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기독언론 동반자적 기능 수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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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기독언론 동반자적 기능 수행해야
  • 승인 2001.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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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기술(IT)혁명이 인간생활과 사회 그리고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 얼마전 타임지에 정보기술혁명에 관한 글이 특집으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 의하면 한국이 컴퓨터를 비롯 핸드폰 이용율이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앞으로 ‘정보화’에 가장 적극적인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을 예고합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지요. 목회영역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정보기술발전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기술발전이 문화오염의 주범이라고 크게 우려합니다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도구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느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느냐는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좌우된다는 얘기지요. 인간의 ‘죄성’ 때문에 좋은 기술과 재능을 잘못 사용함으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부작용을 우려해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데 주저해선 안되겠지요.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선용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수십대의 컴퓨터를 구비하여 경로대학·주부대학 등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교회에서 시행하고 있으리라 봅니다만 인터넷을 이용하여 심방도 하고 교인들과 커뮤니케이션 함으로써 호응을 얻고 있지요.

첨단 영상장비들은 예배패턴에도 많은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저희교회의 경우, 1부 예배는 가족예배(Family Service)로 드리는데 여기에서는 필요한 멀티미디어 장비를 총동원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예배에는 유년부 아동부터 고3까지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 형제 자매 등 온가족이 함께 참여한다는게 특징입니다.

어린이·청소년들은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이 예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50분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예배를 드린후 연령별로(5~7명씩) 장소를 이동하여 30분간 성경공부를 합니다. 교실마다 스크린과 멀티미디어 등 첨단장비를 구비, 교사들을 훈련시켜 성경공부를 진행합니다. 이와같이 정보기술 발전은 우리사회에 유익한 것입니다. ‘부작용’만 제거하면 얼마든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요.

- 요즘 교회는 명목상의 교인이 늘고 전반적으로 침체되어있다고 합니다. 침체의 핵심요인은 무엇이며 근본적인 극복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지난 96년 한국로잔위원회에서 제가 ‘리포트’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15개 교단에 설문지를 보내 교인증가율을 조사했는데 7개 교회만이 여기에 응답해왔지요.

그래서 나머지 조사대상 교회는 각 총회본부를 통해 교세변동 상황을 점검, 한국교회 성장율(93년부터 96년까지)이 어떤 상태인가를 조사했습니다. 신자 1천명 이상인 교회를 대상으로 했지요. 그런데 대상 교회들중 1% 이상 신자 증가율을 가진 교회가 없어 한국교회의 침체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가장 많은 증가율을 보인 교회가 0.9% 증가에 불과했으니까요.

이러한 성장둔화 결과에는 시대적·상황적인 요인도 있었겠지만 내적인 문제를 분석해 보면 교회가 복음의 핵심을 떠나서 너무 ‘변두리’ 문제에 관심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교인수, 건물 등 물량적인 문제, 목회자의 권위문제 등 외부문제에 지나치게 관심갖다 보니까 내적성장에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한국교회에 너무 허세·허수가 많다는 겁니다. 통계상의 교회수는 많지만 영세성을 면치못하는 교회가 상당수라는 거지요. 모 교단의 경우 어떤 지역에서는 세워지는 교회보다 문을 닫는 교회가 더 많다고 하니 이런 현상들은 한국교회 침체문제과 함께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며, 이같은 모습들이 교계는 물론 사회에 어떤 이미지를 줄 것인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축소되고 개인 주의화 되어가는 것도 침체요인중 하나이고, 수많은 사회적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대다수가 기독교인 이라는 점, 그리고 언론들이 이러한 부정적 사례들을 많이 보도하고 있어 간접전도의 길마저 크게 장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침체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침체를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개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운동장을 모르고 경기를 하겠다는 사람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듯이 신자들이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침체를 면치 못할것은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목회자와 교인 모두가 교회개념을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 ‘교회론’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시급하다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도 교회성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교회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입니다. 내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가 핵심인데 오늘날 한국교회에 있어서는 그 핵심이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할 것인가’ 등 듣기 좋은 소리, 현실적 문제에 너무 민감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강단 메시지에 대해서도 신학적인 반성이 필요합니다.

- - 21세기형 교회의 재창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미래형 교회의 모델은 어떤 것이라 보십니까.

- 초대교회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속에는 고린도교회도 포함되어 있지요.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우상숭배, 당파, 교리 등 수많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 불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현대교회도 문제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러한 분명한 인식속에서 사회에 빛을 발하면 사회로 부터의 인식도 달라지겠지요.

그렇다면 어떤 모델이 바람직 할까요. 두말할것 없이 성경적 교회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입니다. 성경적 모델은 첫째, 하나님 백성(people of God)이 교회이며 둘째, 그리스도의 나라(Kingdom of God)가 교회이고 셋째, 성령의 교통하심(Fellowship of the Holy Sprit)이 교회라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교회는 선택된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며, 은혜로 부름받은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무엇을 얻으려 해선 안되며 오히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치 인간들이 교회의 주인인것처럼 행세해선 안되지요. ‘교만’은 절대 금물입니다. 카터대통령이 퇴임 후 다시 주일학교 교사로 돌아갔듯이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시고 ‘나’는 백성으로 내려 앉아야 하는데 교계에는 자기가 마치 교회를 이끄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 같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교통(코이노니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친교(Fellowship)의 의미보다는 참여(Participation)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어떤 일에든지 함께 동참할때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 탈북난민1천만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현재 950만명에 근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서명운동 역시 동족의 고통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적 모델에 덧붙여 미래 교회가 해야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양심적으로 참여하면서 시대를 선도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는 구약의 문화명령(만물을 다스리라)과 신약의 복음명령(제자를 삼으라)을 잘 수행해 나갈때 이상적인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기독언론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그리고 기독언론과 교회와의 관계는 어떤 형태가 바람직 할까요.

- 아시는 바와같이 언론은 비판기능이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합니다. 비판은 건설적인 반면 비난은 파괴적이니까요. 그런데 비판을 명분으로 비난을 일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비판기능은 살아나야 하지만 건설적인 비판이어야지 파괴를 위한 비난은 삼가해야 합니다.

기독언론은 방송이나 선교단체와 같이 교회사역의 어느부분을 담당하는 파라처치(para church)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교회의 협력자·동반자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역할이 너무 비대해져서 협력자의 수준을 넘어서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따릅니다.

아울러 파라처치운동은 교회에서도 그들의 사역 일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언론은 세속적 잣대가 아닌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를 ‘업 그레이드’ 시키는데 공헌해야 합니다. 보도내용은 너무 ‘정치적’인 것에 치중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식상하는 교회정치 문제는 지양하고 교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글을 많이 실었으면 합니다. 기독교연합신문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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