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명분 상실한 ‘지도자들 이해관계’ 극복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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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명분 상실한 ‘지도자들 이해관계’ 극복이 관건
  • 송영락
  • 승인 2007.10.11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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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인사, 인맥에 의한 기획자 선정 등 수억원의 헌금 낭비

한국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적으로 추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는 한국교회는 올해 상암월드컵경기장, 잠실운동장, 올림픽공원, 시청, 부산해운대, 장충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초대형집회를 치렀다. 청소년들을 위해 대형문화공연과 전도축제인 ‘미션 라이즈업코리아’를 비롯하여 청년대학생을 위한 ‘역사를 이루는 리바이벌 2007’, 한기총과 교회협이 주최한 부활절연합예배, 평양대부흥 백주년기념행사, 기감, 기성, 합․정총회 등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수십개의 초대형집회가 치러졌다. 여기에 사용한 헌금만도 대략 백억원대에 이른다.

 

이처럼 백억원대의 초대형집회를 치른 한국교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초대형집회를 우려하는 이유는 교계 지도자들이 대의명분보다 자신이 속한 교단의 입김과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초대형집회에 순서를 맡았느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교계 지도자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특정 목회자가 설교나 대회장을 맡으면 특정그룹이 행사전반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모 총회장은 소속된 교단의 원로와의 인간관계에 따라 대의명분도 없는 단체에 소속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고, 장로교를 연합하는 단체의 대표회장을 맡고 있었던 모목사도 처음에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실무대표회장:김삼환목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다른 단체에서 수장을 맡았다.

 

교계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함량미달의 연출자와 기획사를 선정하는데 개입하여 집회운영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가깝게는 한국교회가 사회복지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던 ‘사회복지엑스포’에서 찾을 수 있다. 10억원이 넘는 예산으로 행사를 계획했지만 처음 사회복지엑스포의 기획자로 선정된 모목사는 함량미달로 중도에 하차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모목사는 일년전부터 행사를 위한 기도회와 각종모임에 참여했지만 함량미달로 실제적인 준비를 진행하지 못했던 것. 결국 행사를 3개월을 앞두고 새로운 팀으로 교체하여 행사를 치렀다.

 

부활절연합예배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교회협의 주최로 부활절연합예배가 치러졌다. 그동안 초대형행사를 부정적으로 여겨왔던 교회협이 행사를 맡으면서 의욕적으로 내놓았던 문화행사가 중도에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초대형집회를 치른 경험이 없는 CCM 가수가 행사의 총책임을 맡으면서 문제가 시작됐는데, 이 CCM 가수는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모목사의 교인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CCM 가수는 부활절연합예배행사가 끝난 후 한국교회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면서 경제적인 손해를 봤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함량미달의 기획사와 진행팀으로 인해 올해 한국교회는 수천만원의 헌금을 낭비했다.

  

이뿐만 아니다. 초대형집회의 중요한 실무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낙하산인사’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초대형집회의 실무자는 행사에 필요한 수십억원의 경비를 집행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이 때문에 특정 초대형집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부 교계 지도자는 ‘낙하산인사’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굳히는데 사용했다.

 

초대형집회의 화려한 조명과 영상, 감동적인 설교는 겉으로 보기에 부흥과 갱신을 앞당길 것처럼 보였다. 화려한 겉과 달리 내부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절차로 얼룩졌다. 초대형집회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조직된 행사기획사, 책임있는 진행을 위한 실무진, 대형행사의 기획과 연출로 살아가고 있는 ‘행사용 목회자’ 등은 현재 초대형집회를 치르고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소리높여 교회갱신과 부흥을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회개운동이 확산되지 않은 이유가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5백년 동안 면제부를 팔아 부를 축적한 중세교회처럼 한국교회도 초대형행사를 통해 몇몇의 기획사와 ‘행사용 목회자’만 이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초대형집회와 예수님의 성전청소사건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전청소사건은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 성전 마당에 있던 환전상과 제물을 파는 장사치들을 청소하는 사건으로, 환전과 제물 장사를 통해 폭리를 취하고 또 그곳에서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뇌물을 바쳐야 하는 상업주의, 기복주의, 형식주의에 빠진 당시 종교 조직을 청소한 사건이다.

 

사실 그 당시 제사를 위한 환전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요청이었다. 바벨론 유수 시절 이후 로마 제국의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내려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그 먼 나라에서 제물이나 십일조로 바칠 곡물과 동물을 들고 올 수는 없었던 것. 그들은 자신의 땅의 소산물인 생업의 열매를 팔아 현지 돈으로 마련해 갔고 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이스라엘 돈으로 바꾸어 성전세로 바치거나 희생제물을 사서 바쳤다. 만약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장사치들과 이권을 나눠먹지 않고 순수하게 비영리로 환전해 주고 제물을 원가에 팔았더라면 예수님이 성전을 구태여 청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부흥을 위해 초대형집회를 치렀지만 몇몇 교계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은준관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는 “21세기 문턱에서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엄밀한 의미에서 외부로부터 오는 온갖 도전도 아니고, 프로그램 결핍의 문제도 아니며, ‘교인 이탈’이나 ‘성직자 수급’ 문제도 아이다. 오히려 위기는 각종 프로그램과 회개 운동으로 교묘히 ‘존재 근거’로 위장하여 그것들이 마치 복음인 양, 하나님의 구원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적 오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며 ‘존재론적 전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초대형집회를 많이 치르고 성공적으로 치른 것이 부흥을 위한 시작이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절규가 살아있는 내면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은준관교수는 설명했다.

 

조직과 제도를 개편하면 할수록, 새 프로그램들을 마구 도입하여 이것저것 시도하면 할수록, 회개를 빙자한 초대형집회를 열면 열수록 이 땅 구석구석 신자들 영혼 깊은 곳에 그나마 남아있는 영적 그루터기는 살아 움직이는 영적 파워로 분출되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인 허탈과 영적 빈곤으로 계속 추락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우리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이것들은 기독교의 ‘종교성’(religiosity)유지의 몸부림일 뿐,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은준관교수는 ‘존재론적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국 교회의 도약의 가능성은 소박하지만 그렇다고 쉽지만은 않은 ‘존재론적 전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존재론적 전환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성취했다고 하는 모든 교회의 존재 양식들, 그것이 거대한 교회당이든, 초대형 교회든, 화려하고 요란한 예배든, 자랑스런 해외 선교사 봉사 활동이든, 이 모든 것들을 존재 근거인 것처럼, 복음 그 자체인 것처럼 위장하고 도색해 온 신앙적-신학적 위선들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상대화 하는 일일 것이다. 교회는 존재 양식일 뿐 그것이 아무리 소중하고 아름다운 성취라 하더라도 그것은 존재 근거,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대치할 수 없음에 대한 솔직한 자기 포기, 자기 선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가 하는 일이 곧 복음이라는 거짓 사슬을 끊는 순간부터 복음을 보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결국 허울뿐인 초대형행사를 통해 한국교회의 힘을 과시하는데 역점을 두기보다는 한국 교회가 민족과 세계의 역사 앞에 진정 섬김의 모습으로 현존할 수 있는 마지막 존재 양식이 되는 것이다. 성도 한명 한명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직업’에서,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기업윤리’에서, ‘정치영역’에서, ‘해외 선교지’에서 주어진 은사와 소명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는 길뿐이다. 올바른 ‘교회론’과 ‘목회론’에 뿌리를 둔 교회 구조와 신앙의 체제 변화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라는 점에는 이번 한국교회의 초대형집회는 진정한 부흥과 회개와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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