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형사생활 끝마치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조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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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형사생활 끝마치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조한주목사
  • 송영락
  • 승인 2007.06.21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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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죠”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경찰관, 이름없이 나라를 지킨 무명용사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30년 동안 종로경찰서 형사로 시민의 손과 발이 되어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오직 한길을 걸어온 조한주형사에게 6월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국가의 안녕과 복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조한주형사는 은퇴 후 평생 봉사했던 종로경찰서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목회자로 제2의 인생을 결심했다. 그의 삶은 생생한 간증으로 이어진 ‘천로역정’이었다. 군대시절 극적으로 만난 하나님, 형사생활과 신실한 동료와 만남의 만남, 신학공부와 목사안수, 전,의경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는 제2의 인생은 순간순간 이끄신 하나님의 손길 그 자체였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현장에서는 심장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조한주목사(합동정통 한성노회). 그의 모습은 경찰복음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다. 이제는 강도, 살인법을 검거하는 형사가 아니라 죄에 사로잡힌 죄인을 구원하는 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조한주목사는 바울처럼 생명의 면류관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뜨거웠다.


목사님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성장과정을 겪었을 것 같은데, 학생시절과 군대시절을 통해 만난 하나님을 말씀해 주세요.

저는 예수님을 늦게 알았죠. 기독교학교인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신앙은 없었습니다. 신흥고등학교는 일제식민지 시절 신사참배 반대로 폐교를 당하기까지 했던 유서 깊은 기독교학교였지만 저는 채플시간에 몰래 도망치는 불량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군대생활은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GOP에서 군대생활을 보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위험했습니다. 그 때의 휴전선은 ‘철책선’이 아니라 ‘목책선’이었는데 많은 군인들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위험한 지역에서 근무하다보니까 고등학교 시절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하나님 지켜주세요’고 기도했습니다. 특히 ‘목책선’을 ‘철책선’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됐는데, ‘목책선’에 연결된 수류탄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위험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떠졌습니다. 미덥지 못한 신병인 제가 작업하는 것이 위험해 보였던지 중대장은 목책선을 제거하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그 순간 수류탄이 터졌죠. 중대장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고, 많은 동료들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저도 수류탄 파편으로 무릎, 머리, 눈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3일 동안 혼수상태였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죠. 6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뿌리가 얕은 저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평범한 형사로 근무했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와 신앙경력을 말씀해 주세요.

군 전역 후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님, 작은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죠. 강도, 도독, 살인법을 검거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두 명의 직장동료를 만나기까지 사회의 기강을 헤치는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충실한 형사였죠. 첫 번째 동료는 이수정목사입니다. 같은 경찰관이었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경건한 동료였습니다. 저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수정목사는 침신대를 졸업한 후 경찰관이 됐습니다. 정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수정목사를 통해 정식으로 복음을 접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이수정목사는 중간에 퇴직하여 목사가 되어 지금 ‘생수선교원’을 통해 많은 영원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를 만난 이후 저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기동대에 근무하면서 전,의경에게 주님의 사랑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시위진압과 경비근무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전,의경들이 지역교회와 경찰서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많은 전,의경들이 예배를 통해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비록 성경적인 지식은 부족했지만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7~8년 동안 평신도사역자로 헌신했습니다. 1990년에는 종로경찰서에서 ‘기독신우회’를 결성했고, 전,의경으로 구성된 ‘한사랑 신우회’도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경찰교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종로경찰서 근무와 특히 형사반장 시절의 바쁜 생활 가운데 신학교를 입학하게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형사 관리반장으로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신학공부의 마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전북경찰학교 동기생인 문순기목사를 만나기 전까지 마음만 있었지 용기를 낼 수 없었습니다.  밝고 깨끗한 이미지의 문순기목사(창대교회)는 제가 신학대학을 입학 할 수 있도록 17년 동안 기도해준 동료이자 동역자입니다. 중간에 퇴직하여 목사가 된 문목사는 어느날 기도하는 중에 저를 신학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서울장신대학교 입학원서를 사들고 제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오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날 문목사를 우연히 안국역에 만났던 것입니다. 참 신기하죠. 어쩔 수 없이 바쁜 형사생활을 하면서 신학대학에 다녔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경찰 퇴직과 경찰선교로 달려온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2001년부터 결신자에 대해서 세례식과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지금까지 1백여 명의 전,의경에게 세례를 줬습니다. 종로경찰서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입니다. 미대사관, 청와대, 국가의 중요시설을 지키는 경찰서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전,의경들은 ‘군종 속의 고독’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길을 걷는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경찰버스에서 찬이슬을 피해야 하는 거친 잠자리….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저의 사역입니다. 매일 밤 18군데의 근무처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빵, 요구르트, 초코파이라는 다소 빈약한 선물바구니이지만 함께 나누는 대화를 통해 동변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기도와 말씀으로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경찰출신이라는 점이 전,의경들의 마음을 쉽게 열도록 합니다. 같은 언어와 같은 생각으로 이야기하니까 편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장복음화’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 번도 교회에 가보지 않은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면서 죄의 무서움 때문에 죽음 직전에 연락한 전,의경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간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종로경찰서 소속 1천9백여명의 전,의경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너무나 값진 사역입니다. 

지금까지 자비량으로 사역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없었는데 퇴직 후에는 가끔 경제적인 압박을 느낍니다. 하지만 정확하신 하나님은 저에게 필요한 물질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15년 전에 함께 공부했던 성서침례교회 성경모임 동료들이, 창대교회 문순기목사, 한성노회, 돈암제일교회, 평촌교회, 김천시내교회, 서신교회, 안산예담교회, 새안교회, 승동교회, 자교교회, 초등교회 등이 후원해 주고 있습니다. 한번도 후원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필요한 은혜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종로경찰서 복음화를 위해 하고 싶은 사역을 말씀해 주세요.

종로경찰서는 제가 30년을 근무한 곳이기 때문에 남다른 애정이 있습니다. 경찰조직상 한 경찰서에서 30년을 근무하기 힘든데, 이상하게도 저는 종로경찰서에서만 근무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종로경찰서의 복음화를 위해 미리 준비시키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저의 청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청년시절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원받은 청년 한 명이 민족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 이 사역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영적인 전장입니다. 신앙의 전장입니다. 호흡이 멈출 때까지 헌신하고 싶습니다.


경찰복음화를 위해 시급히 필요한 것을 말씀해 주세요.

군선교는 국가적 조직으로 시스템을 갖췄지만 경찰선교는 15만명의 대규모 병력에도 불구하고 경찰서별로 시스템을 구축해 놓지 못한 상황입니다. 경찰복음화는 헌신된 경찰관에 의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현장 일꾼을 세워 구체적으로 협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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