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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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
  • 승인 2001.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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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8일은 484주년을 맞는 종교개혁주일이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교회의 성문에 그 유명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써 붙인 것이 도화선이 되어 종교개혁이 시작된 날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당시 중세 기독교가 교황을 중심으로 너무나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인간의 선행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면죄부까지 팔아 이익을 남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루터가 ‘아니오’하고 나섰던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용기를 안겨준다. 그렇지 않아도 심증적으로 ‘이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때 마침 루터가 용기 있게 나서줌으로써 이곳 저곳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 일대 개혁작업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는 종교가 세속화되고 권력화되면 반드시 그 종교는 물질과 관련을 맺게 돼 타락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때 루터가 교황에 맞서서 강조한 신앙의 본질은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이다.

종교개혁은 이미 484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개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개혁작업은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교회 속에서 진행돼야 할 과제인 것이다. 계속 변화되고 갱신되려고 하는 의지가 없으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도, 생활도, 교회도 자꾸만 굳어져서 나중에는 형식만 남고 껍데기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무엇을 회개하며 개혁해야 할 것인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침묵한 죄,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했던 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돈과 권력이 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한 죄, 섬기는 일을 바로 못한 죄, 청빈한 삶을 살지 못한 죄,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 죄, 자신을 높이는 업적과시 영웅주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죄, 세속화 등 온갖 죄를 회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바로 이러한 회개의 바탕 위에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개혁’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한국 교회가 제 위상을 찾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새롭게 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두 가지 각오를 새롭게 했으면 한다.

그 첫째가 한국 교회는 진정 ‘하나님 중심’으로 운영돼 나가고 있느냐이며, 둘째는 우리 사회에 그리스도인의 참된 ‘성경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질문 위에 스스로를 바로 잡아 나가자는 것이다.

이젠 무언가 좀 새로워지는 운동이 한국 교계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새로운 기풍을 세우고 희망을 불러일으키려는 움직임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날 때 이 사회가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말만 풍성한 교회가 아니라 절망한 사회 속에 스며들어가 소망의 불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갱신의 발걸음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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