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화유산을 찾아서(39)-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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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유산을 찾아서(39)-안동교회
  • 승인 2001.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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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 안동시는 옛날부터 유교가 아주 번성하여 양반골로 유명한 곳이며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이 있어 우리 민족의 전통을 보려는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찾은 안동교회(054-858-2000)는 1909년 둘째 주일에 7명의 성도로 창립한 안동시의 모교회다. 안동교회의 건물은 육중한 화강암으로 하나하나 다듬어서 지은 문화재급의 석조예배당으로 1929년에 기공하여 1937년 4월6일에 완공한 교회당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안동교회와 인접한 성소병원과 병원 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경안성서신학원 등이 개신교 초기에 안동시 복음화를 위한 복합적인 기관들이었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안동지역에 1909년 처음 교회가 세워지기까지는 많은 해외 선교사들의 역할과 또한 이들로부터 전도를 받은 한국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졌다고 보겠다. 특히 부산 주재의 배위량(W.M.Baird) 선교사, 대구주재 안의와(J.E.Adams)선교사, 그리고 베럿(W.M.Berret) 선교사에 의하여 안동부근에 교회공동체가 생기고, 안동읍에 교인이 생겨나자 1908년에 안동선교부가 생겨서 쑈텔(C.C.Sawtell) 선교사가 주재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그리고 대구의 안의와 선교사는 풍산교회 교인인 김병인을 전도인으로 파송하여 서문외(현재 대석동 대석상회 자리)에 있던 초가 5칸을 구입하여 서점을 만들고 교인들을 모아 예배를 드렸다. 그 날은 바로 1909년 둘째 주일이며 김병우와 6명이 예배를 드린 것이 안동교회의 창립일이며, 처음에 7명이 모였지만 1년후에는 70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안동교회는 민족의 수난과 함께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1919년 3월18일에 일어난 안동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김병우장로를 비롯한 많은 성도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그리고 안동교회는 창립 후에 안동읍 변두리 여러 지역에 전도대를 파견, 전도활동을 전개하여 수많은 교회를 세우는 모교회의 역할을 하였는데, 송현교회, 수상교회, 이하교회 등이 안동교회에서 개척한 교회들이다.

안동교회는 안동시의 모교회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크며 또한 오늘날 교회마다 조직되어 있는 고등부, 청년부 그리고 남선교회연합회의 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자 3.1만세운동 후 교회로 모여든 청년들의 신앙활동을 위하여 안동주재 선교사인 안대선(W.J.Anderson)의 지도로 1921년 2월5일에 안동교회 기독청년 면려회(C.E)를 당회의 허락하에 조직하였다. 이는 교회봉사 및 대사회사업으로 야간학교 개설과 금주금연 운동,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 농촌사업 등 범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
면려회운동은 1921년 6월에 경북연합대회가 안동교회에서 개최되면서 전국에 확산되어 1924년 12월2일에 서울에서 기독청년면려회 조선연합회가 창립되었다. 특히 안대선 선교사가 총무를 맡아 해방 후에 고등 C.E 장년 C.E로 분할되어 오늘에 와서 고등부, 청년회, 남선교회로 발전했다.

찾아가기 : 안동역에서 시청 방향으로 10여분 걸어가면 돌로 지어진 안동교회가 대로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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