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받은 은혜 죽을때까지 복음 전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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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받은 은혜 죽을때까지 복음 전해야지요
  • 현승미
  • 승인 2007.08.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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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일 간 미국횡단 선교 도보행진한 안용민장로

압구정 소망교회. 검게 그을린, 그리 크진 않지만 단단한 체구를 가진 안용민장로를 만났다. 손에 선글라스를 든 모습이 멋스럽게 보이는 그는 막 260여 일간의 선교도보행진을 마치고서도 무언가를 갈급하듯 바쁜 일정 속에서 힘들게 시간을 냈다고 했다.


한국기독교 부흥 10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한미친선 미국횡단선교 도보행진. 260여 일 동안 쉽게 가늠할 수도 없는 길이의 넓은 땅,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 같은 미지의 낯선 미국 땅을 오직 복음의 사명으로 걷고 또 걸었다. 또한, 한국에 기독교를 전해준 미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난생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지금으로부터 120~130년 전이죠. 이조말엽 미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국내에 와서 순교했지요. 그때부터 우리 선조들은 기독교문화를 생활화하게 됐고요. 사실 우리 국교가 기독교입니다. 모든 생활방식이 기독교화 돼 있잖아요.”


우리나라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기에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는 안용민장로(소망교회·김지철목사).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해방 이후, 한국 전쟁 이후에 가난한 우리나라를 구제해 준 것도 미국이지요. 젊은이들은 이민 가서 배우고, 지식을 쌓아왔고, 그때 배운 지식이 지금 우리나라에 쏟아지고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은총, 사랑이지요.”


그는 그 은혜와 은총을 감사함으로 전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 ‘걷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했다. 미국의 그 끝없는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작은 정성을 베풀었다. 그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정년퇴임을 한 이후 교회활동밖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삶이 지나온 삶보다 짧을 텐데, 그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 사랑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하나님 앞에 복음 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직접 복음을 전하는 노방전도를 계획했다. 노방전도를 위한 체력 준비기간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자동차, 비행기 등 교통수단 없이 도보로 다니며 전도하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지요. 예전에 야구 중계를 했기 때문에 기초체력은 충분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체력, 인내, 끈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3년 동안 지리산 당일 종주를 3번이나 했다. 무려 16시간동안 끊임없이 산을 오르고 내려와야 하는 고행이었지만, 3번의 종주를 하고 나니 자신감 백배.


식사 문제와 갈아입을 옷, 전도지, 건강관리를 위해 부인인 박정자권사와 이용호장로(광염감리교회)가 그의 도보횡단 길에 함께했다.


“체력을 위해 3년을 준비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미국 땅을 구석구석 다니기 위해서 2년 동안 준비했지만, 그에 대해 가족들과 의논하진 않았어요. 물론 제 나이나 건강문제 때문에 걱정은 했지만, 아내는 제가 가는 길을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했지요.”


260일이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작년 10월 19일부터 시작해 올 7월 11일까지. 우리나라로 치면 무려 세 계절이 지나가는 시간동안 아내 박정자권사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니 직접 도보행진은 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동행 하며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전했다.


다행이 도보행진을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기꺼이 기쁨과 사랑으로 받아들였고, 감동했다. 특별히 몸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종주할 수 있었다. 다만 눈에 무리가 왔다.


“LA에서 워싱톤까지는 정동쪽으로만 가야합니다. 아침 7시 15분부터 해가 뜨니까 아무리 서둘러 출발해도 정면으로 햇빛을 받으면서 가는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됐지요. 게다가 눈 안에 미세한 먼지까지 들어가 오른쪽 눈의 2/3이상이 문제가 생겼어요. 안질 부상이었지요.”


바로 치료할 수도 없었다. 3달 동안 부상한 눈을 그대로 유치한채 도보행진을 강행했다. 달라스에 도착해서야 겨우 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오른쪽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


“난 사실 선글라스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정말 맨 눈으로 도보행진을 강행했는데, 문제가 생겼지요. 덕분에 지금은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안된다고 해서 이렇게 선글라스를 꼭 챙겨야한답니다.”


첫 만남에 멋스럽게 보였던 선글라스는 단지 멋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눈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260여일의 도보행진에서 얻은 값진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안장로의 도보행진은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린 해 3월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의 성공개최를 위해 도보행진을 했었다. 제주도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작된 행진은 우리나라의 모든 월드컵경기장을 두루 돌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2달동안 1212km의 거리를 다니며 길거리 전도를 진행했다. 2008년 북경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해 2004년에는 한중친선 중국종단 도보행진을 하기도 했다. 상해에서 서울까지 2천600km 길을 꼬박 4개월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쪽 복음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것이잖아요. 가서 그랬죠. 예수 믿는 것에 대한 빚 갚으러 왔다고.”


공산국가로 아직은 기독교에 대한 제약이 많은 나라 중국에서 ‘예수쟁이’임을 큰 소리로 전하며, 빚을 갚으러 왔다는 안장로의 말에 중국 고위층까지 감동을 받기도 했다.


가진 것이 두 다리밖에 없어서 죽을때까지 걸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안용민 장로. 그에게서 하나님나라 확장의 밝은 미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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