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시각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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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시각으로 보자
  • 승인 200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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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은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선교의 시각(時角)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선교의 시각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창이며 구원사의 접맥된 삶을 살게 해주는 연결고리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중국 외교에서의 망신, 남북관계 개선의 부진은 선교의 시각에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이슬람권 복음화를 위한 진통이다.

복음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로마, 유럽, 미국을 거쳐 한국을 중심으로 한 제 3세계를 그 중심지역으로 하면서 지금은 중국에서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 앞으로 이슬람권을 거쳐 복음의 발상지인 유대권으로 향할 것이다.

복음운동의 중심지가 이전할 때는 항상 일반사(세속사)의 큰 변혁이 있었다. 중국에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 안으로는 문화대혁명이 있었고 밖에서는 동서냉전의 해빙무드가 일어났다. 복음을 강하게 거부하는 지역일수록 그 변혁과 충격은 강한 것이었다. 이슬람권 복음화를 위한 계기로는 이번과 같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사건이 필요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교회는 이제 이슬람권 복음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사형 당한 일의 처리 미숙을 둘러싸고 드러난 외교망신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재개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처음에는 방송을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채널이 다양해지기 시작했고 한·중수교 이후에는 제한된 형태이지만 선교사들이 현지에 직접 들어가서 간접선교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이 때 중국현지에 갓 설치된 공관에서는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여러 가지 탈법행위를 해서 양국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고를 계속해서 본국으로 보내왔다.

이 보고를 받고 관계부처들이 합동으로 각 교파의 본부와 선교단체들 앞으로 엄중한 경고와 중국선교를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자주 보냈다. 이 사실이 일반 매스컴에 보도되어 중국선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확산되었다.

중국선교활동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도 많고 실수도 많다. 그러나 외부에서의 선교를 원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어느 정도의 마찰과 부작용도 따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이같이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는 것은 편협한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의 산물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다.

당시는 사회분위기가 지금보다 덜 자유로웠고 필자 역시 공공기관에 몸을 담고 있어서 언동에 제약이 있었으나 견디다 못해 펜을 들어 현지 공관의 실적주의를 공격하는 글들을 지상에 발표한 일이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한 보도를 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정말 해야 할 일들은 제대로 하지 않고 그런 보고나 열심히 올리더니…’하는 소리가 나왔다. 분명히 말하지만 뜨거운 사명감을 갖고 현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현실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기여는 외교관들의 기여 이상이다.

현지 공관은 중국에서 간접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선교사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보호에 힘써줄 것을 먼저 당부하고 싶다. 남북관계 개선이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통일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통일문제의 대헌장(大憲章) 제 1조이다. 이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나?

통일이 멀리 있어 보일 때는 이 원칙을 기억하며 기도를 열심히 하였는데 그 응답으로 남북정상 회담이 성사되고 통일이 가까워 온 것처럼 느껴지니까 어느 사이에 다른 것이 제 1조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닌지?

작년에 남한의 언론사 대표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만찬석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이요? 그거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하는 것이 방영된 일이 있었다. 그 다음날 새벽기도회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김정일은 역시 김정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했더니 “아멘”소리가 너무 커서 당황한 일이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그런 류의 사고를 젖게 된 것은 아닌지?

이제 통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더욱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의 목적은 북한복음화에 두어야 한다. 선교의 시각으로 이 일을 볼 때 그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새 돌파구를 여는 열쇠라는 답을 발견하게 된다.

유관지(목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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