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우선순위는 무조건 하나님입니다”
상태바
“제 삶의 우선순위는 무조건 하나님입니다”
  • 현승미
  • 승인 2007.09.06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김으로 발명가가 된 ‘루디아바이오텍’ 대표 하종심 권사
▲ 의자매를 맺은 송명희시인과 함께..

“꼬박 2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교만치 않도록 낮아짐을 가르쳐주셨지요. 사업 실패 후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집회도, 인터뷰도 모두 거절했어요. 오직 강대상 앞에 무릎 꿇고 교회만 섬겼습니다.”


우리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필요할 때 채워주시고, 또 넘친다 싶을 때 우리에게 낮아짐을 가르쳐주신다. 루디아 바이오텍 대표 하종심권사(목양교회·이광복목사)에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셨다. 그는 최근 목을 맑게 해주고, 성대를 보호해주는 ‘루디아 소리쾌청’을 새롭게 선보이며 세상 앞에 한 걸음 내딛었다.


“제 젊은 시절은 남들과 똑같았어요. 시부모님과 남편을 섬기며 아이를 돌보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요. 그런 제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발명의 은사를 주셨어요. 당시시아버님이 오랫동안 병중에 계셨는데, 아마도 묵묵히 섬겨온 저의 효심을 보셨던 것 같아요.”

 
당시 직장에 다니던 시어머니를 대신해 하권사는 매일 시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어야 했다. 뿐만 아니다. 매일 새벽기도 후 경동시장을 찾는 것도 그의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7년째 자리에 누워계시는 시아버지를 위해 민간요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것이 식물 연구로 이어졌다.


“그 날도 경동시장에서 몇 가지 식물을 사왔어요. 방에서 한참동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 후 밖으로 나왔지요. 갑자기 식탁 위에 있는 식물에 대한 몇 가지 영감이 떠올랐어요. 알고 보니 그 식물이 냄새를 중화시키는 약품이었지요.”


하나님의 주관으로 만난 명성교회 발명가 집사님을 통해 변리사를 만났고, ‘나안나’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신청할 수 있었다. 오직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이 시대에 여성 발명가로 높여 놓으셨다.


당시 100명 중 2명 정도에게 발병하는 아토피가 큰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번에는 8년 동안 아토피로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된 제품이 ‘아토가라’.


“아토피로 고통 받던 아들을 위해 직접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지금의 ‘루디아’가 탄생됐지요. 이 제품을 통해서 떨기나무에 찾아와 불을 붙이신 주님을 확실히 증거케 하셨습니다.”


(주)루디아바이오테크(www.rudibio.co.kr)는 1997년 화장용 방취 및 향균 조성물 특허를, 1999년에는 가려움증 개선용 특허를 받았고, 2001년 미국 FDA의 검사 안정성을 통과해 우수한 기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제품이 미 식품의약청 안정성을 획득하고 히트사업으로 선정되며 승승장구했지만, 사업 과정 속에서 총판의 부도로 큰 고비를 맞기도 했다.


한때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발명의 은사를 주셨고, 연단의 삶을 통해 신앙을 굳건히 다져주셨다. 또 많은 이들과 그의 신앙의 삶을 공유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하셨다.


하권사는 어린 시절 부유한 가정에서 외동딸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사정이 어려워졌다. 의지할 곳 없는 모녀에게 교회는 유일한 힘이 되었다. 중 3때 간 수련회에서 기도가 터지면서 삶에 변화가 생겼고 그때의 체험이 하권사의 신앙생활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몇 달 앞두고 어머니와 단 둘이 서울행을 택해야 했다.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오직 빨리 직장을 다니고 돈일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그때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교회가 너무 좋았지요. 정말 집보다 교회가 더 좋았어요. 사람도 많고, 교회만 가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유년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이광복목사가 시무하는 목양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는 새벽제단을 쌓아갔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겹던 시간들 속에서 더욱 예수께 매달리며 새벽제단을 쉬지 않았다. 때론 힘겹게 얻은 직장도 주일성수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일성수보다 더 우선된 것은 없지요. 그러다 당시 이혼한 큰 오빠의 조카를 돌보게 됐어요. 한 7~8년 정도 그렇게 오빠의 가정을 돌보며 신앙생활을 해왔지요. 그러다 오빠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당장 그 집을 나와야하는 상황이 됐지요.”


반려자의 기도 끝에 3개월 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그때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밖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알게 됐어요. 시부모님이 천주교인이시더라구요. 특히 시어머니의 핍박이 심했지요. 한 집안에 다른 종교가 있을 수 없다며 개종을 하라고 하셨죠. 시어머니는 강자고 나는 약자였습니다. 매일 혼자서 성경 말씀 읽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는 시아버지를 섬기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매일 성경말씀을 읽어드리고 진심으로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시아버지를 위해 카세트를 준비했다.


“일종의 유서같은 거였죠.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시고 가시라고 준비해 드렸어요. 그때 부탁드렸죠. 제발 교회 다니게 해달라고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모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님의 육성녹음이 담긴 테이프를 틀었는데 약속대로 아버님이 어머님께 며느리 교회 다니게 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주일성수는 할 수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번 미사를 드리는 천주교의 특성 때문에 하권사도 수요예배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다.


“제 굳건한 신앙도 다 시어머니 덕분이지요. 고난은 위장된 축복입니다. 믿지 않은 남편도 새벽예배에 엎드린지 16년 만에 주님 앞으로 인도해 주셔서 가장 성속된 신앙인으로 돌아오게 해주셨어요. 눈물 없이는 예배를 못 드리는 남편을 볼 때마다 주님의 위대하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하종심권사는 주님께로부터 많은 달란트를 받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평신도 사역자다. 그는 분명 확실한 교회관과 예배관으로 교회 질서를 깨닫게 하는 이 시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들어야 할 사명자다.


하나님 일이 무조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라며 평범한 자신을 특별하게 써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뿐이라는 하종심 권사. 기업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하는 일에 더욱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그를 크게 쓰실 미래를 예견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