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고난과 역경 모두 하나님이 쓰신 각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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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의 고난과 역경 모두 하나님이 쓰신 각본이죠"
  • 이현주
  • 승인 2007.10.15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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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영화 산딸기 감독에서 영상선교사로 변신한 김수형감독

 1980년대 아직까지 한국영화에 이렇다 할 에로영화가 없던 시절,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영화 제목은 ‘산딸기’. 이후 무려 6편의 시리즈가 제작됐고 에로영화의 교본으로 불릴만큼 이 영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의 제작자는 김수형감독(오병이어교회). 에로영화의 대부로 불리던 그가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로 돌아왔다. 매일 새벽녘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던 어머니와 폐병으로 죽을 고비 속에서 기도로 생명을 얻은 맏형 김락형장로(여의도순복음교회)의 권유를 모른 채하며 세상과 타협했던 김수형감독. 환갑을 넘긴 김수형 감독은 “지난 시간 누린 부와 명예, 그리고 고난과 역경 모두 하나님이 내 인생을 연출하기 위해 쓰신 각본이었다”고 고백했다. 지금 그는 오병이어교회 전도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한권의 간증집 ‘하나님이 나의 연출자입니다’(예영커뮤니케이션 간)를 들고 찾아온 김수형감독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지난 삶을 낱낱이 드러냈다.


# 떠오르는 스타감독 김수형


데뷔작품을 시작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으며 수많은 영화를 연출해온 김수형 감독은 1982년 ‘산딸기’로 일본 영화계의 스카우트까지 받았다. 당대 최고의 배우들은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했고 장미희 주연의 ‘갯마을’은 당시 중앙극장에서 관객 20만 명을 동원하는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잇따른 흥행에 힘을 얻은 김감독은 영화사를 차렸고 직접 제작과 연출에 나섰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고 출세를 하고 싶은 그의 욕망이 영화사로 압축된 것이다. 하지만 제작은 실패해고 정면승부를 걸었던 외화 수입도 시련을 맞았다.

산딸기를 제작하던 당시, 하나님은 그에게 한번 기회를 주셨다. 최자실목사의 일대기를 담안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를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이다.


최자실목사는 폐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형을 고쳐주었고 자신을 아들처럼 아끼고 기도해주시는 분이었다. 그의 가정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신 영적인 어머니였다. 그런 분의 영화를 마다할 리 없었다.

김감독은 정성을 다해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완성도도 높았다. 원작인 책은 이미 서점가 베스트셀러였다. 시사회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많은 이들이 은혜를 체험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영화는 홍보 부족으로 2주 만에 간판을 내렸다.

다시 세상영화로 눈을 돌렸지만 욕심은 패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구치소에서 읽은 성경책


영화의 계속된 실패와 영화사의 부도로 김수형감독과 가족은 빚독촉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 때 아들이 헤어진 엄마와 만났던 장면은 아직도 그는 잊지 못한다. 보고싶은 엄마를 몰래 만나고 돌아오는 아들은 내내 아무 말도 없었지만 못다한 말이 있다며 전화를 걸었을 때 “엄마, 사람해. 엄마, 힘내 내 걱정말고”를 외치며 눈물을 쏟아냈다. 무능한 아버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이 통한스러운 순간이었다.


도피의 생활은 얼마가지 못했다. 경찰의 수배에 그는 자수했고 성동구치소에서 4개월을 보냈다.

“구치소에 들어갔던 과거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겠죠. 구치소 창살 너머로 십자가 탑이 보이더군요. 완전히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음성 같았죠. 저는 그 곳에서 성경을 일독했습니다. 회개했고요. 그 시간이 부끄럽기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하나님의 덕분이죠.”


# 영상선교사의 꿈을 펼치다


방탕한 생활을 끝낸 김수형감독은 기독교 전용관 뤼미에르극장을 인수하고 기독교 영화를 수입하면서 돈보다 선교를 위해 새 인생을 시작했다.


지인을 통해 신학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간증집회를 다니고 영상선교사의 미래도 꿈꿨다. 아들을 위해 평생 기도한 어머니를 여의고서야 그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루 빨리 영상선교사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간절했다. 그런데 그에게 시험이 닥쳤다. 에로영화 제작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자그마치 30억원이 투자되는 영화였어요. 감독에게 6,000만원을 주겠다고 했죠. 돈이 절실했는데 6,000만원이라니 유혹이 아닐 수 없었죠.”


딱 한번인데 어떠랴. 그는 고민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에로영화 그만 찍고 하늘나라 감독이 되어 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유언이 떠올라 거듭 거절했지만 영화사의 제안은 끈질겼다.

“이 영화로 돈 버시고 명성도 되찾고 그리고 나서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영상선교를 하세요.”


흔들렸다. 가족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 때 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옛날에 에로영화 찍으실 때 돈 많이 버셨죠. 지금 그 돈 다 어디 갔죠? 이제 그만하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영화만 찍으세요.”


너무도 분명한 대답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돈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 하나님은 연출자, 나는 배우


어린 시절 아버지 무릎에 앉아 서부영화를 볼 때면 아슬아슬한 장면에 눈을 감곤 했다. 혹여 주인공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린 김감독에게 “수형아,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 감독이 그렇게 만들어 놨거든. 영화는 연출자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거란다”라고 설명해주셨다.


사업실패와 부도로 자살을 기도하고 3번의 뇌출혈로 시력을 잃을 뻔 했던 김수형감독. 그는 지금 하나님을 높이는 영상선교사의 길을 서원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연출자시고 저는 주인공이죠. 그간의 고난과 시련, 부귀와 영화 모두 하나님의 시나리오 안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죽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거죠. 그리고 저는 지금 그 위대하신 하나님 품에서 행복합니다.”


환갑, 다들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에 그는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가 걸어갈 영상선교의 길. 인생의 후반부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의 길로 연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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