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 아프간 전쟁,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충돌인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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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아프간 전쟁,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충돌인가?〈상〉
  • 승인 2001.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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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앙금으로 남은 ‘장자·서자’사이의 갈등

지금 전 세계인들의 눈과 매스컴의 초점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한 이슬람 국가에 온통 쏠려 있다. 해발 1천 미터를 넘는 파미르 고원에서 뻗은 힌두쿠스의 산자락을 휘감고 유유히 흘러가는 인더스강 하류에 자리잡은 ‘아프간족의 땅’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그 푸르고 서늘한 하늘은 연일 쏟아지는 각종 폭탄의 굉음소리와 포연의 잿빛 연기로 가득 메꾸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본능 이데올로기인 종교와 종족의 맹목적인 원리주의가 판치는 새로운 야만시대로 접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야만시대의 새로운 국제적 폭력사태가 지난 9월11일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과 뉴욕에서 각기 자행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그동안 모든 국제적 테러와 전쟁에서 정의의 해결사를 자임해 온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신세계 질서에 대한 아랍권의 노골적인 폭력적 거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허구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영웅 페르세우스는 잘 닦여진 방패를 이용해 인간을 돌로 만드는 메두사의 목을 베고 있다.

그러나 페르세우스는 자루에 담긴 메두사의 목에서 스며 나오는 핏방울들이 사막 위로 떨어져 독사떼로 변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미국은 영웅 페르세우스처럼 냉전이라는 괴물을 베기는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독사떼들을 만들어낸 격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심각한 갈등의 원인을 파헤쳐 가보면 우리는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두 개의 양극적인 축을 만나게 된다. 사실상 이번 폭탄테러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극우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배후 조정에 의해 처음부터 치밀하게 행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설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쩌면 무모하리만치 어리석은 자살 테러를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자행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것은 새뮤엘 헌팅톤이 예고했던 문명의 충돌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종족간의 갈등이 또다시 재현된 것인가? 이스라엘과 아랍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세계 역사의 최대 난제인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는 한 우리는 여전히 편견과 무지의 우물 안을 헛되이 맴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아랍 간 갈등 원인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아브라함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에게는 그 뒤를 이을 후사가 없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부인 사라의 몸에서 후사가 나올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나이가 들면서 초조해진 아브라함은 나이 86세에 사라의 몸종인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고 얼마 후 매정하게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을 주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가게 하였다(창 21:8∼21). 이스마엘은 바란광야에 거하면서 활쏘는 자가 되었으며 느바욧을 비롯하여 십 이 방백을 낳았는데, 그들은 각기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창 25:12∼16, 대상 1:29∼31)에 거하였다.

이스마엘 후손들은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기고 있으며(창 37:25, 39:1) 미디안 족속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삿 8:24). 그후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앗수르 문헌 등에 단편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요세푸스는 그들이 아라비아 반도 각처에 흩어져 살았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대사 12:2).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멧은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 퍼져 살던 무다르계 부족 출신으로서 무슬림들은 이스마엘의 후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코란경에서는 이스마엘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동쪽 아라비아의 메카로 갔으며, 그의 후손은 이슬람인이 된 반면 아브라함의 본처의 아들인 이삭은 이스라엘에 그대로 남아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교가 아브라함과 하갈, 이스마엘의 관계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코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란에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현재의 카으바 신전(메카의 최대 사원)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모하멧 전승에 의하면 그곳에서 물이 나오자 아담과 하와가 땅에 내려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최초의 신전을 세우고 주춧돌을 놓았다고 한다.

노아시대에 들어와 대홍수로 인하여 카으바 신전이 크게 손실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아브라함이 유일신 신앙의 모범자로 선택받아 신전 재건축의 계시를 받아 그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신전을 증축했다고 한다(코란 2:127). 신전이 완성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지구촌 모든 신자들에게 이곳으로의 순례를 선포하고 아브라함이 카으바 신전 주변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곱번 차례를 돌았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무슬림들의 메카 성지순례(코란 22:27, Hajj)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 보낸 사건에 대해 코란경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장소가 메카였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그들을 떠나간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 모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물도 없는 돌산으로 둘러싸인 황폐한 계곡에 있었고 폭염과 갈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린 이스마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갈은 두 계곡 사이를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코란은 이 두 계곡을 사파와 마르와라고 부르고 있는데(2:158), 결국 하갈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발밑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실 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잠잠(‘물아 멈추어라’)이라고 불리우는 이 샘물(‘비울 잠잠’)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으며 순례객들은 이 샘물을 가지고 가서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신다고 한다. 지금은 하람 사원 안에 있는 이 두 언덕 사이의 대리석 회랑 사이를 일곱번 뛰고 걸으면서 무슬림들은 하갈의 절박한 순간을 기념하고 있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코란 해석가들이 창세기의 내용(22:2)과는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는 사실이다. 코란에는 아브라함이 꿈에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지만 그것이 장남인지, 아니면 이스마엘인지, 이삭인지에 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무슬림들은 이 꿈을 꾼 때는 이삭이 태어나지 않은 때였으므로 13세 된 이스마엘이 당연히 ‘사랑하는 독자’로서 제단에 드려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번제 장소인 모리아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이 아니라 하갈이 물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던 당시 메카 계곡 마르와(Marwa) 동산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상의 몇가지 주장만 살펴보더라도 유대교, 더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교의 끝없는 적개심과 악의적인 투쟁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게서 비롯된 장자와 서자의 갈등에서 비롯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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