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소설] 흉흉한 꿈이 궁금해 … “아침부터 예수쟁이가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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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소설] 흉흉한 꿈이 궁금해 … “아침부터 예수쟁이가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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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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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실 작가의 ‘혹시 당신은 꿈을 꾸셨나요’

분명히 꿈속이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는 걸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지하의 밀실 같기도 한 어느 방에 의자 두 개가 있다. 두 의자는 한 팔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나는 왼쪽 의자에 앉아 있고, 오른쪽 의자에 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런데… 오른쪽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닌가. 나는 분명 여기 있는데 내가 또 있다니. 나는 다시 한번 이것은 꿈이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내가 나와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은 그것이 꿈이건, 환상이건, 사실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공포만이 가슴을 짓누르며 가위눌림이다. 나는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려는 듯 온 힘을 다해 입술을 연다. ‘너는 나인가?’ 라고 물으려 한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대신 나의 내가 말한다. “너는 이제 죽어야 해.” 그 순간, 내 입술이 홍수에 둑이 터지듯 그대로 열린다. 나는 말한다. 아니 울부짖었다. “아니야. 나는 더 살아야 해. 할 일이 있어!”>


꿈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눈을 떴다.

누운 채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하지만 눈동자만 벽과 천장과 침대 주위를 맴돌 뿐 일어날 수 없었다. 책상과 의자 쪽은 눈길을 주지 못 했다. 이제 꿈은 새벽을 뒤로 사라졌는데도 나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침대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방안 어딘가에 집요하게 나의 죽음을 선고했던 내가 흐물흐물 숨어 있는 듯 한 두려움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마른기침이 터지자 물이나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산했던 꿈 탓인지 춥다. 물보다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 그래야 한다. 기침도 가라앉혀야 한다. 새벽녘의 마른기침을 그대로 놔두면 하루종일 지치게 된다. ‘그래, 난 할 일이 많아… 커피도 마셔야 해.’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한기가 등뒤로 화악 쏟아졌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얼른 가스레인지 앞으로 달려갔다. 따다다닥, 쉬이익… 눈부신 파란 불꽃이 피어오르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꿈은 무력해. 꿈속의 지옥불이라 해도 이 가스레인지의 불꽃 한 줄기만도 못 해. 난 살아있어!’


오늘도 나는 천 원 짜리 한 장을 코트의 바깥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작년 겨울부터 생긴 나의 중요한 일과이다. 파주에서 노량진에 있는 직장까지 가려면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은 그 날 기분에 따라서 한번 또는 두 번 갈아탄다. 그런데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지하철과 거리에는 그전보다 더 많은 걸인과 행상인들, 병인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마치 12월의 산타클로스처럼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면 하나 둘… 지구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산타클로스와 그들은 다른 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내가 가장 다르게 여기는 점은 이것이다. 산타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데, 그들은 스스로 울고 있다는 것이다. 도와주시오, 배가 고프오, 아내가 수술도 받지 못 하고 죽어가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떨고 있소, 나는 팔 다리가 하나도 없소, 부모에게서 버림받았소, 일 주일 전에 교도소에서 나와서 갈 곳이 없소…


나는 결심했다.

내가 세상을 구원할 수 없고, 가난한 자들을 거둘 수 없으며, 사회제도를 바꾸지 못 한다. 게다가 하루에 몇 천 원씩 기부도 못 한다. 그러니 딱 하루에 한 사람! 출근하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그 한 사람에게 적선을 하자. 이것도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한 달이면 거의 2만 5천 원이다. 으악, 2만 5천 원이면 5백만원짜리 적금을 부을 돈인데! 그래도 내 양심의 안전과 신앙의 안녕을 위해 이 정도는 하자. 그래서 나의 코트 왼쪽에는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두 쪽씩 읽는 경건의 책, 일명 얇은 한 달 분의 큐티용 책이, 오른쪽에는 내 양심을 스스로 위로해주는 천 원 한 장이 늘 들어간다. 이런 나는 대단한 건지, 쫀쫀한 건지... 단, 와이프가 알면 안 된다. 와이프는 동네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학원에서 논술강사를 하는데, 만약 알게 되면 나의 천 원짜리 선행은 곧바로 집안 경제를 붕괴하는 비행으로 전락되고 만다. 


와이프는 학원 창업을 원한다.

그래서 출산도 미루고, 심지어는 나의 갈색 내복까지 입는다. 그런데 내가 기부금납입증명서나 소득공제서류도 받지 못하는 곳에 한 달에 2만 5천원을 기부한다는 걸 알면, 나는 이혼감이다. 하지만 나는 이혼하기 싫다. 뭐… 하나님께서 이혼을 싫어하시기도 하고, 와이프를 사랑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솔직한 심정은 귀찮아서이다. 주변에 이혼한 친구들을 보면 그 과정에 지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중에는 자식들 때문인 탓도 있지만 서류상 그냥 부부인 채 각자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하루하루 직장일로 늘 파김치인데, 게다가 이혼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위자료다, 재산분배다 하며 신경을 쓰게 된다면 팍삭 늙을 것이다. 아니, 나보다 우리 부모님이 그대로 파파 할아버지, 호호 할머니가 될 게다. 이제 겨우 환갑을 지내셨는데…


지하철 3호선 안에서 내내 새벽의 꿈에 대해 온갖 생각을 하고, 수십 가지 해몽을 했다.

