. 이동중 만난 안내원들과 접대원들에게선 정해진 설명 이외에 다른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북측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를 되물으며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지 20일이 지나자 북한에서 군사분계선을 통제하고 개성관광을 전면 중단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교회교류를 통해서라도 민간교류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 했던 북한은 지금 대외적으로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어느 때보다 간절히 ‘동족의 도움’을 원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공동주최한 평양 봉수교회 공동기도회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남북관계의 해법을 감지했다. 마지막 평양 방문기를 통해 남북 경색이 계속되는 시점에서 교회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지 알아 보았다.                                                           <편집자 주>


남북관계 경색 속에서 치러진 공동기도회 뒤엔 “또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존중과 배려가 있는 대북 지원… 콩나물이 자라듯 북한 사회오 교회도 자라


평양 방문 사흘째인 5일 방북단 일행에게는 평양을 떠나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정에 묘향산 관광이 포함된 것이다. 6대 명산으로 꼽힌다는 묘향산. 설악산처럼 아름답고 지리산처럼 웅장하다는 묘향산에는 아직 가을 단풍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행을 들뜨게 만든 것은 평양 밖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이틀간 정해진 일정에만 따라다니며 북한이 자랑하는 시설들만 견학한 방북단으로서는 조금 숨통이 트인 듯한 느낌이었다.

조금 이른 아침 7시. 일행을 태운 버스는 양각도호텔을 빠져나가 평양 시내를 질주했다. 이른 출근시간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평양역과 버스 정류장에는 아침을 시작하는 분주함이 느껴졌다.


다락밭엔 다시 나무가 자라

평양을 벗어나 한적한 외곽에 이르자 한산한 시골 풍경이 들어왔다. 평야지대인 평안남도의 특성 때문에 높다란 산을 만나긴 어려웠지만 나지막한 동산들도 제 모습을 잃고 다락밭으로 변해 있었다. 수차례 큰물 피해를 입은 북한은 최근 나무심기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남한교회들도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조그련 관계자는 “이제 다락밭을 만들 수 없다”며 북한 정부가 큰물 피해 막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야트막한 동산 곳곳에는 2~3년생 나무들이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막 심겨진 듯한 나무들이 몇 년만 지나면 산을 지키고 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울창해지는 것 같았다.

1시간을 지나니 청천강 물줄기를 만났다. 감리교에서 참석한 전 연세대 교수 이상섭장로는 변해 버린 평양 시내를 보며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다. 목회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다녔던 교회와 성경학교 자리는 인민대학습당으로 변해 있었다. 분단 전 평양 시내의 모습은 하나도 보존된 것이 없다.

전쟁의 상처는 평양을 폐허로 만들었고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념을 피해 청천강변으로 이사해 살았다는 이장로는 “이 곳에서 멱을 감으며 아이들과 뛰놀던 모습이 선하다”고 추억했다.

묘향산 가는 길은 한산했다. 늦가을 단풍놀이 차량도 없었고 평양을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특별한 도시 평양과 지방도시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묘향산까지 왕복 4시간. 도로에서 만난 차량은 10여 대에 불과했다.

묘향산을 등반한다는 기쁨도 잠시, 일행을 맞이한 것은 ‘국제 친선 전람관’으로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온 세계 각국의 선물이 소장된 곳이었다. 겉으로는 묘향산을 훼손했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건물이었지만 그 속은 묘향산을 파고들어 무척 웅장했다.

22만점의 보물이 들어 있는 곳. 대리석으로 번쩍거리게 지어놓은 전람관에는 빌리그래함목사가 보내온 평화를 상징하는 도자기와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선물, 현대 정주영회장의 다이너스티 승용차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람관을 다 돌아보려면 몇 개월을 있어야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한 참가자는 “왕조가 멸망할 때는 꼭 이와 같은 호화 궁전을 지었다”며 “고통받는 주민을 뒤로한 채 깊은 산 속에 보물창고를 숨겨놓은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람관보다 묘향산 등반에 관심이 있었던 일행들은 조그련 관계자들을 조르고 졸라, 40분 등반길에 올랐다. 고향의 공기를 맡은 것만으로도 더 이상 소원이 없다는 실향민들은 그 소중한 시간이 아까운 듯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온 일행은 예정된 교예단 공연 대신 학생소년궁전 아이들이 별도로 마련한 공연을 관람했다.


소년궁전 공연, 예술을 덧입다
학생소년궁전은 북한의 아동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예체능 교실로 시, 군, 읍 단위에 세워져 있다. 원하는 학생은 일과가 끝난 후 소년궁전을 찾아가 자신이 하고 싶은 예능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고 했다. 소년궁전에서는 합창과 발레, 바둑과 태권도, 피아노 등 다양한 예능 교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방북단 일행을 위해 마련된 1시간 남짓한 공연. 공연을 본 일행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고 그런 주체사상 일색의 공연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모두 깨어진 것이다. 과거 남측 방송을 통해 소개된 평양 아이들의 공연은 가식적인 주체사상 찬양 일색의 공연이었다. 그런데 이날 공연은 예전 보다 훨씬 자유로웠고 창의적이었다. 공연도 다양해 국악과 서양음악, 전통무용과 트위스트까지 선보였다. 마치 한편의 잘 짜여진 예고 졸업공연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한 참가자는 수년 전 본 공연과 비교하며 “사상의 옷을 벗고 예술의 옷을 입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 한국교회가 마련한 만찬이 양각도호텔에 준비되어 있었다. 기도회의 감격을 전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위원장은 “6.15공동선언 이행과 10.4합의 지지를 담은 공동선언문이 채택된 것은 남북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겨레에 기쁨을 주고 사랑의 향기를 퍼지게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만날 때는 반갑지만 헤어지자니 아쉬워

강위원장은 “양 단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친교와 협력을 유지해왔고 조국 통일을 위해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며 “만날 때는 반갑지만 헤어지자니 서운하다”는 소감도 전했다.


