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모든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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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모든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 이석훈
  • 승인 2007.10.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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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출석 4개월만에 전도 시작해 전도왕에 오른 최명자 전도사

1979년 당시 세 아이의 평범한 엄마였던 여인 최명자. 병명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안좋은 몸 상태로 인해 안 해 본 것이 없었지만 주위에서 교회 나가보라고 해서 생전 처음 교회를 찾았다.

 
교회에 출석한 지 4개월 만에 마음문을 열고 말씀을 사모하게 됐다.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교회와 목사님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 사람들과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자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모른채 구원의 근본도 모른채 그저 목사님과 교회가 좋았던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으세요?” “교회에 나가세요?” 물어보고는 교회에 안 다닌다고 하면 “왜 안나가시는데요?”요 이어지면서 귀찮을 정도로 전하고 또 전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 전도는 한 주간 만나는 사람마다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예수님을 자랑하게 됐으며, 교회에서의 심방도 빠지지 않고 따라 다니게 됐다.

 
새로운 생활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까 “언제 아팠는가” 할 정도로 언제 낫는지도 모르게 병도 나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전도를 하다 보니까 하나님 말씀을 100% 믿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여인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셨고, 복음증거 하다 보니까 소명감을 갖고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전도에 전념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부모보다, 부부보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 지금도 사랑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의 전도는 이렇게 첫 번째는 그저 받은 은혜와 감격을 ‘자랑’하는 단계였다. 이후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바치기에 이르렀다.

 
전도하면서 처음 다니던 염산교회(당시 오신주목사)에서 집사도 되고 교회를 다니며 간증하는 축복을 받았다. 당시 영적 아버지였던 오신주목사의 추천으로 금란교회, 명성교회와 같이 큰 교회들에 간증을 하게 됐으며, 미국에까지 가는 영광을 얻었다.
 

미국에서 간증집회를 한 이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1996년도 5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미국 영주권을 아무 조건없이 선물로 받아 한국과 미국을 다니게 된 것이다. 

 
영주권을 받은 이후 한달에 한 번은 한국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고, 나머지는 온 세계를 다니며 한 주간에 두 교회씩을 방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간증집회를 다닌 교회는 셀 수 없을 정도이며 수많은 영혼들을 전도했지만, 이 모든 것이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에 자랑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교회를 하게 된 사연도 우연이자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긴다. 고양시 행신동에서 목회를 하는 여자목사가 “교인이 한 명도 없어 너무 힘드니 맡아 달라”고 했으며, 그녀는 “전도하면 되잖아요” 했지만 노력해도 안 된다고 했다.

 
기도해 보겠다고 하면서 교회를 나서는 순간 미장원을 하는 아주머니를 만나 전도하니까 교회에 나오겠다고 하여 힘을 얻고 교회를 개척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5년전 팔복중앙교회이다. 오신주목사에게 은혜를 받은 팔복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편인 한선교목사가 맡아 사역을 하고 있으며 최 전도사는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중 하나는 대부분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을 전도해 교회에 정착시키면 얼마 지나 큰 교회로 가고 싶다고 떠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너무도 상심이 되고 실망을 했지만 어느날 기도하는 가운데 “지금도 구원받는 백성이 있음에 족하라”는 음성이 들렸다. 이후에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총회에서 ‘전도왕’까지 시상한 그녀이지만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어제까지 전도한 것은 지난간 것이고, 오늘 다시 전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교회에서 받은 전도패를 다시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도왕’ 소리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녀가 전도와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느낀 것은 ‘기도 생활’의 중요성이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것인데 기도 없이는 안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17년째 전도하는 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은 그녀는 요즘은 새벽기도 끝나면 아파트에 전도지를 갖고 가서 신문지에 끼우는가 하면 문고리 전도지를 걸어놓는 등 운동이 필요없을 정도다. 한바퀴를 돌고 나서 “한 장의 전도지를 통해서도 영혼이 결실을 맺게 하소서” 기도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미국에 가면서도 미국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지만 어느날 미국에서 간증할 때 정신이상자들이 나온 것을 보고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저런 영혼을 맡겨주시면 교회를 하겠습니다” 고백하게 됐고, 지금은 기도하면서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최명자 전도사는 보다 효율적으로 전도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금년 초에 ‘새생명 전도학교’를 시작했다. 믿지 않는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라서 복음을 전하는데까지 성장시키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였다.
 

요청하는 교회에는 한 주간을 세미나 기간으로 정하여 전도이론과 함께 실습까지 나가 전도의 열매를 함께 나누고 있다. 낮 시간에는 전도에 대해서 가르쳐서 실습을 병행한다면 저녁시간은 부흥회로 말씀을 나누고 새벽시간은 뜨겁게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사랑과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의도적인 접근을 통한 전도를 비롯하여 대화 중 자연스럽게 복음의 화제로 이끄는 방법, 눈높이에 맞춘 전도방법, 실제 기도꾼 훈련, 예화 비유 사용법 등을 나누고 있다.
 

이 세미나를 마치고 나면 참석자들의 얼굴이 곧 전도지가 되며, 전도자 이름이 붙는다. 또한 중보 기도팀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 주고 전도 대원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도해서 축복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임을 자처하는 최명자전도사는 1남 2녀 자녀들을 다 결혼시켜 목사 사위를 얻었으며, 아들도 신학을 하여 주의 종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갑절의 축복을 고백하고 있다.
 

“눈만 감으면 전도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는 최 전도사는 교회 개척과 새생명전도학교 등 이 모든 일들은 자신을 위해서 시작했으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한다는 다짐 속에 오늘도 믿지 않는 영혼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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