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북한의 특별시 평양. 분단 후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가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이었다. 10월 초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남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초청장을 보내왔을 때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북한의 심장부 평양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와 화해를 갈망하는 성가가 울려 퍼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이 설레었다. 지난 7월 금강산 관광지에서 일어난 박왕자씨의 총격 피살사건 이후 남과 북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새정부 들어 서로를 주시하며 관망하던 남북관계가 금강산 현대 사무실의 철수 등 실질적인 교류마저 끊기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남측 기독교 공식 대표들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4일 봉수교회에서 진행된 ‘성만찬’은 남과 북 모두에게 눈물겨운 감동이었다. 그 시간, 평양 봉수교회에는 분명 성령께서 임재하셨다. 교회협 화해통일위원회가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공동 주관한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공동기도회 3박4일의 여정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3일 오전 8시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에 모인 방북단은 모두 99명. 남북교류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교단 실무자 몇몇을 제외하고 참가자 대부분은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경색 정국 속에서 참가자들의 얼굴은 다소 긴장돼 보였다. 풍기에서 올라왔다는 한 목회자는 “가족들이 왜 하필 평양에 가려하냐며 마지막까지 만류했다”고 말했다. 우리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의 상황만으로는 긴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최근 남측의 민간단체가 북을 향해 뿌린 ‘삐라’ 등 양국의 신경전은 대단한 상황이었다.
서해 하늘 길로 날아오른 후 40분쯤 지나자 평안남도 벌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내에서는 곧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평남의 벌판은 막 추수를 끝낸 논들이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지막한 산들은 초록빛을 잃었다. 온통 흙빛인 땅. 이것이 내 눈에 들어온 북한의 첫 모습이었다.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방북단은 탑승 번호대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일일이 사진과 얼굴을 대조한 북측 직원들은 버스로 승객들을 이동시켜 청사에 안내했다. 분단 전 공사가 한창이었다는 순안공항은 평양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다. 하지만 북적이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99명의 방북단이 공항을 찾은 유일한 손님이었다.
공항에는 우리는 초청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얼굴을 아는 이들은 서로를 가볍게 포옹하며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도로 건너편에 작은 초등학교가 보였다. 원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곳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북측이 마련한 공식만찬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 방북단은 다음날 서둘러 봉수교회로 향했다. 양각도호텔에서 멀지않은 거리지만 평양 시내 궤도전차 노선 공사로 인해 외곽을 돌아 30분 이상을 달려서 도착할 수 있었다.
봉수교회 담임 손효순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예배에서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은 “이렇게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분단 3세대들이 태어나도록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남북 간 자주적인 통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강위원장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통일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예배에 임한 북측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그들의 ‘아멘’ 소리가 우리의 그 어느 교회보다 크다는 점이었다. 메시지가 전해지는 순간마다 “주여”와 “아멘”을 반복하는 북측 성도들의 화답은 예배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나무 기둥에 깔려 허리가 짓눌린 도마뱀이 있었습니다. 꼬리가 잡히면 자르고 도망하는 도마뱀도 허리가 눌리니 빠져나올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 도마뱀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세히 보니 아내가 남편을 위해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미물인 도마뱀도 먹이를 구해다 주며 ‘살리는’ 일에 힘쓰는데 우리라면, 남이 배고플 때 북이 도와야 하고 북이 배고플 때 남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단 후 남북교회가 한반도 땅에서 처음 집례한 성만찬은 감격 그 자체였다. 봉수교회 성가대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든 성도들은 남과 북 할 것 없이 모두 울고 말았다. 곳곳에서 작은 흐느낌이 들렸고 남측 성도들 중에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도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남과 북이 준비한 성가제가 이어졌다. 남측에서 감리교와 기장 목회자 중창단이 먼저 찬양했다. 성가대원을 조직하지 못해 남측에서는 중창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북측은 성가대와 남녀 중창 등 6팀의 성가공연을 선보였다.
찬양이 울려 퍼지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미 예배당 안에는 성령께서 임하셨고 찬양은 은혜로 가득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소절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데 가짜로 노래한다고 찬송이 주는 감동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열린 예배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듯이 하나님은 이미 성가제를 준비한 북측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열어 놓으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니 몸도 건강하고 근심도 없습네다. 모두 기도 덕분이지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북녘 어머니의 거친 손등을 슬며시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