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회자들 섬기는 청량리 '은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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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목회자들 섬기는 청량리 '은수교회'
  • 정재용
  • 승인 2007.12.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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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목마른 노년 마지막 선교로 불태운다.
▲ 은퇴목사와 사모들로 구성된 전도특공대의 열정이 뜨겁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지난 11월 21일 수요일 아침. 제기동의 한 시장 골목에서는 어린이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찬양의 주인공은 어린아이들이 아닌 평균연령 70세를 훨씬 웃도는 은퇴목사들. 어린이들이 부르면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할 찬양이 은퇴목사들에겐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깨달음의 고백이었다.


청량리역 인근 시장에 위치한 은수교회(담임:엄도성목사)는 2001년 새해 첫 주일, 네 명의 은퇴목사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6년이 흐른 지금은 주일예배에 20명, 수요예배에 40명의 ‘목사성도’들이 모이는 은퇴목사들의 안식처가 됐다.


▲ 예장합동측 목사로 은퇴한 엄도성목사
교회를 이끌고 있는 담임목사도 역시 은퇴목사다. 그러니 은수교회는 목사도 성도들도 모두 은퇴목사들로만 구성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항상 은퇴목사들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어 은퇴목사가 아니면 정식교인으로 등록할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교회의 푯대로 세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 의미가 더 쉽게 다가온다.


그런데 왜 은퇴목사들만의 교회가 세워진 것일까? 원로목사로 대우받으며 안정된 노후생활을 보내는 목사들도 많은데 왜 굳이 시장 안에 교회를 세웠을까? 이런 의문의 해답은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들의 척박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제2, 제3의 은수교회가 세워지길 소원하는 엄도성목사는 “목사들은 은퇴하면 원로목사로 대우받고,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아 편안하게 보낼 것 같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얼마 전 예장통합의 한 발표에서 보듯 70%에 가까운 목사들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형교회 목사들은 퇴직금과 사례비가 책정되고 대형교단에는 은퇴목사들을 위한 연금제도를 운영하지만, 작은 교단이나 소형교회에서 시무한 은퇴목사들은 외롭고 고단한 노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은퇴목사들, 마음만은 풍족하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교회를 훌쩍 떠나온 은수교회 성도들에게는 후회로 남진 않는다. 은퇴 후 성도로 자리 잡은 목사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지 목사의 권력을 쥐고 자식에게 세습하는 그런 자리가 절대로 아니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러한 뜻을 함께 하고 있는 목사들이 은수교회 성도들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시장 한 구석의 좁은 공간, 미약한 예배시설이 은퇴한 원로목사들이 모이는 교회라고 하기엔 어색함이 없지 않다. 하지만 목회인생을 마치고 안식을 찾고 있는 그들에게는 지난 세월의 은혜들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건물임대료와 각종 지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몇몇 교회들의 도움과 조금씩 모이는 헌금들로 하나님께서는 매월 100만원이 넘는 물질을 허락하고 계신다”며 엄목사는 감사함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외로운 은퇴목회자들 가운데 풍족한 마음도 함께 허락하신 것이다.


이렇게 모인 은퇴목사들은 현직에서 다하지 못한 선교와 목회의 사명을 은수교회에서 펼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은퇴 후 어떻게 사용하실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은수교회 성도들을 통해 기뻐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적은 금액이지만 올해 1월에는 CBS 방송국에 50만 7천원의 선교헌금을 했고, 멕시코와 인도에 있는 두 명의 선교사도 후원하고 있다. 예배 후 가지는 기도집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땅 끝까지 나아가려는 선교의 열정은 현역의 목회자들 못지않다.


은수교회는 매월 한 번 청량리와 종로로 노방전도를 나가 말씀을 선포하기도 한다. 가슴에 ‘전도특공대’라고 새겨진 노란 띠를 두른 목사들은 은퇴의 아쉬움을 말씀을 선포하며 발산한다. 특공대장인 엄목사는 “우리교회는 은퇴목사만 정식으로 등록받기 때문에 어느 교회로 오세요, 가세요 말할 곳이 없지만 천국에 같이 가자고는 말할 수 있어요”라며 “구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뿐”이라고 말한다.


오는 12월 26일에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십자가선교원(원장:안일권목사)을 방문해 성탄의 기쁨도 함께 나눌 예정이다. 수요예배에는 항상 외부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십자가선교원 안목사님을 만났다. “그곳은 마약과 도박, 알콜중독과 같은 사회와 격리된 치료시설이지만 미래의 대통령후보들이 많이 있다”며 한 청년이 치료 3개월 만에 목사안수를 받기로 했던 사연도 함께 전한다. 손자뻘 되는 청년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 함께 기도하고 사랑을 나눠 변화가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던 것이다.


이렇게 기쁨이 넘치는 은수교회도 세상 근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예배를 마치고 느지막하게 예배당에 들어선 성도에게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 ‘하나님 앞에 드릴 헌금이 없어 예배드리기가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 사연이 가슴이 아팠던 엄목사는 “물질은 부질없다고 말씀을 전하던 목사들이지만 하나님께 평생 빚진 자로 살아가는 모습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라며 눈시울을 적신다.


이후 은수교회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위로하는 것도 교회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하면 점심식사와 교통비 명목으로 5천원을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엄목사는 “한 끼 식사비도 안 되는 5천원이 무슨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씁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풍족히 채워줄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엄목사는 “한 주일 동안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밥을 두 그릇씩 먹고 가는 초로의 목사님을 보면서 교회가 가장 먼저 도와야 할 이웃은 바로 생계가 어려운 은퇴목사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퇴목사의 현실을 목격한 은수교회는 이후 그들이 마음 편하게 예배드리고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퇴목사 수양관 설립’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선배들이 겪은 고난의 노후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거리를 불 밝히는 수만 개의 붉은 십자가 불빛 중에 칠순이 넘은 목사들이 함께 동고동락하는 곳은 은수교회 뿐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은수교회.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배고프지만 배부른 마음으로 사역을 하는 전도특공대는 오늘도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한국교회 역사에 귀한 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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