그러나, 아무 해답도, 결론도, 추측도 되지 못 했다. ‘와이프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그러나 와이프는 요즈음 겨울방학 특강으로 새벽까지 강의하느라 지쳐서 내가 출근할 때에는 완전히 실신상태로 건넌방에서 잠을 잔다. 오늘도 아내가 정신없이 자는 모습을 살며시 문을 열고 측은하게 쳐다보고 나온 나는 누구에게라도 꿈을 말하고 싶었다. 빨리 회사에 가서 동료들과 다방 커피를 마시며 화제에 올리고 싶었다.

‘죽음에 관계된 꿈이니 혹시, 대박 꿈은 아닐까? 로또라도 살까? 아님, 새해가 됐으니 승진이라도? 아니야.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죽으라는데 안 죽었으니까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어. 그 나쁜 일은 무얼까? 부모님이나 장모님 건강문제? 와이프나 내 문제? 아니야, 아니야! 와이프나 나나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예배는 절대 빠지지 않고, 주일학교 교사 일도 얼마나 열심인데...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내치시지는 않으실 거야. 그런데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나의 또 다른 나는 왜 나에게 죽으라고 했을까?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차원의 꿈일까? 하지만 새해 꿈치고는 너무 이상해… 이상해…’


“밀지 마요!”

나는 등 뒤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기운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엉겁결에 인파를 따라 내렸다. 다행히 종로 3가였다. 나는 사람들의 행렬에 저절로 밀려가는 듯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1, 3, 5호선이 만나는 종로 3가역은 출퇴근 때마다 인파의 홍수로 걷는 게 아니라 물위의 낙엽처럼 저절로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1호선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나는 그제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3호선 대화역에서부터 거의 한 시간 여를 서서 온 나는 아침부터 지친 몸을 스스로 추켜세우느라 두 손을 코트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 순간에도 에스컬레이터는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때, 내 오른 손 안에 지폐 한 장의 감촉이 느껴졌다. ‘오늘은 어느 사람에게 이 돈이 건네질까?’ 그런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1호선 쪽으로 걸어가는데, 내 마음과 두 눈은 물론 발목가지 잡아끄는 게 있었다.

‘꿈풀이, 사주, 운수, 성명풀이, 로또대박. 3천원부터’ 내 발이 밟히는지, 내가 누구 구두를 밟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정신 없이 걸어가는 한 편의 시멘트 바닥에 깔려 있는 글자가 보였다. 초등학생이 적은 듯한 서투른 굵은 붓글씨는 오히려 이상한 신뢰감을 주었다. 게다가 낚시 의자를 깔고 앉아 내용을 알 수 없는 한자투성이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의 정갈한 개량한복도 믿음직스러웠다. 물론, 이른 아침부터 이런 자리에 와서 운수 장사를 하는 노인의 처지가 마음에 걸렸지만 3천 원이라는 말은 오히려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삼천 원부터라고? 그럼 오늘, 내일, 모레, 이렇게 3일만 두 눈 딱 감고 참자.’ 나는 지난 꿈 해몽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주머니 속의 천 원을 만지작거리며 노인을 향해 걸었다. “어서 와. 웬 걱정이 그렇게 많아?“ 노인은 나를 보자마자 책을 덮으며 반겼다. 나는 사람들의 요란한 발소리를 무시하고 노인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꿈해몽하고 싶은데 삼천 원이면 되나요?” “그럼, 그럼! 말해 봐! 아무 걱정말고…” 노인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허! 죽기 아니면 까무라칠 꿈이네!”

노인은 안경을 벗으며 혀를 끌끌 찼다. 쪼그리고 앉은 나는 그대로 노인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 사이에 잠시 지하철 환승 구간은 조용했다. 환승 구간은 전쟁터처럼 시끌벅적하다가 조용했다가를 반복했다. “나쁜 꿈인가요? 혹시 대박 꿈은 아닌가요?” “맞아! 그래서 내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친다고 한 거야.” “그게 뭐죠?” “이 천 원 더 줘야 해.” “이 천원이요? 왜요?” “자네 꿈이 너무 기이해서 그래.” 나는 진노하실 하나님을, 허튼 데에 돈을 쓴다고 화를 낼 와이프도, 나를 만날 다섯 명의 걸인을, 그리고 나의 불편해질 양심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갑에서 오천원 짜리 한 장을 꺼내서 노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재빠르게 개량 한복 윗저고리 안에 지폐를 넣었다. “무슨 꿈이죠?” “그런데 혹시 자네 교회 다니나?” 갑자기 교회는… 나는 더듬거리며 네 라고 대답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런데 왜 여길 왔어?  자네 앞에 또 자네가 나타난 건 천사야. 그리고 죽으라는 말은 교회 열심히 안 다니면 죽는다는 거야! 에이, 재수 없어. 아침부터 예수쟁이가 오다니! 빨리 가!” 노인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보다 더 당당하게 나를 질책했다. 순간, 나는 내가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사기꾼일 거야. 아… 순진하게 내가 걸려든 거야. 지하철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런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이 아닐 텐데… 정말 눈 뜨고 강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말이야, 만약 내가 교회를 안 다닌다고 했다면 뭐라 했을까? 그나저나 내가 교회에 다니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쫓겨나듯 노인의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급하게 내달려 1호선을 타고 온갖 생각을 하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책이 잡혔다. ‘아침마다 하나님과 함께 여는 삶’ 큐티용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실소와 함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럼 그렇지… 그러면서 등뒤로 찬바람이 쉬잉 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섬뜩한 기운을 그대로 맞아들이며 중얼거렸다. ‘김수철, 너 진짜 한번 죽어야 정신차리겠냐!’


■노 경 실 작가

  소설가

  82년 중앙일보 소년중앙문학상에 ‘누나의 까만십자가’ 당선

  대표작 ‘상계동 아이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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