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규교수의 '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 대부흥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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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교수의 '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 대부흥 이야기'<6>
  • 송영락
  • 승인 2007.06.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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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웨일즈보다도 강력한 부흥운동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13일은 주일 날로 오전에는 각 교회에 흩어져 예배를 드리고 저녁에 전도 집회가 열렸는데 이 때 분위기는 냉랭했다. “찬성의 고백‘에서 블레어가 증언한 것처럼 “다음날 밤에는 설교에 대해서 어떤 반응도 없었다.” 길선주가 반말로 “너희 다 죽었어!”라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차가왔다. 그 현장에 있던 한 선교사가 말한 대로 “어둠의 세력들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포드의 말을 빌린다면 마치 “천정은 놋으로 덮인 듯 기도는 상달되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역사를 두고 선교사들은 마치 사탄이 회중을 압도하는 것과 같았다고 증언한다.


회개의 포문을 연 길선주

 다음날 14일(월요일) 선교사들은 정오기도회를 가지면서 하나님께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이대로 사경회가 끝난다면 그들이 그토록 사모했던 영적부흥운동을 경험하지 못하고 끝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날 저녁집회는 처음부터 전날과 달랐다. 한 선교사가 기록한대로 “하나님은 그날 성령을 한국교회 위에 어마어마하게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능력의 종 길선주 장로의 설교가 끝나자 영적인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날 길선주가 회개의 포문을 열었다. 길선주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가 죽기 전 아내 대신 재산을 정리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처리하다 상당한 돈을 사취했던 것이다. 이날 길선주는 회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통회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약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임종 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길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내 재산을 잘 정리해 주시오. 내 아내는 셈이 약하기 때문이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내가 잘 돌보아드릴 테니 염려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다 미화 100달러 상당의 금액을 나는 사취(詐取)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길선주의 예기치 않은 고백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상한 심령을 주님께로 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고포드의 증언을 빌린다면 길선주의 회개가 있은 후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던 방해의 장벽은 별안간 무너져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해주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이길함 선교사가 “여러분 기도하기를 원하면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라며 통성기도를 요청했고, 그곳에 모인 이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길선주의 회개가 마치 뇌관에 불을 붙인 것처럼 청중들 가운데 성령의 강한 임재와 통회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곳에 참석한 한 선교사는 한국인들의 기도 소리가 마치 하늘 보좌를 향해 포효하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이길함 선교사는 그곳에 참석한 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말하고 남은 자들과 더불어 기도에 집중하기를 권했다. 1500명 중에서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600명가량이었다. 600명이 밤이 맞도록 간절히 기도했고, 그 가운데 성령께서 강하게 임재 하셨다. 저녁 7시에 시작한 집회가 새벽 2시, 3시까지 진행되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단한 은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죄악들을 토로하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모든 죄를 솔직하게 토로하고 고백했다.

 

무릎 꿇은 평안남도 사람들

상투를 틀고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평안남도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강대상을 향해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현장에 참석해 그들의 기도를 들은 한 사람은 이들의 기도가 전혀 흥분된 군중심리에 의해 드려진 기도가 아니라 매우 논리적이었고 이성적이었다고 증언했다. 그 현장에 있던 블레어는 이렇게 그날의 장면을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내어 간절히 함께 기도하였다. 그 효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전혀 혼동이 없었고, 일치와 조화가 있었으며 모든 영혼들이 기도하려는, 저항할 수 없는 충동 가운데 함께 기도하였다. 바로 오순절과 같이, 그들은 한 장소에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미세한 음성가운데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분은 그 밤에 평양에 오셔서 모두 울도록 역사하셨다. 어떤 이는 뒤로 물러가서 울기도 했다. 또한 한 순간에 온 청중이 울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무엇이 일어났는가 깨닫기 전에 청중 가운데서 죄의 고백이 시작됐다.”


20명의 남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자 잠시 울음을 멈춘 회중은 고백 후에 다시 울면서 통회의 기도를 드렸다. 성령의 임재가 공개적인 죄의 고백과 회중의 통회 가운데 임하셨다. 공개적인 죄의 고백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그 현장에 있던 모든 선교사들은 “성령이 죄인들의 영혼 위에 임하면 죄인은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멈추게 할 어떤 힘도 이 땅에는 없다”고 믿었다.

그날 그 현장에 참석한 선교사들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그들 가운데 임한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된 것으로 인해 대단히 감격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산정현교회 담임목사 번하이젤이 자신의 일기에 기술한 것처럼 참석자들 모두는 “그곳에서 이제껏 말로만 듣던 광경들을 목격했다. 성령이 청중을 사로잡아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통회 자복하였다.” 장대현교회 담임목사 이길함 선교사는 다음 날 선교본부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편지를 띄웠다. “어떤 말로도 어제 있었던 그 집회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의 현시였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찬양을 올리며 이제 그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하나님께서 저들을 도우시고 각장의 교회에서 이들을 놀랍게 사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조지 매큔 선교사 역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총부 브라운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 이날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전했다.

 

“존경하는 브라운 박사님 당신은 지금 우리 가운데 임재하고 있는 축복에 대해 의심할 바 없이 듣고 계실 것입니다만 나는 그 밖에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들려주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반복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시골 지역 출신 남자 성도들을 위해 겨울 사경회를 열고 있는 중이며 이것은 지금까지 열었던 것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소알른이 이전에 보고했던 재령 지역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약 천명이 참석을 했는데 모두 시골에서 온 자들이며 평양시내남자들은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진은 규모가 작습니다. 그레함 리, 소알른, 번하이젤, 헌트, 그리고 블레어가 몇 명의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전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장대현 교회에서 모인 지난 밤 집회는 최초의 실제적인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시였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이전에 그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웨일즈, 인도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서 읽었지만 이번 장대현 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웨일즈보다 강력한 부흥운동

인도와 웨일즈의 부흥 운동보다도 더 강력한 부흥운동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보통 선교보고는 전 세계에서 오기 때문에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한다. 때문에 과장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기술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부흥운동 그 역사적 현장에 있던 선교사들은 냉정을 찾고, 찾는다고 하면서도 흥분을 가누지 못하고 이렇게 편지를 쓴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얼마나 강하게 임하셨는가를 보여준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자세한 역사적 기록이 영어로 전 세계에 소개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평양대부흥운동은 필자가 아는 한, 필자의 역사적인 지식을 동원하는 한, 사도행전 이후 이러난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1734년에서 1736년, 1740년에서 1742년에 일어난 미국 1차 대각성 운동, 2차 대각성 운동, 무디 부흥운동, 웨일즈 부흥운동, 인도 부흥운동에 대해서 들었지만 이렇게 강력한 성령의 역사는 처음이었다는 것이 그 현장에 있었던 선교사들의 일치된 고백이었다. 그 놀라운 영적대각성의 현장에 있던 이길함과 블레어 선교사는 다음날을 위해 새벽에 잠을 자야 되는데 너무 흥분이 되어서 잠을 못자고 참석하지 못한 다른 선교사들의 집을 방문해서는 “드디어 우리가 만났다. 드디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 와보라”고 외쳤다. 이날 선교사들은 정오기도회에 모여 부흥의 역사가 15일에도 계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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