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놀라운 복음의 비밀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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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놀라운 복음의 비밀 전하고 싶어요”
  • 현승미
  • 승인 2007.06.1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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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목사 일대기 영화화한 ‘그의 선택’ 주연 맡은 탤런트 최 범 호 집사
▲ 안양 샘병원에서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자원봉사팀과 함께.

올해도 어김없이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돌아왔다. 과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불사하지 않았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듯 독립된 국가에서 호사로운 삶을 살고 있을진대 과연 우리 후손들의 나라사랑은 어느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까? 온갖 부패와 이기심으로 국정은 흔들리고, 경제침체로 사회와 가정을 날로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때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중 순교한 주기철목사의 생생한 일대기 ‘그의 선택’이 제작돼 주목을 끌고 있다. 극중 주기철목사 역을 맡아 열연했던 최범호집사(남서울평촌교회)를 통해 그 어느때보다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나 오히려 더 많은 넘어짐을 당하는 이때에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와 삶을 가늠해봤다.


“영화를 통해 진정한 감사와 헌신의 자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평소 꽤 괜찮은 헌신관과 꽤 괜찮은 신앙인이라 스스로 자만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이중적인가를 알게 됐지요.”


일반 영화에서 배우 한 명의 몸값도 되지 않는 8천만의 저예산 독립영화.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것만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겨우 카메라 한 대, 조명기 두 대의 첫 촬영은 너무나 상식 밖의 일이었다. 아무리 소규모라도 영화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패기 넘치는 젊은 감독의 치기어린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첫 촬영부터 순조로울리 만무했다. 그러나 매 컷이 진행될수록 감독의 진실을 알게 됐고,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과 경험이 하나님의 나라 영광을 드러낼 때 얼마나 장애물인가를 매순간 깨닫게 됐다. 물론 캐스팅 작업도 쉽지만은 않았다.


“작년 3월 평소 알고 지내던 PD를 통해 오디션 제의를 받고 대본을 받아봤지요. 처음에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세상 드라마 오디션도 못 볼게 없는데, 하나님 드라마는 당연히 봐야지요.”


최범호집사는 처음 대본을 받아들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흔쾌히 출연을 승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참을 지나도 제작자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5~6개월쯤 지난 후 다시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그나마도 두 세 차례 제작부장 등 영화관계자들과의 짧은 만남으로 진행됐다.


“알고 보니 그 제작부장이란 사람이 믿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영화의 상업성만을 생각하고 그동안 인기가 많은 유명연예인들을 섭외하려고 부던히 노력했나봐요. 연예인 신우회에서도 저처럼 오디션을 봤다는 이들을 여러 명 만났을 정도니까요.”


서운함과 황당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겨우 주연배우로 발탁이 되고 보니, 출연료가 발목을 잡았다.


“꼭 만들어져야 하는 주님의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출연료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연기경력이 있는데, 한편 제 신앙인으로서, 연기자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지요.”


평소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드렸던 나귀처럼 자신도 언제든 하나님이 원하시면 자신을 나귀처럼 내어드리겠다고 기도했던 최집사는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결국 주기철목사가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순교했던 것처럼 최집사 자신도 매일 매일 영화를 통해 죽어짐을 경험했다.


“어느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저에게 권순도감독이 ‘최집사님 과연 헌신된 거 맞습니까’라는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물질적 부족함과 어려움 가운데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조금씩 깨닫게 됐습니다. 하나님께 연기라는 최고의 제사로 드리는 것은 그저 저의 주관이었습니다. 그저 젊은 사람의 열정으로만 여겼던 권순도감독의 마음을 하나님은 순종으로 보신 것이지요.”


그렇게 최범호집사는 낮아짐의 자세를 배웠다. 오직 신앙 하나로 몇 되지 않는 스탭과 출연진들이 1인 다역을 해내며 작품이 완성됐다.


