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서울역 못떠나요,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데..."
상태바
[성탄특집] "서울역 못떠나요,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데..."
  • 이현주
  • 승인 2007.12.21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숙자무료급식 9년째, 나눔공동체를 찾아

▲ 배식을 마치고 돌아와 김해연 사모와 자원봉사자 윤윤철목사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른 아침, 검은 홍합을 씻어내는 소리가 분주하다.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끼고서야 한기를 조금 막을 수 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은 좁은 주방에서 불평은 사치다. 그저 만들어낸 국밥을 따뜻하게 먹어줄 ‘가족’이 있어 행복할 뿐이다.


서울역 건너 숙대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다보면 허름한 건물이 모여 있다. 나무간판에 쓰인 글씨는 ‘나눔선교교회’. 좁은 통로를 올라가면 벌써 9년째 노숙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박종환목사와 김해연사모를 만날 수 있다.


지난 17일, 서울역 거리급식이 있던 날. 나눔공동체 주방에서는 목사와 사모 단 둘이서 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냈다. 아직 작은 형편에 매일 달려오는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것도 힘들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한 시간 남짓 식사준비를 마친 김해연사모는 힘들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매일 하는 일인데... 봉사자 기다리다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손 놓고 있어야 해요. 그냥 목사님하고 저하고 만들고 나누고 하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어요.”


주방 한 켠엔 겨우내 ‘서울역 가족’들이 먹을 김장김치가 놓여져 있다. 얹어다 놓은 중고 냉장고 속에도 그들의 뱃속을 따뜻하게 덥혀줄 식재료들이 가득하다.


아침 10시 15분. 준비된 국과 밥이 탑차에 실리고 박종환목사와 김해연사모는 서울역으로 길을 나섰다. 월요일은 거리급식을 하는 날. 150명분의 식사를 준비했다.


“반찬이 많은 날은 200명도 넘게 모이고 찬 없이 국밥으로 말아주면 조금 덜 오고 그래요. 매일 보는 식구들이라 안 오면 또 어디 좋은 밥 먹고 있겠거니 생각하지요. 맛있게 먹어주면 좋고...”


김해연사모가 건네주는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에 동참했다. 10시30분, 차가 들어서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줄을 선다. 백여 명. 차례로 순서를 지켜 국밥을 받아갔다.


“엄마, 오늘 서울역에 대통령후보가 온대. 같이 구경가자.” 한 노숙인이 건네는 말에 김해연사모는 “그래그래, 같이 가서 구경하자. 재밌겠다.”라며 응대한다.


더 달라는 이에겐 수북이 쌓아주고, 모자라면 한 그릇 더 먹는다. 나눔공동체를 아는 이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한번 오고 사라지는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힘들 때 의지하며 속내를 털어 놓는다.


“나 밥 좀 싸줘.” 한 노숙자가 비닐 봉지를 내민다.

“그냥 먹고 가요. 언제 먹게, 저녁에?”

“어, 저녁에 먹을 거야. 국도 좀 싸줘.” “다른 사람들 먼저 먹어야 하는데... 이리 줘봐요.”


김해연사모는 밥과 국을 담아낸다. 남색 더플코트에 솜바지를 입은 그는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이었다. 몇일 씻지 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엄마, 나 코트 한 벌만 줘. 지금 입고 있는 거 빨아야 해.”

“지금 없어. 구해줄게 나중에 와요.”

“나중에 언제? 다음주까지 내가 살지 죽을 지 어떻게 알어. 지금 줘.”


미래를 기대하지 않은 노숙자들의 삶. 그들의 삶에 희망은 없는 것일까.


박종환목사에게 물었다. 지난 10년간 서울역을 떠난 사람들이 있는 지.


“없어요. 죽어 나간 사람들은 많지. 우리 교회에서 장례 치러준 이들도 숱하죠. 다시 자활해서 가정으로 돌아간 사람은 없어요. 돌아갈 형편이면 이곳까지 밀려들어 왔겠나. 다들 사연이 막막하고 받아줄 사람 없는 서러운 이들 뿐인데...”


