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르포-상] "주의 살과 피를 받아들고 남과 북 모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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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르포-상] "주의 살과 피를 받아들고 남과 북 모두 울었다"
  • 이현주
  • 승인 2008.11.11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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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돌아서 간 평양... 가슴 뭉클한 감동 속에 공식 일정 시작


 찬양 속에 성령임재 강하게 느껴... 봉수교회 성도들 “아멘” 화답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북한의 특별시 평양. 분단 후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가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이었다. 10월 초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남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초청장을 보내왔을 때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북한의 심장부 평양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와 화해를 갈망하는 성가가 울려 퍼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이 설레었다. 지난 7월 금강산 관광지에서 일어난 박왕자씨의 총격 피살사건 이후 남과 북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새정부 들어 서로를 주시하며 관망하던 남북관계가 금강산 현대 사무실의 철수 등 실질적인 교류마저 끊기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남측 기독교 공식 대표들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4일 봉수교회에서 진행된 ‘성만찬’은 남과 북 모두에게 눈물겨운 감동이었다. 그 시간, 평양 봉수교회에는 분명 성령께서 임재하셨다. 교회협 화해통일위원회가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공동 주관한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공동기도회 3박4일의 여정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3일 오전 8시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에 모인 방북단은 모두 99명. 남북교류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교단 실무자 몇몇을 제외하고 참가자 대부분은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경색 정국 속에서 참가자들의 얼굴은 다소 긴장돼 보였다. 풍기에서 올라왔다는 한 목회자는 “가족들이 왜 하필 평양에 가려하냐며 마지막까지 만류했다”고 말했다. 우리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의 상황만으로는 긴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최근 남측의 민간단체가 북을 향해 뿌린 ‘삐라’ 등 양국의 신경전은 대단한 상황이었다.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에서 항공편을 갈아타거나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방북단은 서해 직항로를 선택했다.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에 오르자 빨간 옷을 입은 북측 승무원이 탑승객을 맞이했다. 비행기에 착석 후 권오성총무의 기도로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이번 방북이 통일에 대한 시각을 바꿀 수 있을까. 북에서는 어떤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온갖 궁금증이 밀려왔다.
 

서해 하늘 길로 날아오른 후 40분쯤 지나자 평안남도 벌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내에서는 곧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평남의 벌판은 막 추수를 끝낸 논들이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지막한 산들은 초록빛을 잃었다. 온통 흙빛인 땅. 이것이 내 눈에 들어온 북한의 첫 모습이었다.

 
‘아, 이곳이 북한이구나. 잃어버린 우리 부모님들의 고향이구나. 겨우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이 땅을 우리는 60년의 긴 세월을 돌아서도 올 수 없단 말인가.’ 쓸쓸한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방북단은 탑승 번호대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일일이 사진과 얼굴을 대조한 북측 직원들은 버스로 승객들을 이동시켜 청사에 안내했다. 분단 전 공사가 한창이었다는 순안공항은 평양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다. 하지만 북적이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99명의 방북단이 공항을 찾은 유일한 손님이었다.

 

공항에는 우리는 초청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얼굴을 아는 이들은 서로를 가볍게 포옹하며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정해진 버스에 오른 일행들은 공항에서 평양시내까지 30분 동안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에 빠져들었다. 무채색의 도시. 늦가을 거리의 가로수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고 도로를 오가는 차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 평양을 방문했던 한 인사는 “한편의 흑백영화를 보고 온 것 같다”고 말했었다.
 

도로 건너편에 작은 초등학교가 보였다. 원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곳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평양 시내로 들어서자 김일성종합대학과 개선문 등 사진으로 보던 평양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북단이 묵을 숙소는 양각도국제호텔. 서울의 여의도처럼 대동강변에 떠있는 섬으로 양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양각도라 이름 지어졌다.
 
 호텔 꼭대기에 위치한 회전 식당에서 오찬을 마친 일행은 다시 20분을 달려 김일성 생가가 위치한 만경대에 도착했다. 만경대는 북한 사람들에겐 일종의 ‘성지순례’ 코스다. 집안의 경사가 있거나 결혼을 할 경우, 만경대를 찾는다고 했다. 남측 방북단 이외에도 그룹단위로 만경대 생가를 둘러보는 주민들이 눈에 띠었다.
 

