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제,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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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제,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 승인 2001.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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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기와 성년기 사이의 과도기 세대를 청소년기라고 부른다. 아동기를 벗어난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정체성의 미성숙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래서 청소년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들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미혼모, 에이즈(AIDS)를 비롯한 각종 성병, 자살, 왕따, 빈곤, 폭력, 약물 남용, 학업 중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 성 매매 심포지엄 설문 결과에 따르면, 성 의식이 왜곡되어 성 매매(원조교제)를 일종의 아르바이트(비행 청소년의 76%)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매춘은 성욕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필요하며, 정신이 순수하면 윤락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통계에 나타난 청소년들의 심리 상태를 살펴보면 육체적인 순결이란 거추장스럽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유엔아동구호기금(UNICEF)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17개 국 청소년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어른 존경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꼴찌(존경한다 13%)로 나타났다. 동방예의지국에 경로효친 사상이 투철했던 우리나라의 가치관이 이처럼 붕괴된 것은 산업화의 발달로 인해 대가족 제도가 핵가족화 하면서 가족 간의 유대 관계는 물론 상하 구조의 기본 틀인 어른 공경심마저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하나, 둘이다 보니 저마다 왕자요 공주로 떠받들게 되어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로 키우게 되었다. 편한 것만 찾다보니 한탕주의를 꿈꾸게 되고 노력은 하지 않고 사행심을 조장하는 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요즘 나라 곳곳에 폭력 신드롬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영화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등이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폭력이 미화되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낸 사건이 얼마 전 부산 모 공고에서 일어났다. 급우를 살해한 학생은 영화 ‘친구’를 40여 차례나 보고 용기를 얻었으며 방법도 생각해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것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 총체적인 병리 현상 속에서 성장한 이 시대 청소년들의 현주소이다.

이와 같은 현실이 지속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할 수밖에 없다. 권모술수를 일삼는 권력 지상주의 세태와, 돈이면 다라는 황금만능주의 속에서 청소년들은 갈등하게 되고, 결국 편한 길을 택한다. 물론 소수의 비행 청소년들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제 부모를 보고 자라듯 청소년들은 기성 세대를 보고 성장하게 된다.

상업성을 위주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흐름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유해 환경으로 작용하는 현실이다. “내 아이는 별탈 없으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우리 부모들이 벗어나야 할 때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제 기독교에서 정의의 횃불을 밝힐 때다.

우리나라의 교육 실정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청소년들이 여가 생활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한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좋지 못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여건이 허락되는 교회에서는 이러한 청소년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간을 활용해 스포츠 시설, 북(Book)카페, 연극 공연장과 연주회, 각 분야 발표회장, 상담실 등 그들이 교회 안에서 젊음을 건전하게 발산할 수 있도록 꾸며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 교회 여건상 시기상조일 수도 있지만 사회복지사를 두어 청소년 상담 업무를 전담케 해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과 이들을 학교와 청소년 유관 기관에 연계시키는 일 등을 할 수도 있다.

또는 교회 안의 현직 교사와 은퇴한 교사들을 활용해 저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방안도 있다. 청소년 문제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특히 각종 범죄로부터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공포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들에게 목회자의 영적 인도와 위로, 그리고 사회복지사의 개입은 또 다른 위험으로부터 청소년들을 구할 수가 있다. 내일을 모르고 사는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심어주는 일과 순리를 가르치는 일은 다름 아닌 교회가 나서야 한다. 마땅히 아이에게 가르칠 것을 가르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할 일 중의 하나인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일이다.

박대훈(청주서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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