권감독의 열정을 하나님이 쓰셨고 많은 이들의 기도후원으로 작품이 하나의 열매로 맺어져 산정현교회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비록 분단의 비극으로 산정현교회가 처음 세워졌던, 마지막 주기철목사의 설교가 살아있는 그 평양에 갈 수는 없었지만 그 뜻을 이어받은 서울의 산정현교회에서 그 역사적인 감동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연기자가 된지 15년여만의 생애 첫 주연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나 대규모 영화관에서 치러지는 화려한 시사회는 없었다. 단지 몇 몇 교회에서의 영화 시사회가 전부였지만, 그는 일회성에 그치는 화려함보다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부족한 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평소 어머니께서 ‘내가 안 된다 할 때 하나님은 하신다’는 말을 자주 해주셨는데, 이젠 정말 그 말씀의 의미를 또렷이 알 것 같습니다. 나에게 크고 비밀한 것을 행하신다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철저한 불교신자였던 자신에게 신앙을 갖게 해 준 것도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최집사보다 더 철저한 불교신자였던 그의 어머니는 죽을 고비를 경험한 후 하나님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의 아들에게도 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예의였습니다. 어머니의 병을 고쳐준 분에 대한 예의랄까. 믿음보다는 의무감이었지요. 어쨌든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긴 했으나 몇 번 출석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했기 때문에 그는 졸업 후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 쟁쟁하고 잘난 사람들 틈에서 전라도 시골마을의 볼품없는 청년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연기자 시험에 5번을 낙방했다. 그리고 6번째 시험을 목전에 두고 그는 어머니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내려가려면 기차표를 사듯이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축복을 열차를 타야하고, 그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세례라는 티켓을 사야한다. 어머님 말씀에 교회에 다시 출석하기 시작했지요. 정말 급조된 학습, 세례를 받고, 다시 시험을 치르려 하는데 어머님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또 붙잡으셨습니다.”


최집사의 어머니는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붙잡고, 얼굴이 되는 사람은 얼굴을 붙잡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그것을 붙잡지만 아무 것도 없기에 오직 하나님을 붙잡고,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입에서 말씀이 졸졸졸 나오게 하고, 소여물처럼 입 안에서 말씀을 조물락 조물락 해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화양리 송정교회에 아침마다 찾아갔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저는 무조건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사람이 한번 마음을 먹으니 거짓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때는 말씀을 읽기만 했지 뜻을 헤아리지는 못했지요. 합격시켜주면 복음을 전하는 연기자가 되겠다. 크리스천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서 노력하겠다. 거침없이 하나님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340:1의 1차 경쟁률을 뚫고 2차까지 합격, 그러나 늘 보잘것없는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이 팽배했던 그는 당연히 3차에서는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시골로 내려와 방탕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처음부터 잘못된 시작이었기에, 연기자가 된 이후로 그는 하나님을 잊어갔다. 연기자가 되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생각에 오직 ‘성실’ 하나만 붙잡고 살았다.


“연기자로서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성실’도 아무 소용이 없었지요. 이내 삶이 무기력해졌습니다. 그것이 곧 사기꾼을 말로였지요. 하나님을 나의 도구로 쓸려고 했지요. 하나님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성공과 부를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지금의 아내가 다가왔다. 여전히 연기자로서의 자만심만 가득했던 그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온 아내는 몇 년 동안 묵묵히 그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라디오를 선물해주며 극동방송을 청취하게 했고, 온누리교회 청년부 예배로 최집사를 이끌었다. 그렇게 일본 선교를 위해 기도하던 샤이닝 글로리 중보기도팀을 만나게 됐고, 그의 신앙을 굳건히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됐다.


하나님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하며 설득을 했던 그 화술을 이제 그는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안양 샘병원으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다니고 있다. 


“저는 오전 봉사를 하는데, 오전은 그야말로 오후 상담봉사를 하는 팀들이 기분좋게, 그리고 상담을 받는 환자들도 기분 좋게 깨끗한 환경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청소와 환자분들 목욕을 담당하고 있어요. 병적인 부분은 병원에서 담당하고, 말씀은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를 통해 듣게 돼요. 우리 같은 자원봉사자는 환경미화는 물론 정서적 대화를 통해 그들이 외롭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요.”


처음 자원봉사를 한다고 나섰을 때는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베테랑 집사 누님들의 미덥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얼마 못 버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벌써 4년째 호스피스 자원봉사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낮아지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최범호집사. 그의 연기 생애와 굳건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널리 확장될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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