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에도 기억될 믿음의 유산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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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뒤에도 기억될 믿음의 유산을 만들자
  • 송영락
  • 승인 2007.10.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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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단 목회자들의 교회와 사회에 대한 책임회복 우선되야
▲ 건강한 교회 세우기 운동 등을 전개하여 기독교만의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데 주력해야 한다. 믿음은 형식이나 조형물이 아니라 무형물이지만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다.

100년 후 3007년 8월, 평양대부흥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어떤 식으로 재현될까. 2007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회개와 부흥, 갱신과 연합을 부르짖었던 믿음의 선배들것처럼 또다시 초대형집회를 통한 회개운동을 전개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8월에 열린 초대형집회는 의미없는 행사로 역사 속에 묻힐 수도 있겠고, 다행히 몇 명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과 2007년 기념행사를 조명하는 소규모 학술대회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100년 전 기념행사의 주역이었던 교회들은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묻었던 타임캡슐을 개봉하고 어려움 가운데 교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선배들의 열정을 기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남북통일로 100년 전에 믿음의 선배들이 그토록 원했던 장대현교회의 옛터 위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회복으로 교계지도자뿐만 아니나 세계의 교계지도자가 참석한 대회로 세계를 향한 한국교회의 위상을 과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한국교회가 비판을 받고, 인터넷이나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을 총칭하여 ‘개독교’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전통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로마서 12:1절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으로 하디선교사와 길선주목사를 기억하면서 그들의 열정과 고백을 기념했듯이 100년 후 믿음의 후배들이 2007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기념집회를 통해 한국교회를 기억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쉬운 것은 후손들이 기억할만한 교계 지도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설교를 맡은 옥한흠목사를 기억할 수도 있겠고, 기념대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김삼환목사를, 총기획을 담당했던 조성기목사를, 아니면 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 대부흥이야기를 쓴 박용규교수를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남긴 믿음의 유산을 재평가하기엔 역부족이다.

 

100년 후 믿음의 후배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기억하도록 하기위해서는 1907년에 부르짖었던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 필요하다. 이는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교회가 있기까지 70~80년 부흥과 성장의 주역이었던 보수교단의 목회자나 민중의 고통을 함께 나눴던 진보교단의 목회자들이 교회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진보교단에 속한 소위 ‘종로 5가 그룹’은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정부로부터 혜택을 누렸다. 일부 목회자들은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꿨고, 방송국 사장으로, 기독교기관 수장으로, 정부 유관기관의 책임자로 자리를 보장받았다. 결국 예수님의 사랑으로 민주화를 외치면서 자리를 지켰던 진보교단의 목회자들은 ‘광야의 야성’을 상실했다.

 

보수교단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던 보수교단은 대형교회로 성장하면서 힘의 논리에 따라 사회와 집단적 대결을 일삼았다. 결국 힘의 논리는 시청집회로, 사학법개정반대운동으로, 시국집회로 이어졌으며, 지역 구청장선거부터 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세상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목사의 영적 지도력과 말씀에 기초한 인격과 삶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전 동국대 교수인 신정아씨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인 변양균씨의 사건이 정치계와 불교계를 흔들고 있지만 ‘다음 아고라’, ‘한겨레닷컴’, ‘조선일보 종교토론방’ 등을 비롯하여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은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신정아씨와 불교를 연관 지어 비판하거나 심각한 욕설이나 막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샘물교회 박은조목사의 사과 발언과 정부의 비용청구에 대한 네티즌들의 냉랭한 반응은 계속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100년 후 믿음의 후배들이 기억할 수 있는 선배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정익목사(신촌성결교회)는 경외심회복, 교회의 역할회복, 교과서적 선교회복, 탈 정치적 위치회복, 교계 선거문화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정익목사는 “위기의 때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넘어졌을 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때이다. 그리고 실패의 순간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바로 그 시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들이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되찾고 우리 주위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을 변명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챙기고 과감하게 수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손인웅목사(덕수교회)는 조선에 들어왔던 초기 교회의 긍정적인 모습과 1907년 대부흥운동 속에 드러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시대에 맞는 언어로 재해석해 내어 그 영향력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 순수한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회복 ▲ 건강한 교회 세우기 운동전개 ▲ 윤리적 인격자 양성 ▲ 실천적 사회봉사와 사회적 변혁운동 전개 ▲ 생활개선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흥은 위험과 소망 사이에서 갈등을 빚는다. 위기는 위험뿐이 아니고 또 다른 기회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현장으로서의 교회를 위해 다시 한 번 복음, 기도, 공동체로서의 교회 발견이 회복되길 기도해야 한다. 그런 교회야말로 세상의 소망이 되는 교회이며, 죄로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여 불가능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현존이 될 수 있다.

 

박용규교수(총신대)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교회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지탱할 수 있었던 원동력, 한국교회가 전 세계에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뜨거운 선교열도 바로 부흥운동에 있었다. 이와 같이 강력하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이 시대 우리 민족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며 “이 부흥운동은 철저한 개인의 각성이 사회 전반의 개혁으로 이어져 성령 안에서 한국교회와 민족을 놀랍게 갱신시켰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참된 영적각성을 경험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와 민족의 개혁은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우리 교회, 사회와 국가가 총체적인 위기를 만나고 있는 이때 영적각성운동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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