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화재현장] "주여! 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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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화재현장] "주여! 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 정재용
  • 승인 2008.01.17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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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그들을 섬기기 원하신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등성이들이 병풍처럼 서있는 경기도 이천의 설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잠시, 이내 눈살이 찌푸려지고 악취로 따가운 코끝과 입을 막아야만 했다. 멋드러진 산세를 자랑하던 호법면 유산리는 지난 7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코리아냉동의 잔재들이 역한 냄새를 뿜으며 더 이상 발걸음을 가까이 할 수 없게 했다.

▲ 힘없이 무너진 철골들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준다.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채 시커먼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아 무너져 내린 건물을 마주하자 거대한 ‘괴물’이 떠오른다. ‘저 큰놈의 괴물은 어찌하여 출구가 하나밖에 없었을까. 백 개쯤 있어도 부족할 것 같은데….’ 물어봐도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뿐이다.

왜 이제야 큰소리를 치는 것일까. 2005년 물류센터 공사장 바닥 붕괴사고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던 사람들이 말이다.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은 한두번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 삼풍백화점이 붕괴될 때도,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릴 때도 똑같았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불에 타서 녹아버리고 엿가락처럼 휘어져버린 철기둥들은 이제 소방관들의 몫이다.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죽음의 현장에서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영하의 날씨에 땀을 흘려보지만 중무장을 하고 있는 그들의 마스크 뒤에는 어둠이 드리워졌다. 어쩔 수 없다. 40명의 목숨을 삼킨 괴물과 씨름하는 것도 피곤한데 동료 소방관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단다. 이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56세의 소방관이 말이다. 매일 아침 괴물 앞에 모인 동료들은 이수호 소방관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다시 시커먼 괴물 속으로 들어간다.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는 40명의 희생자들.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슬픔은 누구의 몫도 아니다. 슬퍼해보고 그리워도 해보지만 돈 좀 벌어보겠다고 고생하다가 화염에 휩싸인 괴물에게 삼켜진 채 눈을 감아야만 했던 이들만 불쌍할 뿐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더 애통하다. 빈소에서 만난 가족들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40명이 희생당했는데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조금이라도 더 잘살아보겠다고 힘든 일 마다않고 고생했건만 보람도 없이 귀한 목숨을 잃었으니…. 이제와서 돈이 무슨 소용인지….”

남편과 아들을 함께 떠나보낸 중국동포 강순녀씨는 아들을 불러본다.

“우리 아들 얼마나 뜨거웠을까. 뜨겁다고 살려달라고 엄마를 얼마나 불렀을까. 엄마가 미안해. 조금 가난해도 그냥 살 것을 괜히 한국에 오자고 해서. 아버지랑 같이 가니까 외롭지는 않겠지. 여보! 아들! 나중에 만나자.”

아들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 뒤로는 흐느끼며 남편을 찾는 목소리도 나지막히 들린다. “여보! 나 왔어. 당신 사진 다른 걸로 바꿔줄라고. 이 사진이 훨씬 잘 나왔다. 미안해. 같이 가야하는데… 고생만하다가 먼저 가는구나…” 멋스런 사진을 놔주지 못해 아쉬웠는지 새 사진을 올리고 이전 사진은 종이봉투에 조심스레 담아 터벅터벅 유족 대기실로 다시 돌아나간다.

40명의 사진이 놓여있어야 할 코리아냉동 화재사건 합동분향소에는 반도 안 되는 열 댓 개의 사진만이 놓여있다. 이름 밑에 성경책을 하나 올려놓은 자리도 있지만 아무것도 없이 휑한 이름표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달려온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가족, 친구의 이름을 찾는다. 40개 이름표 중에 하나를 찾아 눈시울을 붉히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성경책 앞에 서서 기도하는 이들도 “주여…” 외마디를 뱉고는 다음으로 이어내지 못한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웃으며 보낼 수 있는 이들이 하나도 없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에 그곳의 분위기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김해성목사(지구촌사랑과나눔 대표)가 유가족 대기실로 들어왔다. 희생당한 13명의 중국동포들과 1명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가족들을 위로하고 대변해주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한다.

가난이 싫어서 약자로라도 살아가며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찾은 고국에서는 죽어서도 대접은 받기 힘든가보다. 이도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일어난 화재때도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사고 수습이라도 하겠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마저도 버겁다. 김목사는 그들을 대변하려고 나섰지만 쉽지가 않다. 그저 기도할 뿐이다.

“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남은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천시 기독교연합회 봉사단도 달려왔다. 합동분향소에서 2교대를 해가며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고 식사와 차, 간식거리를 제공하며 소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다. 세 시간여를 앉지도 않고 서있는 한 장로에게 사랑을 나누는 소감을 물었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그저 따뜻한 차 한잔 따라주고 컵라면에 물이나 부어주는 것이 전부지. 유가족들 보면 가슴만 아파요.”

예수님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없거니와 차 나누고 컵라면 나눠주는 것도 힘들어 예수님을 닮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섬겨야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섬겨야한다’. 사고현장을 찾은 성도들은 그렇게 섬김을 다짐했다.

한국에는 45만 명의 외국인노동자와 100만 명의 재외동포들이 있다. 남한인구의 2%를 넘어선지 오래다. 다인종ㆍ다민족ㆍ다문화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선교의 대상이다. 단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대신하기 위해 온 노동자들로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김해성목사는 설명했다.

모두 자신들의 나라에 돌아가면 많은 영혼을 구원할 선교사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한국교회는 단기선교의 열풍을 일으키며 작년 한 해만도 수만 명의 단기선교사들을 파송했다. 밖으로 나가는 선교의 중요성을 알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만나는 외국인도 전도의 대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 듯했다.

지난 해 북인도 카쉬미르에서 추방당한 이성규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선교여행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수년간 현지 무슬림들과 동고동락하며 정을 나눴던 선교사들이 결실을 보기도 전에 사역지에서 쫓겨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기선교를 진행하면서 장기선교사들의 사역까지 위협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단기선교에 임하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붙들고 땅 끝까지 나아가는 심정으로 선교지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다. 성령님이 임하셔서 권능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제일 먼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은 그 다음이다.

비행기를 타고 땅 끝까지 나가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됐다면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복음을 한 번 쯤 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해성목사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왜 한국에 보내신 것인지 생각해보고 선교의 마인드로 한국교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한다.

이번 이천 화재참사의 끝은 관련자들의 처벌도, 보상금 합의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기도로 그들의 아픔을 품고 진정으로 위로하기를 원하신다. 또한 선교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작년 한 해 애타게 부르짖던 ‘100년 전 부흥’의 열정을 잃지 않기를 바라신다.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고 계실 예수님께서 한국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지는 않을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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