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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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 승인 2001.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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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교개혁 484주년을 10월말로 보냈다. 개혁자 요한 칼빈은 “지상의 교회는 계속 개혁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은 계속 흘러야 맑은 물이 되듯이 이 땅의 교회들도 계속 반성과 개혁으로 이어져 나가야 된다고 본다. 한 곳에 물이 정착해 버리면 물은 썩고 말 것이다. 한국 교회도 그렇다. 달라져야 한다.

진리의 말씀에 조명해 보면 전혀 하나님과는 관계없이 사람들간의 제도와 법으로 전락되고 있는 일이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속으로 점점 곪아간다. 더 곪아 터지기 전에 스스로를 수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도 교회를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도리어 지금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성인들이 머리를 좌우로 갸우뚱 흔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첫째는 신앙의 무속화이다. 사람들은 신앙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식의 신앙은 우리들의 ‘샤머니즘’에서 내려온 ‘종교 혼합’으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교회의 기업화이다. 교회는 선교나 봉사에 역점을 두기보다 건물 치장에 너무 열을 올리고 사업형으로 프로젝트를 걸고 교인들을 지나치게 피곤하게 하는 느낌을 준다. 작은 교회일 때는 그렇지 않다가 대형화하면 할수록 그런 방향으로 흐른다.

셋째는 교권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 교단마다 개교회주의는 극대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세 교회의 어두운 면을 한국 교회가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을 준다. 교단장이나 각 모임의 회장 선출에 따른 경쟁은 극에 달하고 있다. 급기야는 분열의 아픔도 서슴치 않고 한갖 정치적인 문제로 교회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면 이제 그 해결의 길을 모색해 볼까 한다. 아주 절망적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고칠 것은 고치고 누군가가 진리의 길을 외쳐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의 사명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계속 지적하다보면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이 달라져야할 개혁의 의지이다.

먼저 연합정신이 필요하다.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감히 주문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아집을 버려야 한다. 특히 지도급에 있는 분들의 아집은 깨어져야 한다. 기도는 멋지게 화합과 일치로 구사되지만 몸과 마음은 아집 속에 맴돌고 있을 뿐이다. 교회일치는 슬로건일 뿐이다. 그래서 지도자들부터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겠다. 평신도들은 잘 어울리고 욕심도 덜하다. 그들은 일치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도리어 후퇴하고 있다. 자신의 울타리를 더 높게 치고 있는 인상을 준다.

다음으론 지도자 양성이 문제다. 신학교의 남발로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 양성이 한국 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 세상의 어떤 전문분야보다도 사람들의 영적인 지도자가 될 교회 지도자는 객관성을 배제하고는 양성되어서는 안된다. 의과대학만 해도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한 국가적 검증이 얼마나 까다롭고 법률의 선을 긋는 전문가의 양성은 얼마나 더 힘든가? 생각을 깊게 만든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목회자로 마구 길러내면 우리나라의 교계만 점점 더 혼탁케 할 것이다. 고민을 해서라도 한국 교회가 반성하여 고칠 일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사이비성’이다. 진리는 진리 그대로라야 한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것도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말한대로 한국 교회는 저마다 목회자 양성으로 무자격 지도자를 양성하다보니 결국 사이비성 지도자가 기독교의 진리를 외치면서 여기 저기서 군림하려하고 있다. 위험 수위에 올라있다. 이상한 소리를 하면 사람들이 모여오는 모양이다. 중세 교회가 수도원 생활을 강조하면서도 속으로는 병이 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 사이비성 이단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여겨서라도 ‘꿩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결론은 이렇다. 한국 교회는 잘 성장해 온 게 사실이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임에 틀림없다. 서구 교회들이 그런 과정의 흐름을 거쳤다. 문제는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얼마나 바뀌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서구 교회들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큰 힘을 보이기 위해 개교회주의에서 화합과 연합으로 일치의 길을 선택할 때다.

김순권(경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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