한숨 속에 섞인 사연은 참 답답했다. IMF가 터진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지만 서울역의 사정은 더 나빠져만 갔다. 서울역까지 밀려 온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채가 부도가 난 후 가족에게 버림받아 오갈 곳이 없는 이들이었다.


아침 공공근로를 마치고 교회에 잠시 들른 최씨 역시 행복한 가정이 있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어느 날 작게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고 단칸방 얻을 적은 돈은 아내가 가지고 집을 나가버렸다. 아들 하나는 외가로 보내고 그는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거리로 나섰다. 빚더미에 신용불량상태. 신분을 드러낼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었다. 거리에 몸을 누이고 한 끼 밥을 얻어먹으면 그 뿐이었다.

집나간 아내를 원망하며 술로 세월을 보낸 지 몇 해. 박종환목사를 만나 지금은 쪽방에서 생활하며 공공근로로 생계를 유지한다.


“술 끊었어요. 안 먹어 인제. 목사님 말씀 잘 들어야죠. 허허허.” 며칠 전 이발을 했다는 최씨는 무척 말쑥했다. 깨끗이 차려 입은 옷차림하며 노숙자였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배식을 받으러 온 사람 중에는 깍듯이 예의 갖춰 인사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거리로 나설 사람들이 아닌 듯 싶었지만 사연만큼은 누구나 구구절절했다.


몇해 전 정부에서 노숙자 구제를 위해 취업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그도 1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노숙자들에겐 인기 만점인 나눔공동체도 2층 ‘쪽방교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삶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우린 알려지지 않아서 후원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큰 교회나 교단과 동역하는 것도 아니고... 노숙자 대부분 당뇨나 알콜중독, 간질환들을 앓고 있어서 치료가 시급한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당장은 없어요. 건너편에 진료소와 쉼터를 마련하면 노숙자들이 오가며 빨래도 하고 상담도 받고 할 텐데... 아직은 역부족이네요.”


후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 자본금을 갖춘 사회복지법인들은 정부와 민간의 지원을 동시에 받지만 이렇듯 두 부부가 맨 주먹으로 뛰어든 나눔공동체는 하루살이를 걱정하는 형편이다.


“신기한 건 9년 동안 돈이 없어 배식이 중단된 날이 없었다는 거에요. 모자란 중에도 하루하루 채워져요.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걸... ‘오병이어의 기적’. 그 기적이 우리 공동체에선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박종환목사 얼굴엔 근심도 없다.


서울역 가족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넘치지 않아 원망한 적은 없다.


“감사한 일 뿐이죠. 우리 교회에 집사를 세 사람이나 세웠어요. 매일 술만 먹고 죽겠다 타령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동체 일에 팔 걷고 나섭니다. 신앙생활도 열심이고 배식 때도 청소까지 도맡아 해요.”


노숙자들은 박종환목사와 김해연사모를 ‘아빠, 엄마’라고 부른다. 가족이 버리고 사회가 버린 이들을 보듬어주는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배식을 마치고 돌아와 찬물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 김해연 사모에게 물었다.

“이제 그만 서울역을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못 떠나요. 아이고, 어떻게 떠나요. 정이 들어서... 밥 굶을까봐도 못 떠나요. 누가 거둬 먹이라고... 하루라도 안 보이면 얼마나 찾아대는데. 저 사람들, 우리 걱정하며 기다려요.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데 어딜 가겠어요. 이제 서울역 사람들, 저희한텐 ‘가족’이 되어 버렸어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IMF 10년. 서울역의 살림살이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거리를 이부자리 삼아 몸을 기대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오직,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해주는 고마운 가족뿐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그리고 한 끼 식사에 사랑을 담아주는 나눔공동체가 있어 서울역 사람들은 또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