▲ 지난 5일 양각도호텔에서 열린 공동만찬. 이번 방북은 고려항공을 통한 서해 직항으로 이뤄졌다.
 
아쉬움 속에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6일, 마지막 일정은 대동강과 남포바다를 막은 서해갑문을 보고 순안공항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항구도시 남포는 평양처럼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띠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사뭇 경직되어 있었다. 평양다운 활기나 색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해갑문은 밀물 때 바닷물이 올라와 대동강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어지자 1986년 20리(8km) 물길을 막아 만든 것이다. 36개 수문을 동시에 열면 초당 4만 입방미터의 물을 뺄 수 있다고 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만으로 올 수 없는 곳이고 이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밟을 지 알 수 없는 땅이다. 이례적인 환대 속에서 북측이 우리에게 계속 당부한 것은 “계속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도회가 열리던 11월 초, 남북관계는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교회협 권오성총무는 공동기도회가 남북관계의 ‘숨통’을 터주길 바란다고 희망했지만 정작 두 나라는 거꾸로 거꾸로 되돌아가며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

이번 공동기도회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서로의 속내를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양국 정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공동체운동본부 공동의장 나핵집목사는 “새정부 출범 이후 대화의 길이 막혀 있어서 북측과 우리 정부 모두 길을 찾고자 하는데 쉽지 않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3박4일 동안 조그련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남측의 상황이 6.15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불안한 속내를 드러냈다.

민감한 북한의 상황은 미국 차기 정부 수장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부터 새정부의 대북 교류 의지가 어떠한가를 묻는 질문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핵심은 “우리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보아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

통일교육원의 말을 빌어 “새정부는 6.15선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펼치고자 한다”고 설명하자 북측 관계자는 의아해 했다. 좀 더 쉽게 “개성공단의 사업이 새정부 아래에서 장기적으로 엄청나게 확장될 것”이라고 말하자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이처럼 남북은 지금 신뢰를 잃어버리고 독설로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 입히는 일에만 급급해 있다.

‘만남’은 중요하다. 멀리 있는 친척이 이웃만도 못하다는 말처럼 만나지 않고 민족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번 방북단이 보고 온 곳은 특별한 곳이다. 북한에서 가장 부유한 선택받은 계층만이 입성할 수 있는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평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옥류관 앞에서 가려진 북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옥류관 앞에는 잘 누벼진 코트를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부터 평생 한번 평양을 둘러보는 것이 소원일 법한 가난한 농민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포상처럼 주어지는 평양 시내 관광과 옥류관 식사는 고단한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만을 보고 왔다고 말하는 방북단은 사실 방북 전 통일교육원에서 만난 한 젊은이의 충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북한 사역을 위해 50차례 방북한 경험이 있었던 굿네이버스 김선팀장은 “존중과 배려가 있는 남북교류”를 강조했다.

“우리가 북에 많은 물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것이 잘 전달되나, 북한이 얼마나 못 사나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첫 마음에는 과연 얼마나 가난한가 보고오자는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가시길 바랍니다.”

김선팀장은 “가난한 집에도 귀한 손님이 올 때면 갖은 좋은 것을 준비하며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이라며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데 구석진 곳에 깨어지고 파괴된 것만 찾아다니며 눈에 불을 켜고 본다면 어느 이웃이 좋아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가난한 농가에서조차 잠을 청한 적이 있다는 김팀장은 북한의 현실은 이미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며 그들도 충분히 우리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존심을 지켜주는 남북관계

자존심을 지켜주는 남북관계,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은 남측으로서는 받아주니 고맙다는 마음이 필요하고 받는 일에 익숙해진 북한도 믿고 주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시작된 지난 10년의 남북교류는 분명 북한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번에 본 평양의 모습에서 우리는 변화를 읽어냈고 그들은 그것을 당당히 보여주었다. 삐라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보낸 다양한 물자와 지원은 이미 북한을 변화시켜 놓았다.

기장 전 장로부총회장 송영자장로는 통일을 위한 노력을 ‘콩나물 시루’에 빗대어 설명했다. “우리가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져 나가고 없잖아요. 그런데도 콩나물은 자라요.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 계속 부어주다 보면 북한사회도 변화되고 북한 교회도 자라고 있겠죠. 이번에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3박4일. 짧은 여정이었지만 공동기도회를 위한 평양방문은 ‘통일’이라는 기도제목을 강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주북교회 조인철목사는 “참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또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며 헤어짐이 아쉬워 눈시울을 붉혔다. 한 30대 참가자도 “그동안 통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우리의 희생이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지배했다. 하지만 이번에 평양을 방문하고서 생각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앞으로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남과 북은 총부리를 거두고 서로 내민 손을 맞잡아야 한다. 교회가 그러하듯이 믿음과 신뢰 속에서 서로를 보듬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통일은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나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