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론과 성경적 세계관
위에 언급한 대화는 전형적인 이원론의 사고의 예를 보여준다. 이원론이란 세상이 서로 대립되는 두 세력이 다스리는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말한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보고 이해하는 시각을 의미한다. 이원론이 말하는 세상의 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고 다른 부분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을 말한다. 위의 예로 볼 때, 물리학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이해되는 세계관 안에서 이 세상은 죄 되고 썩고 망할 세상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것을 멀리할수록 좋은 것이며, 결국 거기서의 삶은 신앙생활에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구원이란 바로 그러한 세상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구원의 내세적인 축복이 여기서 강조된다. 세계관에 대한 논의는 기독교 대학 또는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신앙 자체의 이해가 달라지며, 신앙생활의 모습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과 사단의 것으로 양분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일반적으로 구원받은 삶은 교회의 삶으로 한정되고, 교회 밖에서의 삶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단지 ‘도덕적인’ 삶으로 간주된다. 이럴 때에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 구원받아서 천국의 시민권을 받는 것,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한정된다. 그러나 성경은 영혼 구원의 중요성과 함께 창조세계 전체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도 중요하게 강조한다. 요한복음 3장은 영혼이 거듭나야 할 것과 함께 또한 세상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말한다.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로마서는 (4장) 또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8:21)며 세상의 구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성경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반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조세계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일관되게 가르친다. 사실 칼빈주의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은 창조의 시각에서 옳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를 선하게 지으셨으며, 그 창조세계가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 아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창조세계를 버리시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세계관을 성경이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이 삶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세상적인’ 삶이다. 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살던 ‘옛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새로 얻어야 할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새사람’이다.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언제나 죄된, 더러운, 버려야 할 세상이 아니다. 물론 세상에서 ‘세상적으로’ 사는 것은 정죄를 받는다 (약 3:14-15). 그러나 세상 자체가 하나님과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라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는다. 요한복음 3:16-17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참고: 골 2:20, 딤전 6:7, 딛 2:12, 벧전 5:9). 세상은 죄로 심판받아 저주 아래 있으나 (엡 6:12),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실 자신의 창조세계로 보고 계시다. 성경은 만물, 다시 말하면 세상 전체가,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을 비전으로 바라보고 있다 (빌 3:21, 고전 15:27-28, 엡 1:21-22). 골로새서 1장은 이러한 내용을 매우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15-17절은 그리스도와 만물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만물이, 다시 말하면, 세상이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그는 만물의 으뜸이요 근본이시다. 이런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화평’을 이루는데, 화평을 받는 대상은 곧 만물이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하나님]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0절). 만물을 하나님께 화목하게 하는 과정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18절).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부터 시작해서 만물을 회복해 가신다 (엡 1:22).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만물의 근본이요, 으뜸이시기 때문이다.
<계속> 심재승(백석학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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