북측이 마련한 공식만찬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 방북단은 다음날 서둘러 봉수교회로 향했다. 양각도호텔에서 멀지않은 거리지만 평양 시내 궤도전차 노선 공사로 인해 외곽을 돌아 30분 이상을 달려서 도착할 수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막다른 곳에 예장 통합 남선교회가 지어주었다는 봉수교회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봉수교회 예배당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남측 성도들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북측 성도들로 가득했다. 단상에서 바라볼 때 좌측에는 북측 성도들이 우측에는 남측 참가자들이 자리했다.
 

봉수교회 담임 손효순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예배에서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은 “이렇게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분단 3세대들이 태어나도록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남북 간 자주적인 통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강위원장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통일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오성총무가 강단에 올라 “역사적인 기도회를 마련해주신 조그련에 감사한다”며 “남북관계가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예배에 임한 북측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그들의 ‘아멘’ 소리가 우리의 그 어느 교회보다 크다는 점이었다. 메시지가 전해지는 순간마다 “주여”와 “아멘”을 반복하는 북측 성도들의 화답은 예배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자신의 간증으로 설교를 대신한 기장 총회장 서재일목사는 허리 눌린 도마뱀에 남북의 상황을 빗대어 말씀을 전했다.
 

“나무 기둥에 깔려 허리가 짓눌린 도마뱀이 있었습니다. 꼬리가 잡히면 자르고 도망하는 도마뱀도 허리가 눌리니 빠져나올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 도마뱀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세히 보니 아내가 남편을 위해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미물인 도마뱀도 먹이를 구해다 주며 ‘살리는’ 일에 힘쓰는데 우리라면, 남이 배고플 때 북이 도와야 하고 북이 배고플 때 남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목사는 이어 “가난한 어린 시절, 기도의 힘으로 버텨냈다”며 “북측 성도들도 기도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개인의 소망과 더불어 민족 구원의 소망까지 이룰 수 있다”며 기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분단 후 남북교회가 한반도 땅에서 처음 집례한 성만찬은 감격 그 자체였다. 봉수교회 성가대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든 성도들은 남과 북 할 것 없이 모두 울고 말았다. 곳곳에서 작은 흐느낌이 들렸고 남측 성도들 중에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도 보였다.

 
‘주여, 우리가 저지른 분단의 죄를 고백합니다. 이 피로 죄를 씻고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성만찬으로 하나 된 남과 북의 성도들은 갈라진 땅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 주께서 주신 사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예배가 끝나고 남과 북이 준비한 성가제가 이어졌다. 남측에서 감리교와 기장 목회자 중창단이 먼저 찬양했다. 성가대원을 조직하지 못해 남측에서는 중창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북측은 성가대와 남녀 중창 등 6팀의 성가공연을 선보였다.

 
첫 찬양은 여성중창단이 들려 준 ‘빈들에 마른 풀 같이’로 환희에 찬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남측에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북한교회는 모두 가짜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성도들은 모두 동원됐을 것이고 그들에게 참 믿음이 없다고 단정 짓는다. 과연 그럴까.
 

찬양이 울려 퍼지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미 예배당 안에는 성령께서 임하셨고 찬양은 은혜로 가득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소절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데 가짜로 노래한다고 찬송이 주는 감동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열린 예배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듯이 하나님은 이미 성가제를 준비한 북측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열어 놓으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슬그머니 북측 성도 옆자리에 앉았다. 봉수교회에 출석한 지 몇 달되지 않았다는 초로의 어머니는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어떠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함께 만나니 좋고 함께 찬양하니 더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니 몸도 건강하고 근심도 없습네다. 모두 기도 덕분이지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북녘 어머니의 거친 손등을 슬며시 어루만졌다.

 
예배와 성가제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예배당을 나가는 남측 성도들을 향해 ‘다시 만날 때’를 찬양하며 박수로 환송하는 북측 성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헤어짐이 아쉬운 것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남과 북이 함께 마음껏 소리 내어 기도하고 찬양하는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방북단은 다음 일정을 향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평양=이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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